받아들임

떠나지 못하게 된 여행 앞에서

by 몽돌

친구야,


잘 지내냐고, 요즘은 어떠냐고 묻는 너의 카톡을 보고, 그냥 “응 잘 지내지, 너는 어떻게 지내?” 하고 말았어. 언젠가는 너에게 이 마음을 다 전할 수 있게 될까? 부치지 않을 편지를 쓰는 마음으로 글을 써 본다.





이번에 긴 연차를 냈어. 코로나 시대의 긴 휴가는 정말이지 할 게 없더라. 어디 멀리 훌쩍 떠나고 싶었는데 그럴 수 없어서 주로 집에서 쉬었어. 쌀 4kg 봉지를 사서 부지런히 밥을 해 먹었더니 휴가가 끝날 즈음엔 쌀 봉지가 홀쭉해졌어.


점심을 먹고 나면 집 근처 산책을 했어. 놀이터에 앉아 벚꽃잎 떨어지는 걸 보며 멍 때리고 있는데, 내 바로 앞에서 선글라스와 마스크와 장갑으로 무장한 노부부가 열심히 국민체조를 하시더라. 심지어 국민체조를 마친 할아버지는 준비해 온 골프채를 꺼내서 스윙 연습을 하셨어. 아아, 코로나 시대에도 사람들은 성실하게 일상을 이어가고 있었어.


그래서 나도 벚나무 옆에 자리를 잡고 무인도서관에서 빌린 소설책을 꺼내서 읽기 시작했어.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올리브 키터리지>라는 소설집이었어.


올리브는 이웃에 사는 말린이 남편과 사별하고 장례식을 치르는 모습을 담담하게 묘사해. 말린의 남편이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거든. 말린은 올리브에게 담담하게 남편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눈물이 터져. 왜, 어떤 고통에게나 가장 약한 부분이 있잖아. 건드리면 눈물이 터지는 버튼 같은 거.


말린에게 그건 남편과 함께 준비한 여행 바구니였어. 언젠가 남편이 몸이 회복되면 같이 여행을 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여행 바구니에 여행 팸플릿이며, 안내책자들을 잔뜩 담아두었던 거야. 말린은 올리브에게 그 여행 바구니를 버려달라고 부탁하다가 울음이 터지고 말아.


"세상에 참 올리브, 우린 거의 믿었어요. 그 사람은 계속 여위고 몸이 그렇게 약해지면서도 말했어요. '말린, 우리 여행 바구니 좀 가져와봐.' 그럼 전 가져가고요. 지금 생각하면 너무 창피해요, 올리브."


나는 그 부분에서 한참을 멈춰 있었어.


희망을 품고 정성껏 준비해 둔 여행 바구니,

그런데 절대로 떠날 수 없게 된 여행,

그리고 이렇게 될 줄 모르고 그런 희망을 가졌던 것이 창피하다고 말하는 사람의 마음에 대해 생각했어.


왜냐면 내 마음도 꼭 그와 같았으니까.





친구야,

사람들은 애도가 다섯 단계(부인-분노-협상-우울-수용)를 걸쳐 이루어진다고 말하지만, 나는 아닌 것 같아. 뭔가를 잃은 사람들의 마음은 그렇게 순차적으로 움직이지 않아. 이젠 기꺼이 ‘수용’했다고 생각하다가도 다시 ‘분노’로, 다시 ‘우울’로 돌아가곤 해. 여러 번 맴을 돌다가 어느 지점쯤에 마음이 자리를 잡게 될지 아직 나도 잘 모르겠어.


다섯 단계를 오가면서 일관되게 느꼈던 감정은, 이상하게도 창피함이었어. 이렇게 될지도 모르고 오밀조밀 꾸려 놓았던 여행 바구니를 생각하면 너무 부끄러워 내 머리를 쥐어박고 싶었어. 어째서 그렇게 순진한 기대를 했을까. 미래가 이렇게 될지도 모르고, 바보같이.


불행은 현재를 바꾸는 것을 넘어, 과거를 다르게 기억하게 하고 계획한 모든 미래를 뒤집어 놓고 말아. 아무것도 모르는 과거의 나에게 타임머신을 타고 말해주고 싶었어. 미래는 네 생각과 전혀 다르다고, 후회를 만들지 말라고. 하지만 무슨 수를 써도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고 잃어버린 것을 다시 찾아올 수도 없어.


아팠지만 아프고 싶지 않았어. 우울하고 슬프고 화난 채로 있는 것이 무섭고 두려워 마음에 갑옷을 두르고 싶었어. “심장이 딱딱해져 버렸으면 좋겠어.”라는 유명한 드라마 대사 있잖아, <내 이름은 김삼순>에서 삼순이가 현빈과 헤어지고 울면서 했던 말. 그건 진짜 명대사였던 거야.


하지만 친구야, 심장이 어떻게 딱딱해질 수가 있겠니.

어떻게 소중한 걸 잃었는데 슬퍼하지 않을 수가 있겠어.

작은 희망의 틈새 앞에서 어떻게 기대를 품지 않을 수가 있겠어.




올리브는 우는 말린을 바라보면서 자신의 여행 바구니를 떠올려. 자신이 아들에 대해 가졌던 기대와 희망, 그리고 상실과 좌절에 대해서. 그리고 생각해.


그런 여행 바구니가 없는 이가 누구랴.

이건 옳지 않다. 옳지 않아.


이 구절을 읽고 나서, 나는 내가 창피해하며 깊이 숨겨둔 마음속 여행 바구니를 다시 꺼내어 보았어.

벚꽃잎 떨어지는 걸 바라보듯이 그냥 가만히 바라봤어.

그 바구니를 채울 때의 내 설렘과 기대와 희망을 헤아려 봤어.

그리고 예고 없이 좌절된 여행에 대한 나의 슬픔과 분노와 우울도, 그냥 그렇구나, 하고 바라봤어.


그 마음들은 아무 잘못이 없었어.


때론 그냥, 용처를 잃은 여행 바구니와 마음의 빈 자리를 가만히 바라봐야 하는 순간이 있는 것 같아.


그냥 여기, 이제 더이상 쓸모가 없어진 여행 바구니가 있고

그 여행 바구니를 생각할 때면 떠오르는 여러 감정들이 있다고.





친구야,

너에게도 그런 여행 바구니가 있겠지.


네가 홀로 상실의 시간을 지나고 있을 때,

혹시 내가 너의 빈 여행 바구니를 보면서도

너의 마음을 헤아려주지 못한 때가 있었을까.


네가 그때 꺼내지 못하고 삼킨 말들이 있다면

부디 지금은 그 마음이 많이 가벼워졌기를 바란다.


이제 벚꽃이 떨어진 자리에 연녹색 잎이 나더라.

계절이 변하듯 언젠가 이 마음도 변하게 되겠지.

언젠가 너도, 나도 묻어둔 여행 바구니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그러니 이 꽃이 다 지고 새 잎이 나 초록이 무성해지면

그때 우리 다시 만나 진짜 안부를 나누자, 친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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