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좋아서 출근길에 계속 감탄하게 된다. 벚꽃이 떨어진 자리에 이제 완연한 연녹색으로 자란 잎들을 보면 계속 멈춰 선다. 꼭 카톡 프로필 사진을 꽃 사진으로 하는 어머님들처럼, 시시각각 변해가는 봄의 빛깔에 감탄한다. "어머, 이거 봐. 색이 변했어!" 봄비가 내린 후 나뭇잎의 초록이 더 짙어졌다며 며칠 전 사진을 꺼내서 비교까지 한다. 이러다 나도 꽃 사진만 육천 장 찍는 사람이 될지도 모르겠다. (색이 다 달라, 다르다고!)
회사로 향하는 버스에 오르는 마음은 적진으로 향하는 장수의 마음처럼 무거워야 정상이건만, 내가 좋아하는 창가 자리를 찾아 앉는 순간은 사실 기분이 좋다. 햇살이 잘 비치는 땃땃한 좌석에 앉아 적어도 사십 분은 몸 편히 있을 수 있다. 겨울에는 사람들의 패딩 사이에 끼여 어깨도 제대로 펴지 못하고 남들의 묵은 옷장 냄새를 맡으며 답답해했다. 이제는 한결 가벼워진 사람들의 옷차림 속에서 분홍색, 노란색, 민트색 봄의 빛깔을 발견한다.
같은 회사를 오래 다닌다는 건 햇살이 어디로 드는지 알게 되는 일이다. 이제는 아침 창가에 어느 방향으로 서야 가장 햇살을 넉넉하게 받으며 커피를 마실 수 있는지, 어느 방향으로 돌아서면 가장 긴 그림자가 지는지 안다. 시간을 잘 맞춰 출근하면 창문을 뚫고 내려온 금빛 햇살로 반짝이는 복도를 보게 되는데, 그때는 회사가 이렇게 아름다워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 풍경을 보고 나면 몇 분 동안은 마음속에서 금색 광이 번쩍번쩍 빛나는 것 같다. (컴퓨터를 켜 메일함에 접속하면 사라진다.)
점심시간에 잠시 갑갑한 사무실을 벗어나 회사 주변을 산책했다. 날은 화창하지만 바람이 거센 날이라 사람들이 모두 옷깃을 여미며 걸었다. 회사 깃발이 달린 깃대가 센 바람에 흔들려 댕댕댕, 소리를 냈다. 빌딩 숲 한복판에서 울려 퍼지는 풍경소리 같았다. 마치 산속의 절에 온 것처럼 모든 풍경이 낯설게 느껴졌다. 밖에서 바라본 회사 유리창에는 파란 하늘과 흰 뭉게구름이 그대로 떠 있었다. 잠시 걸음을 멈춰구름이 미끄러지듯 조용히 자리를 옮겨가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와, 진짜 예쁘다, 하고 소리 내어 말했다.
미쳤나 봐.
지금이 좋고 귀하고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동안 계속해서 확률에 대해 생각했다. 아플 확률, 다칠 확률, 불의의 사고를 당할 확률. 무수한 불운의 목록과 그것들의 확률을 생각하면, 인생은 지뢰찾기 게임처럼 늘 위험을 안고 있는 곳으로 느껴졌다. 살얼음판을 걷는 사람처럼 조심조심 걸어도 언제든지 잘못될 수 있는 곳이었다.
열심히 해도 망할 수 있다. 길 가다가도 뺨을 맞을 수 있다. 뒤로 엎어져도 코가 깨질 수 있다.
그런 게 인생이라면, 대체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거지?
아직 그 질문의 답을 찾지 못했다.
딱 하나 찾은 답은, 죽을 확률은 누구에게나 백 퍼센트라는 것이다. 그것만이 가장 확실한 확률이었다.
유한한 시간을 살며 내일 어찌 될지 모르는 게 인생이라면, 지금 이 순간을 소중히 누리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고 나니 봄의 예쁨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신기하지, 회사는 가기 싫어도 출근길은 아름다울 수 있고 싫은 일로 가득한 회사도 때론 아름다운 순간이 있다.모든 게 잘 되어가지 않는 와중에도 봄은 오고, 날씨는 맑고, 세상은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