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회사 동료가 결혼을 해서 답례품으로 쿠키를 돌렸어. 초콜릿, 치즈, 바닐라 등등 다양한 맛의 쿠키가 담긴 조그만 상자. 평소처럼 나는 모니터 앞에서 미간에 주름을 잡으면서 일을 하다가, 오후 세 시 반쯤, 아 도저히 일 못하겠다 정말이지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마의 시간 있잖아. 그때 그 상자에 손을 뻗쳤지.
그러고 나서 잠시 뒤에 다시 그 상자를 봤는데, 아니 그새 상자가 다 비어 있는 거야. 뭐 맛을 느끼고 할 새도 없이, 그냥 모니터를 보면서 우적우적 과자 한 상자를 다 먹어버린 거야.
그때 옆자리의 동료는 뜨거운 물을 받아와 드립 커피백에 또르르 또르르 정성스레 커피를 내렸어. 인스턴트 봉지커피가 아니라 방금 내린 정성스러운 커피 향이 주변에 퍼졌어. 그녀는 바스락거리며 초콜릿 쿠키 한 입을 베어 물고 커피를 한 모금 마시더니 말했어.
“와, 이 과자 진짜 맛있네요! 이거 한 입 먹고 커피 한 모금 먹으면 진짜 맛있어요. 와, 진짜 커피랑 너무 잘 어울린다.”
혼자만의 티타임에 몰입해 있는 그녀는 나와 같은 사무실에 있지만 마치 다른 공간에 있는 것처럼 여유로워 보였어. 그 짧은 시간만큼은 엑셀도 피피티도 그녀를 괴롭히지 못하는 것 같았어.
이상하게도 답례품 과자를 저렇게 맛있게 음미하면서 먹는 모습이 계속 내 마음에 남았어. 생각해보니까 나는 답례품 과자를 (그게 맛이 있든 없든) 저렇게 즐기면서 먹어본 적이 없었던 것 같은 거야. 항상 모니터 앞에서 우적우적, 모자란 당을 충전하듯이 칼로리를 섭취하기만 했지.
왜 그랬을까? 왜 나는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거북목이 되어가는 목을 펴지도 못한 채 맛도 모르고 과자를 삼켰을까? 사실 일이 그렇게까지 바쁜 것도 아니었는데, 그냥 관성적으로 하던 일을 계속하면서 기계적으로 과자를 입에 넣었어. 답례품 과자는 어쩌다 공으로 얻은 간식이니까, 이걸 소중히 즐기면서 먹어야겠단 생각 자체가 없었던 것 같기도 하고.
옆자리 동료의 행복한 티타임을 보면서 나는 잠시 생각에 빠졌어.
조금 비약을 하자면, 나는 모니터 앞에서 맛도 모르고 답례품 과자를 먹어치우는 것 같은 자세로 줄곧 살아오지 않았나 싶더라.
팀 사람들과 점심을 먹을 때는 입으론 까슬한 밥알을 씹으면서 속으로는 이 어색한 침묵을 깨고 다음에 무슨 화제를 꺼낼지 생각하지. 퇴근해서 저녁을 먹으면서는 눈은 넷플릭스에 두고 손에는 휴대폰을 쥐고 남의 SNS를 탐색해. 주말에 친구를 만나서는 화사한 브런치 플레이트 앞에서 한 귀로는 친구의 이야기를 듣지만 맘속으로는 다음 주의 회사 일 걱정을 동시에 하고 있어.
늘 한 발짝 앞서 나가는 마음은 한 번에 두 가지를 하려고 용을 쓰지. 당장 할 일과 집중해야 할 대상 앞에서 먹고 마시는 즐거움은 가장 먼저 보류가 되고 말아.
예전에 동생이랑 같이 살 때 이런 말을 많이 들었어.
"언니, 밥 좀 그렇게 먹지 마."
"응? 내가 먹는 게 왜."
"혼자 먹는다고 그렇게 부엌에 서서 깨작깨작 먹고 치우지 말고, 국도 데우고 반찬도 다 꺼내고 밥도 따뜻하게 데워서 먹어. 왜 그렇게 밥을 급하게 불쌍하게 먹어? 전쟁통 피란민처럼."
동생과 시간이 맞지 않아서 밥을 혼자 먹어야 할 때, 주로 동생은 자는데 나는 배가 고플 때, 나는 혼자서도 밥상을 잘 차려 먹는 편은 아니야. 냉장고 속 차가운 반찬들을 꺼내서 대충 먹고 치우지. 그냥 나도 모르게 싱크대에 서서 밥을 후루룩 먹어버릴 때도 있어.
그런데 그렇게 먹다가 동생이 부스스한 얼굴로 일어나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 먹는 모습을 보면 갑자기 이상하게 화가 치미는 거야. 그럴 땐 정말 전쟁통 피란민처럼 더 급하게 밥을 씹어 삼키게 돼. 동생은 그럴 때마다 아침부터 숨이 막히는 것 같았대. 네가 안 일어나서 내가 혼자 이렇게 대충 차려먹고 있다고 꼭 시위하는 것처럼 보였다는 거야.
“아니 누가 그렇게 불쌍하게 먹으래? 왜 소중한 한 끼를 그렇게 대충 먹나 몰라.”
그러게.
왜 그러고 먹나를 생각해 보면, 그냥 나 한 사람 밥 먹는 데에 국도 데우고 반찬도 데우고 밥도 데워서 먹는 게 귀찮다기보단 좀 과하게 느껴졌던 것 같아. 그냥 나 혼자 한 끼 때우는 일인데, 뭘 그렇게 번거롭게 정성을 들여, 라는 마음.
그래서인지 나는 늘 나와 반대인 사람이 좋았어.
답례품 과자로 즐거운 티타임을 즐기는 사람(“음, 역시 바닐라보다 초코맛이 더 맛있어요.”), 오늘 회사 식당 점심메뉴를 보면서 신나 하는 사람(“와, 김치찌개다. 나 김치찌개 진짜 좋아하는데.”). 대단하지 않은 사소한 일이지만 그 순간에 주의와 정성을 기울이고, 또 잘 기뻐하고 감탄하는 사람에게 끌렸던 것 같아.
예를 들어 방송인 이영자는 별 것 아닌 음식이어도 그게 얼마나 맛있는지를, 아주 황홀해하면서 이야기하잖아.
이영자는 절대 '그냥 김에 밥 먹었어'라고 말하지 않아. "김을 약한 연탄불에 슥-슥-" 구워서 김을 “쭉- 찢어가지고 그걸 양념장에다가 탁-“ 해서 먹으면 "밥 한 그릇 뚝딱이지 뭐~"라고 표현해. 그렇게 맛있는 걸 묘사할 때 이영자의 눈은 아주 아련- 해져. 자기가 사랑하는 것에 대해 그렇게 감탄과 아련함을 더해서 말하는 사람은 정말 사랑스러워.
음식 맛 묘사를 잘하는 건 먹는 걸 좋아해서이기도 하지만, 사는 걸 사랑해서이기도 한 것 같아. 먹어봤자 그 맛이 그 맛이라고, 사는 게 그게 그거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그런 묘사를 할 수 없을 거야. 나는 이영자의 생생한 맛 묘사를 들으면 삶에 대한 애정과 긍정이 느껴져서 좋았어.
빈 답례품 과자 상자에 남은 과자 부스러기를 털면서, 문득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사는 방식을 닮고 싶어졌어.
밥 한 끼, 차 한 잔, 오후의 주전부리, 다 별 것 아닌 일이지만 일상의 큰 즐거움이니까. 아무리 바쁘더라도 그 순간만큼은 잠시 여유를 갖고 정성 들여서 먹고 마시는 것에 집중하는 것, 그리고 세심하게 오감을 동원해서 맛을 느끼고 아 정말 맛있다, 하고 감탄하는 것. 그리고 그걸 주변 사람에게 표현하는 것까지.
이젠 더 이상 혼자서 불쌍하게 야박한 밥상을 차려먹고 과자를 맛도 모른 채 우적우적 먹고 싶지가 않아. 짧고 사소한 즐거움일지라도 충분히 시간을 들여 경험하고 음미하고 싶어.
나도 언젠가는 흰 밥에 김만 먹더라도 정성을 들여 맛있게 먹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김을 불에 살짝 굽고 흰 밥을 따뜻하게 데우고 그냥 간장이 아니라 깨소금과 실파를 송송 썰어 넣은 양념장을 곁들여 밥 한 그릇을 뚝-딱, 하는 사람 말이야.
그럼 그때는 답례품 호두과자를 받으면 모니터 앞에서 대충 먹어 치우는 게 아니라, 적당한 온도에 깔끔하게 우린 따뜻한 녹차와 함께 먹어야지. 달달한 단팥 소를 입안에서 녹찻물에 살살 녹여 먹으면서, “음, 역시 답례품으론 호두과자가 제일 좋아.”라고 꼭 소리 내어 말해보고 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