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을 세어 보는 날

살아가고 싶은 마음이 들도록

by 몽돌

갑자기 닥친 불행에 어쩔 줄 모르며 몇 주를 보냈다. 어째서, 이런 일이, 나에게? ...라는 생각만을 거듭했다. 몇 프로의 확률로 일어나는 일, 이라는 말은 전혀 위로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왜 하필 내가 운이 안 좋은 쪽이었나요?라고 하늘을 원망하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멀쩡하게 사람들과 대화하고 때론 웃고 일을 한다. 가끔은 너무 덤덤해서 스스로 대견하다가도, 금방 눈물이 차오른다. 마음을 다잡으려는 노력은 빗길의 자전거처럼 위태위태하다. 속절없이 계속 미끄러지고 만다.


길을 걸으면서 계속 생각하는 건 그놈의 확률, 확률이다. 왜 무정한 확률은 나를 빗겨나가지 않았을까. 이젠 아파트 단지를 걷다가도 위에서 뭔가가 떨어져 다칠 확률에 대해 생각한다. 버스를 타다가도 사고가 일어날 확률을 속으로 셈해 본다. 이제껏 이런 확률에 당하지 않고 살아왔다니. 어제까지 내가 서 있던 그 자리는 얼마나 많은 행운이 겹쳐 만들어낸 자리였나. 나는 그렇게 아슬아슬한 확률을 뚫고서 살아남은 사람이었던 것이다.


지금도 눈을 꼭 감고 시간을 돌려, 불행을 알기 전으로 돌아가고 싶지만 그럴 수 없다는 걸 안다. 불행은 나의 바로 옆에서 시커먼 아가리를 딱 벌리고 서서, 어서 이리로 들어와라, 피해봤자 별 도리 없을 거다, 라고 말한다. 불행에 잡아먹히지 않기 위해 내가 갖고 있는 기쁨들에 더 눈길을 주려 애쓴다. 불행도 어떻게 건드리지 못하는 내 고유한 기쁨의 수를 가만히 세어 본다.


놀랍게도 큰 불행 속에서 알게 된 작은 기쁨들이 있다. 아무렇지 않게 누려온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귀한 것이었는지 알게 되었다. 늘 곁에 있어주는 가족과 친구들이 더 애틋하고 소중해졌다.


그래서 이번 주는, 그럴 기분이 아니더라도 기쁨에 대해 써 보기로 한다.







삶에서 즐거움을 찾는 것은 힘들거나 고통스러운 일을 밀쳐둔다는 뜻은 아닙니다. 내 주위에 이미 존재하는 즐겁고 행복한 일에 마음을 열고, 그 일을 마음껏 누리고 즐기고 행복해하는 것입니다.
-<붓다처럼 살기> '마음껏 기쁨 누리기' 장에서


먹는 기쁨. 큰 스트레스 앞에서는 입맛도 사라진다는 걸 알았다. 하지만 제아무리 큰 불행이라 할지라도 하루를 꼬박 굶는 것을 이기진 못했다. 긴 공복 끝에 먹은 죽은 무척 맛있었다. 고소하고 따뜻한 죽을 입으로 퍼 나르는 동안에는 잠시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먹을 수 있어서 기뻤다.


자는 기쁨.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하다가 오랜만에 낮잠을 푹 자고 일어났을 때, 모든 것이 리셋된 것 같은 개운함을 느꼈다. 잠깐이지만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았고 잘 이겨낼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귀여움이 주는 기쁨. 책도 읽히지 않고 뉴스도 보고 싶지 않아서, 유튜브로 귀여운 동물 동영상을 잔뜩 보았다. 이 와중에도 풉, 하고 웃을 수 있었다. 불행을 이기게 하는 세상의 모든 귀여움들을 수집하고 싶다.


친구와 한 시간이 넘게 통화를 하고 전화를 끊으며, 나도 모르게 미소짓고 있는 것을 느낄 때. 나도 내 감정을 직면하기 힘들 때, 나보다 더 맹렬하게 슬퍼해 주고 분노해 주는 친구가 있어 기쁘다. 다음엔 나도 그를 위해 내 감정을 아낌없이 쓰겠다고 마음먹는다.


지하철에서 자세가 유난히 반듯하고 단정한 사람 뒤에 섰을 때. 그 사람의 어깨를 보면서 이 사람도 나름의 힘듦을 안고 살고 있을까 생각해본다. 괜히 나도 허리를 곧게 펴 보게 된다.


넷플릭스에 아직 보지 않은 명작들이 많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시간이 약이라는데 맨정신으로 버티기엔 너무 쓴 약이다. 넷플릭스 강력추천 리스트를 손에 쥐자 이번 한 달이 덜 두려워졌다.


해 질 녘 산책길, 어둑해진 거리에 집집마다 노란 불이 켜진 것을 볼 때. 남의 집 근처를 지나다가 젓가락 부딪히는 소리와 된장찌개 냄새에 저 집은 무슨 사연을 갖고 살고 있을까를 상상해 보는 순간.


길을 걷다 맛있는 냄새가 나서 들린 빵집에서, 집게를 들고 서서 무슨 빵을 살까 천천히 고민하는 일.


친구가 힘내라고 선물해준 쿠폰으로 음료를 사 마실 때. 친구가 써 준 귀여운 메시지를 읽을 때. 그리고 메뉴 변경을 했는데도 잔액이 딱 맞게 떨어질 때의 기분좋음.


봄꽃을 다듬어 꽂아두고 꽃향기를 맡는 순간. 이미 잘린 가지인데도 꽃은 물을 꿀꺽꿀꺽 많이도 마셨고 심지어 매일 조금 자라는 것처럼 보였다. 매일 물을 갈아주면서 너도 살아 있구나,라고 보드라운 꽃잎을 만져 볼 때의 마음.


앙상해 보이는 겨울 나뭇가지에 올해의 잎눈이 오밀조밀 맺혀 있는 걸 볼 때. 추운 겨울 내내 꽁꽁 싸맨 채 봄을 기다렸을 잎눈의 마음을 상상해 볼 때. 그래 봄은 오겠지, 또 좋은 날이 오겠지, 하고 어린 잎눈을 만져 볼 때.







말하자면 나는 의도적으로 특정한 감각을 강화시키며 살아왔다고 할 수 있다. 어떻게든 살아 있어야 한다는 쪽으로 말이다. 살아 있고 싶도록 깨끗하게 옷을 입고, 살아 있고 싶도록 정갈하게 책상을 정리하고, 살아 있고 싶도록 집 안에 쓰레기가 쌓이지 않도록 했다. 살아 있고 싶도록 아름다운 것을 보고 싶었고, 살아 있고 싶도록 나를 먼 곳으로 데리고 가고 싶었다. 그리하여 살아 있고 싶도록 맛있는 음식이 주는 기쁨을 즐기고 싶었다. 살아 있고 싶도록 나는 내가 벌어들이는 돈을 썼다. 내가 가진 적은 것들이 나를 비참하게 할까 봐 대범한 마음과 대범한 태도를 가지려고 했다. 삶을 살아가고 싶은 마음이 들도록, 무엇보다 몸이 그 마음을 감당할 수 있도록, 나는 나를 훈련시켰다.


마음이 힘들 때 유진목 시인의 <디스옥타비아> 중 위의 구절을 자주 읽었다. 살아 있고 싶도록, 살아 있고 싶도록, 이 반복되는 기도문 같다. 살아가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도, 몸이 그 마음을 감당할 수 있게 하는 것도 모두 노력과 연습에 의한 것이라면, 어쩔 수 없이 좀 더 성실해져야 할 것 같다. 불행이 어쩌지 못하는 기쁨을 부지런히 모으며 덜 힘들게 이 시기를 통과해 나가고 싶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