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죽은 사람 책만 읽어

서점의 문학 신간 코너가 불편해질 때

by 몽돌


내가 다닌 중학교는 옥상 문이 늘 열려 있었다. 옥상에 오르면 도시 전체가 다 보였다. 도시 전체를 두르고 있는 야트막한 산과 산 너머 바닷가, 그리고 앙증맞은 섬까지도. 우리는 점심시간이면 옥상에 자주 올라갔다. 건너편 산에 있는 절에서 스님들은 어떤 마음으로 하루를 보내고 있을지, 저 바다 건너편에는 또 어떤 세상이 펼쳐져 있을지 상상하곤 했다.


옥상에는 앉을 곳이 없었다. 친구와 같이 옥상에 올라가면 햇살에 따끈하게 달궈진 파이프 위에 걸터앉아 파란 하늘을 바라보았다. 선생님이 보시던 신문지를 깔고 누워기도 했지만 강한 바람에 신문지가 날아가 버리기 일쑤였다. 체육복을 입은 채 파이프 위에 눕는 편이 나았다. 파이프 위에 누워 하늘을 보다 멀리 바다에서 뿌우- 하고 뱃고동 소리가 들리면 우리는 야 이거 누구 폰 진동소리냐, 하고 깔깔거렸다.




자주 옥상에 같이 올라가던 친구 중에 A가 있었다.


인형 머리카락처럼 숱이 얇고 자연갈색이던 머리를 짧게 자른 그 애는 엘프처럼 뾰족한 귀를 갖고 있었다. 말랐지만 주근깨가 있는 볼만 도드라지게 튀어나왔다. 오물오물 밥을 먹고 있을 때면 꼭 햄스터처럼 보였다. 목소리도 작고 말도 많지 않았지만 A입을 열면 누구든 말에 귀를 기울였다.


우리는 같은 반이었지만 도서관에서 많이 만났다. A는 도서부, 나는 문예창작부였다. 문예창작부 담당 선생님은 시인을 꿈꿨지만 기술가정을 전공한 분이었다. 수업시간마다 시 몇 편을 골라 읽어주었는데, 특유의 낭랑한 목소리에 경상도 사투리가 섞여서 선생님이 읽어 주는 시는 더 절절하고 문학적으로 들렸다.


나는 선생님이 수업 시간에 알려준 책을 찾으러 도서관에 자주 갔다. 그러면 도서부에서 학교의 도서관을 관리하는 방과 후 활동을 하는 A를 만날 수 있었다.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면 책 뒷면에 빌린 사람의 이름과 반납일자를 적어야 했다. 영화 <러브레터> 나오는 것처럼.


이 방식의 좋은 점은 누가 이전에 책을 빌렸는지 알 수 있다는 것이다. 호기심과 도전정신을 품고 박경리의 <토지> 1권을 빌렸더니 대여섯 명의 대출자 이름이 적혀 있었다. 2권부터는 세 명, 3권부터는 두 명으로 줄어 있었다. 5권이 넘어가자 내 이름만 남았다.


나는 <토지>같이 유명하고 어려운 책에 교내 최초로 내 이름을 남기고 있다는 것이 자랑스러웠다. 오직 책에 이름을 남기겠다는 일념으로 <토지>를 꾸역꾸역 읽었다. 도중에 몇 번의 고비가 있었지만 그때마다 새로운 러브라인이 등장해 버틸 수 있었다.




내가 <토지>를 빌리러 갈 때마다 그 애는 늘 이름도 모르는 외국 작가의 책을 읽고 있었다. 앙드레 지드. 라이너 마리아 릴케. 토마스 만... 이런 사람들 말이다. 나는 토지 n권의 맨 뒷장에 내 이름을 적는 A를 보면서 물었다.


"너는 혹시... 죽은 사람 책만 읽니?"


그녀가 폭소를 터뜨렸다. 아니, 그건 아닌데…!! 하고 격하게 부인했다. 웃으면 귀가 쉽게 빨개지는 친구였다.


A는 아니라고 했지만 내가 책을 새로 빌리러 갈 때마다 늘 죽은 사람(그것도 대개는 백 년도 전에 죽은 외국 사람)책을 읽고 있었다. <토지> 마지막 권에 내가 학교에서 처음으로 이름을 쓰는 날, A는 특유의 삐뚤삐둘한 글씨체로 내 이름을 한 자 한 자 적고는 완독을 축하하는 축포를 작게 그려넣어 주었다.








갑자기 죽은 사람 책만 읽냐는 말이 떠오른 건 얼마전 서점에서 나눈 대화 때문이다.


요 몇 년 새 또래의 젊은 작가들이 문단에 많이 등장했고 나는 그들의 작품에 깊이 공감하며 재미있게 읽었다. 이렇게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글을 써 주어서 고맙다는 생각도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혜성 같은 신인작가의 책을 펼쳤을 때, 저자 약력의 나이 부분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나를 보게 되었다.


먼저 책날개의 작가소개를 보고 출생연도를 확인한다. (요새는 출생연도를 표시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그럴 때는 검색을 한다...) 그 다음 등단 연도에서 출생연도를 빼서 몇 살에 등단했는지를 계산한다. 그 나이가 나보다 많은 경우 안도하고, 더 적은 경우는 마음에 침침한 그림자가 드리운다.


나와 엇비슷한 또래의 작품을 읽으면 마음이 아프다. 글이 좋을수록 더 그렇다. 아니 어쩜 이걸 이렇게 써? 맨날 활어회만 먹고 다니나, 어떻게 글이 이렇게 살아있지? 집에 가서 맥주 캔을 까게 된다. 이 이야기를 이 정도까지 발전시켜서 이런 결과물을 낼 수 있다니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이 작품에 쏟은 그의 재능과 노력과 시간을 가늠해 본다. 그러면 마음 속의 심판관이 깐죽거린다.


'야 너는 이걸 부러워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돼. 재능까진 갈 것도 없이, 너는 시간도 노력도 쏟지 않았잖아.'


점점 좋아하는 책도 그냥 좋아하는 마음으로만 읽을 수가 없게 되었다.


내가 서점의 문학 신간 코너에서 이런 복잡한 마음을 토로하자, 같이 간 P는 늘 그랬듯이 공감보단 솔루션을 제시해 주었다.

"그럼 괜히 비교되는 젊은 사람 책 말고, 죽은 사람 책 읽으면 되겠네. 고전 위주로."


그렇다. 한국으로 치면 해방 전후나 최소 1970년대에 쓰인 거장의 작품을 읽으면 된다. 외국 작품은 이미 죽은 자들의 고전을 읽으면 된다. 이청준이나 버지니아 울프한테까지 질투심이 들진 않을 테니까.


P는 내 표정을 보며 솔루션2를 제시했다.

"아님 아예 비문학 위주로 읽던가. 경제서, 실용서 이런 거."


결국 우리는 요리책 한 권만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작년에 LG에서 85년생 여자 상무가 나왔다는 뉴스를 본 후, 85년생 회사 선배가 종일 허탈해하던 것이 떠오른다. 그는 동갑내기가 상무가 될 동안 나는 뭘 하고 살았나, 하고 한탄했다. 자기의 인생과 그녀의 인생을 연대기 순으로 비교하며 대체 무엇이 이 차이를 만들었는지 계산을 하고 있었다.

- 군대 2년 갔다 옴(휴학 고려 시 총 3년)

- 고시 준비 n년 함

- 재취업 준비 1년 등등...


씁쓸함을 감추지 못하는 그의 표정을 보며 생각했다. 나도 동갑내기가 상무가 되면 나는 뭘 하고 살았나 싶은 감정을 느끼게 될까? 언젠가 다가올 동갑 부장과 동갑 상무의 등장 앞에서 나는 담담할 수 있을까?


그때는 '난 뭐 딱히 임원 되고 싶지 않은데...' 라고 생각했었지만 지금은 다르다. 나는 내가 그렇게 쿨하지 못하다는 걸 안다. 나 역시 서점에서 90년대생의 등단작을 발견하고는 이 친구는 문예창작 전공하고 글만 썼잖아.... 자기 전공과목 하잖아.... 하면서 작가의 원래 나이에 4년을 더하는 셈법을 구사했기 때문이다.








A와 같이 옥상에 올라가면 우리는 학교 인근 목욕탕 굴뚝에서 뉘엿뉘엿 올라가는 연기를 한참 바라보곤 했다. 그녀는 아주 가끔 자기가 쓴 글을 나에게 보여주었다. 어린 마음에도 와- 정말 잘 쓴다고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분명 짧은 글인데도 읽고 나면 잠시 다른 세계에 다녀온 것 같았다. 우리는 분명 같은 풍경을 보고 있었지만 그 아이의 글에는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이후에 우린 서로 다른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A가 고등학교에서도 글쓰기 대회에서 상을 많이 탔고 결국 문예창작과를 갔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고향을 떠난 뒤로는 소식을 듣지 못했다.



A는 계속 쓰고 있을까?

이름을 검색창에 넣어 본다. 나오지 않는다.


그래도 여전히, 다른 방식으로라도 쓰고 있을까.


물어보고 싶다.

너도 노트북 안에 완결 짓지 못한 여러 이야기들이 있는지. 자주 쓰자고 다짐하지만 퇴근하고 나면 일기도 잘 못 쓰고 자는지. 서점을 좋아하지만 젊은 작가들의 글 앞에선 괜히 마음이 달뜨기도 하는지. 혹시 그래서 다시 죽은 사람 책을 찾게 되는지.


다시 만나게 된다면 야, 너 아직도 죽은 사람 책만 읽냐? 하고 놀리고 싶다. 놀리면 쉽게 빨개지던 귀를 보면서, “야 나도 그래. 산 사람 글은 부러워서 못 읽겠어!!” 하고 숨겨둔 속마음을 털어놓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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