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팔리고 싶은 마음
선비 정신을 버리고 인스타그램을 연다
책을 내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서점을 찾았다. <신간 에세이> 매대 위에 예쁘게 누워 있는 책을 보고 인증샷을 남기며 신기해하다가, 혹시 누가 내가 작가인걸 알아챌까 싶어 멀찍이 떨어져서 매대를 관찰했다. 어떤 사람들이 내 책을 집어들었다 내려놓는지, 실제로 사 가는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 서점 웹사이트에 들어가 내 책 재고 현황을 찾아 보기도 했다. 지인들은 교보문고며 반디앤루니스에서 신간 에세이 매대에 예쁘게 누워 있는 책 사진을 찍어 보냈다. “어머, 내 친구 책이 교보문고에 있어!”
그러나 그런 행복한 날들은 딱 3개월, 3개월까지였다. 매대에 앞표지를 드러내 놓고 ‘누울’ 수 있는 책은 한정되어 있어서, 대개 출판사들은 그 자리를 마케팅비를 주고 산다. 3개월까지는 그래도 신간 취급을 받고 <신간 에세이>에 누울 수 있다. 거기서 <에세이 베스트>나 <에세이 스테디셀러>로 넘어가면 베스트. 그렇지만 대개 마케팅비의 효력이 끝나는 3개월 이후에 대부분의 책들은 눕는 매대에서 나와 <한국 에세이 ㅂ~ㅅ> 코너 서재에 꽂혀서 책등만 보여주는 ‘서 있는 책’이 된다. 그리고 그때 내 책의 재고현황은 매장당 1-2권 수준으로 줄어든다. (그렇다. 계속 재고현황을 추적해 왔기에 아는 사실이다)
'서 있는 책’이 된 이후에 다시 매대에 ‘누운 책’이 되는 것은 쉽지 않다. 유명 아이돌이 방송에서 언급해준다거나 인스타에 독서 인증샷을 찍어 올려주지 않는 이상은 훅훅 떨어져 가는 판매지수가 반등하기는 어렵다. 작가 본인이 책 홍보를 위해 할 수 있는 일도 생각보다 많지 않다. <언어의 온도> 이기주 작가는 전국의 서점을 돌아다니며 본인의 책을 홍보한 끝에 '입소문'으로 베스트셀러를 만들었다고 하지만 사실 이기주 작가는 본인 책의 작가 겸 발행인이기도 했으니 논외다. 작가 본인의 노력으로 자신의 책을 사람들이 다시 보게 하여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처럼 판매 ‘역주행’을 이뤄내는 것은 참으로 어렵다.
그래도 뭔가 해야겠다는 성실함으로, 어쩌면 반은 의무감으로 인스타그램 작가 계정을 만들었다. 사실 나는 개인 인스타도 없고, 오래 전에 만든 페이스북 관리도 잘 하지 않아서 여전히 내 페북 타임라인엔 교환학생 시절 외국인 친구들이 올려준 엽기적인 단체사진이 가득하다. (태그를 지우면 될 텐데 귀찮다) 이런 내가 새로 계정을 만들다니!
처음엔 한동안 책이 잘 팔리고 있다는 내용, 서점에 가서 찍은 내 책 사진, 독자들의 피드백, 친구들의 반응 등등을 예쁜 사진과 함께 올렸다. 그러나 마의 3개월이 지나고 나니, 뭘 더 올려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끊임없이 후속작을 내거나 매일매일 독자 북토크를 하지 않는 이상, 작가 계정에는 대체 무엇을 업데이트해야 하는 거지?
나는 내 나이대와 비슷한 에세이 작가들의 계정을 팔로우하며 작가의 계정엔 어떤 콘텐츠가 들어가야 하는지를 분석하기 시작했다. 크게 다섯 가지로 정리할 수 있었다.
1. 작품 활동(최근에 쓰는 글과 연재물)에 대한 홍보
2. 북토크, 팟캐스트 출연, 유튜브 출연 등 이벤트 홍보.
3. (어느 정도 정제되고 아름답게 편집된) 일상 이야기
4. 좋은 책 추천(북스타그램)
5. 반려견과 반려묘.
그리고 인스타그램은 시각적인 플랫폼이기에 1~5의 게시물 이미지의 톤 앤 매너가 일정하면 좋다.
나는 1~4번을 전부 시도해 보았지만 (5번은 반려동물이 없어서 할 수 없었다) 어떤 방향으로도 갈피를 잡지 못했다. 어느 날은 비 오는 퇴근길 사진을 올려놓고 상무님 나빠요, 회사 싫어요, 거지 같은 월급쟁이 생활! 을 토로했다. 또 어떤 날은 브런치 업로드 사진을 캡처해 두고 아나운서 앵커 같은 어조로 요즘도 브런치에 글을 쓰고 있음을 어필했다. 그리고 또 어떤 날은 뭐라도 올려야겠다 싶어 봄꽃 사진만 열 장을 올려놓고는 ‘꽃이 좋다니 이제 나도 나이를 먹었나 보다’ 같은 별 시답잖은 농담을 올렸다.
신기한 것은 게시물을 올리면 팔로워 수가 올라가는 게 아니라 떨어진다는 것이다… 뭔가를 하면 떨어져 나가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올라와 있는 팔로워 수의 마법. 이게 바로 팔로워 수 보존의 법칙인가? 신께선 내가 감당할 수 있는 팔로워 수만 내려 주시는 걸까?
계정을 운영한 지도 몇 달이 지난 지금, 여전히 내 인스타그램은 드문드문 올라오는 연속성 없는 사진들로 중구난방이다. 그리고 나는 지금 이 수준에서 만족하기로 했다. 남에게 보여주고 싶은 이미지를 선택하고 전시하는데 들이는 품에 비해 아웃풋이 너무 적다는 판단에서다. 짧게 말하자면 내가 사진도 잘 못 찍고 업로드를 잘 못해서...다. 일 년의 혼선 끝에 내 계정은 내 책을 읽어준 고마운 사람들에게 하트를 눌러주는 용도, 그리고 가끔 디엠과 답글을 통해 독자와 소통하는 용으로만 자리를 잡았다.
왜 나는 판매부수를 여전히 들여다보고 팔로워 수에 연연하는가. 유명해지고 싶고 잘나고 싶은 건, 내가 너무 속물이어서일까? 그렇다고 내 삶을 제대로 '전시' 하지도 못하면서 말이야... 이 주제로 인해 계속 갑갑한 마음을 안고 지내던 중, 우연히 만난 책 제목을 보고 막혔던 가슴이 쑥 내려가는 것 같았다. 이주윤 작가의 에세이 <팔리는 작가가 되겠어, 계속 쓰는 삶을 위해>. 아니 이렇게 대놓고 표지에다가 ‘팔리는’ 작가가 되겠다고 쓰다니! 너무 통쾌했다. 그렇지, 잘 팔려야 계속 쓰지. 그럼, 작가도 사람인데 잘 팔려야 계속 쓰고 싶지.
<팔리는 작가가 되겠어>는 내 안의 얄궂은 선비정신- 책을 낸 것만으로도 명예고, 잘 팔리고 안 팔리고에 연연해서는 안된다-을 버릴 수 있게 해 주었다. 책을, 문학을 장사치의 마음으로 보면 안된다고, 팔아먹으려 하면 안된다고 나도 모르게 나를 검열하고 있었나 보다. 사실은 십 년 전의 실연 경험도 끄집어내서 어떻게든 글의 한 장면으로 '팔아먹으려고’ 하는 마당에, 유독 판매에 대해서만은 왜 엣헴, 엣헴 하는 선비처럼 굴었을까.
책 백 권을 팔면 인세는 세금 떼고 약 십만 원 정도를 받는다. 매일 8시간 회사에서 엉덩이만 붙이고 있어도 일당 십만 원을 받는데, 내 책을 백 명이 사 줘도 똑같이 십만 원이다. 회사에서 돈을 쉽게 주는 건지 아니면 글을 써서 받는 돈이 너무 짠 건지 고민하게 되는데 아무래도 후자가 맞는 것 같다. 백 권에 십만 원, 천 권에 백만 원이라면 대체 전업 작가는 (인세율이 조금 높을 수는 있겠으나) 어떻게 먹고 사는 걸까? 정말 글쓰는 것만으로 생활이 가능할까?
모든 일에 인풋과 아웃풋을 따지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시간을 들인 노력은 대개 돈으로 치환이 된다. 유독 창작만이 고매한 그 무엇으로 여겨지며 이 셈법에서 벗어나 있지만, 글을 파는 일은 실상 박리다매에 가깝다. 그렇다면 일상 속에서 귀한 시간을 쪼개어 창작을 지속하는 원동력 중의 하나는, ‘잘 팔리는 것’이다.
잘 팔리고 싶다. 책도, 작가로서의 나도.
이 마음을 인정하는 것은 쉽지 않다. ‘마마, 소인을 꼭 영의정 시켜주시옵소서.’ 하고 읍소하는 선비, 승진에 연연하는 선비가 된 기분이다. 쑥스럽고 징그럽다. 나는 이 욕망에 어느 정도로 솔직해질 수 있을까. 어느 정도까지 능청을 떨 수 있을까. 오늘도 나는 내 대중없는 인스타그램 계정을 켜 놓고 글을 썼다 지웠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