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책을 낸 사람의 기쁨과 슬픔
계속 판매지수를 보게 된다
최종 원고를 출판사에 전달하고 나서 어느 날 밤 회사에 관련된 악몽을 꿨다. 꿈에서 부장님이 내게 말했다.
부장님: 야 너 책 냈더라?
나: 네? (당황) 아니 그걸 어떻게 아셨어요?
부장님: 다 아는 수가 있지~ 안 그래도 요새 너 요새 딴 데다 정신 팔려 있는 것 같더니~ 책을 다 냈어? 대단하다 야 내가 책을 사지는 않았는데 교보문고 간 김에 서서 슥 다 훑어봤지~ 글 잘 쓰던데? 그런 글은 잘 쓰면서 메일은 왜 그렇게밖에 못 쓰냐?
나: #$#%^^&@@$%^&* (대응 불가)
부장님: 아 맞다, 인스타그램도 책에 나와 있길래 팔로우했어. 다음 책은 언제 나와? 나오면 거기에다 알려주는 건가?
다시 생각해도 등골이 서늘한 악몽이었다. 새벽에 잠을 깨어 다시 자지 못하고 그냥 일찍 일어나 출근을 했다. 지하철에 타서 생각했다.
괜찮아, 사람들 어차피 책 많이 안 읽어. 봐봐, 지금 지하철 한 칸에 앉은 사람 열네 명, 선 사람 여섯 명. 그중에 휴대폰 안 보고 책 보는 사람 두 명이야. 20분의 2면 십 프로, 대한민국 독서인구는 많아봤자 십 프로 정도밖에 안 된다고. 그러니까 책 한 권 내도 아무것도 달라지는 건 없어. 그리고 회사 사람들도 책 안 읽기는 마찬가지일 거야. 그리고 알아도 뭐 그렇게 신경 쓰겠어?
그리고 책을 내고 나서 몇 주가 지난 지금, 그때의 생각이 맞았다고 생각한다. 아직 위의 악몽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정말, 책 한 권 낸다고 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변한 건 나였다. 독립출판으로 냈던 책이 정식 출간으로 이어진 것에 감사한다며, 원고를 넘겼으니 이제 내 할 일은 다 했다며 초연했던 그 사람은 어디로 갔나. 매일 아침에 눈을 뜨면 가장 먼저 도서판매 사이트에 접속해서 판매지수와 재고현황을 본다. 출근길 지하철을 탄 다음은 인스타그램 피드와 블로그 리뷰를 찾아본다. 새롭게 추가된 피드나 리뷰는 많지 않아서 다음 지하철 문이 열릴 때까지 충분히 다 읽어볼 수 있다. 리뷰 속 말 한마디에 감동을 받기도 하고 리뷰어가 괜히 툭 던진 말이 오래 남아 있기도 한다. 오늘까지만 보고 내일부턴 안 봐야지, 하고 다짐하지만 내일 또다시 찾아본다.
그렇다면 대체 정확히 언제까지 이렇게 판매지수와 순위의 노예로 살아야 하는가? 가끔 미친 듯이 사이트에 접속하는 나에게 환멸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나 그 안쓰러운 행위, 그 나쁜 습관은 어느 날 불현듯 딱 끝낼 수가 있다. 언제부터냐, 바로 내 책의 판매지수나 순위가 점차 내려가는 시점부터 누가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이젠 안 찾아보게 된다.
- 채널예스, 임경선의 성실한 작가생활 <판매지수와 순위 스트레스> 중에서
이제 판매지수는 그만 봐야겠다고 다짐해본다.
사실 마음속 깊은 곳에, 책을 낸 후의 삶이 달라지기를 꿈꾸는 마음이 없었다고는 말 못 한다. 어디선가 봤던 인생역전 스토리의 주인공이 내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 어쩌다 낸 책이 생각지도 못하게 잘 팔려 유명해지고, 신문기사에 나오고, 작가로서의 삶을 키워나가다 결국엔 그토록 꿈꾸던 '회사를 다니지 않는 삶'을 살 수 있게 되는 그런 스토리 말이다.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것, 설령 그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더라도 인세로 먹고사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첫 책을 낸 사람의 마음은 공연한 희망을 품는다. 그래도 처음인데 뭐 어때, 상상은 자윤데 뭐 어때. 나는 내가 당분간 좀 더 설레길 바란다.
회사에서 답없는 회의와 문서작업을 거듭하며 오늘 또 내가 마모되고 있구나, 라고 생각될 때 화장실에 가서 리뷰를 찾아본다. 재밌게 잘 읽었다, 많이 공감하며 읽었다는 리뷰를 읽으면 모니터 앞에서 굽어버린 어깨가 펴지는 것 같다. 조금 으쓱해진 기분으로 다시 사무실 내 자리, 현실로 돌아온다.
퇴근길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엄마 나는 내 책이 잘 팔렸으면 좋겠나부다. 막 베스트셀러 되고 그랬음 좋겠나부다' 라는 내 투정에, 엄마는 경상도 말투로 쿨하게 말했다.
그런 거는, 되도 않는 일이다. 다 잘할라고 하지 말고 그냥 경험삼아 해라.
우리 엄마가 언제부터 이렇게 현자가 되었을까. 그래 책이 잘 팔리고 말고는 내 소관이 아니지, 그냥 이렇게 책을 내고 사람들과 소통하고 새로운 세계를 만나는 경험을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멋진 일이다, 라고 마음을 다잡을 때쯤 동생에게 카톡이 온다.
'언냐 책은 좀 팔리고 있나? 엄마가 맨날 언니 책 잘 팔리냐고 물어보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