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를 쓰는 것은 위험해
나는 나를 얼마나 드러낼 수 있을까
책을 냈다는 것을 시댁에 알려야 하나 말아야 하나 망설였다. 긴 고민 끝에 말을 하게 된 것은, 첫 책을 낸 작가가 흔히 가지기 마련인 "혹시 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면 어떡하지?"라는 걱정 때문이었다. 혹시 나중에 신문지면을 통해 내 책을 알게 되면 서운해하시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책을 냈다는 사실을 알리기로 결심했다. 만약 내 주변에 첫 책을 내 본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었더라면 그런 일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책을 다 읽고 나서 시댁 어르신들이 조심스럽게, 여러 번 말을 고르다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건넨 첫 반응은 이것이었다.
그런데… 우리 며느리 책에 왜 남편은 안 나오니?
아...
나는 한 번도 내 책을 그런 관점에서 본 적이 없었다.
그 책은 휴직 전후 내 일과 삶에 대한 내용이었고, P는 주제적으로도 시기적으로도 관련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기혼인 며느리의 책에 아들이 안 나온다는 게 어르신들의 마음에 걸리는 모양이었다.
글의 주제와 상관없이 기혼의 여자는 반드시 남편과 아이와 시댁 같은 키워드를 다뤄야 하는 걸까. 글에 남편이 들어가 있고 없고는 남편에 대한 사랑과는 관계가 없다고 말씀드리고 싶었지만 나는 우물쭈물하다 말을 삼켰다.
책의 존재를 꼭 시댁 어르신들께 말씀드려야 한다고, 그게 '도리'라고 말씀하던 아빠는 얼마 뒤 시댁에 직접 전화를 거셨다. 내가 책의 한 꼭지에 아빠가 보증을 잘못 서서 한때 가족이 고생한 이야기를 쓴 것이 맘에 걸리셨던 모양이다. 아빠는 시댁 어르신들에게 본인은 사실 그런 사람이 아니며, 내가 전후 사정을 잘 모르고 쓴 것이라 해명했다 한다.
허허~ 그리고 사돈어른이 P가 책에 안 나오는 걸 서운해하시더라?
그래서 내가 말씀드렸지~
사돈, 그렇게 치면 그 책에 어렸을 때 키워준 할머니도 안 나오고요, 저도 딱 두 줄 나옵니더 두 줄! 고모들도 자기가 안 나왔다고 다 서운해합니더!
아.......
이 책이 우리 집의 가계도도 아닌데, 내 삶에 영향을 미친 모든 가족 구성원이 나와야 하는 걸까? 어르신들은 내가 아는 누군가가 책을 내면 그 책에 꼭 자기 이야기가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하나? 아니 책이 무슨 페이스북이야? 사돈들끼리 누가 책에 나오고 누가 안 나왔는지를 이야기하고 있는 광경을 떠올리면 길을 걷다가도 덜 삶은 고구마를 오백 개 삼킨 것 같은 갑갑함이 몰려왔다.
그러던 중 엄마가 앓아누웠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에세이 중에 한 꼭지로 나는 엄마가 맞벌이를 하면서 늘 바빴고, 어린 시절 엄마의 사랑을 갈구했지만 늘 흡족하게 채워지지 못했던 기억들에 대해 썼다. 그 내용은 몇 문단에 불과했고, 곧 내가 회사에서 일하며 워킹맘의 삶을 이해하게 되었다는 내용이 이어졌다. 그런데 엄마가 그 글을 읽고 나서... 내가 이렇게 부족한 엄마인 줄 몰랐다며 말 그대로 앓아누운 것이다.
내가 엄마의 소식을 듣고 장녀가 흔히 가지기 마련인 죄책감 – “나는 (하는 것마다 엄마에게 상처나 주는) 나쁜 딸인가?"- 에 시달리는 동안, 동생은 엄마의 가감 없는 하소연을 한 시간 동안 들어주며 막내딸 노릇을 하고 돌아왔다. 동생은 나에게 이렇게 제안했다.
"언니야, 2쇄에는 그 부분만 수정이 안 될까? 그 부분만 좀 약하게 고치고 '그래도 나는 열심히 살아온 엄마를 사랑한다. 우리 엄마 최고!' 이런 거 한 줄 넣으면 엄마가 그래도 안심 안 하겠나."
나는 동생한테 말했다.
"아니… 그래도 이게 나름 문학인데.... 이게 문학 코너에 들어가 있는 책인데! 어떻게 그래…”
출간 후 이런 일련의 사건들로 나는 한동안 감기처럼 앓았다. 글을 쓴 것, 그걸로 책을 낸 것을, 또 그것을 가족들에게 알린 것을 후회하기도 했다.
나는 말하고 싶었다.
이건 그냥 제 버전의 이야기예요.
신문기사가 그날 일어난 모든 일을 쓰지 않듯이, 에세이도 취사선택한 현실이라고. 문학은 진실의 단면을 보여주지만, 어떤 면을 보여줄지 선택하고 어떻게 보여줄지 공들여 가공한 거라고. 그러니 이 책에 나오는 게 나의 전부가 아니고, 이 책은 나 자신이 될 수 없다고. 하지만 나를 아는 사람들은 원래 알던 내 모습과 대조하며 이 책을 읽을 것이고, 나를 모르는 사람들은 이 글을 통해 나를 판단할 것이다. 그러니 글을 쓰는 사람은 내가 선택해 드러낸 것만으로 이해받고 또 오해받을 각오를 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아니, 그렇다고 각오씩이나 필요한 걸까?)
그래서 나는 에세이를 쓰는 게 위험천만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에세이는 일견 쓰기 쉬워 보일 수 있지만 사실 자기 노출의 위험을 감수하고 쓰는 글이다. 그렇게 자기 삶을 재료로 열심히 글을 써도, 글 자체에 대한 평론이 아닌 작가 개인을 향한 평가로 이어지기 쉽다.
생활툰 작가들이 올린 웹툰을 보고 사람들은 '저 작가는 정말 저렇게 사나 보다'라고 생각하고, 에세이를 리뷰하면서 '이 작가는 이렇게 살면 안 된다'라고 훈시를 둔다. 겨우 책 한 권을 쓰고 가족들의 피드백만으로도 이미 쫄보가 된 나는, 매일매일 자아의 조각을 세상에 흩뿌리면서 그걸로 이해와 오해를 사는 셀럽들의 삶을 생각하면 순간 아득해진다. 아이고 참 여러모로 책이 더 팔리지 않은 게 다행이야! 하며 가슴을 쓸어내린다.
책을 세상에 내놓으면서 나는 내심 가족이나 친구처럼 나를 아는 사람들에게도 더 깊이 이해받고 싶었던 것 같다.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기에 오히려 말하기 어려운 것들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새벽에 깨서 잠 못 드는 불면의 시간에 무슨 생각을 하는지라던가, 만약 모든 걸 다 내려놓는다면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같은 것들 말이다. 하지만 정작 나의 '본캐'를 아는 사람이 준 피드백은 내가 기대했던 것과는 달랐다. 아마도 그들은 그 글 자체를 봤다기 보단, 자기가 알고 있는 나의 모습과 대조해가며 그 글을 읽었기 때문일 것이다.
미셸 오바마의 삶을 다룬 넷플릭스 다큐 <미셸 오바마의 비커밍>에서, 남편 버락 오바마가 미셸의 자서전 북 토크에 빅 게스트로 등장하는 장면이 있다. 버락 오바마는 웃으며 마이크를 잡고 말한다.
"(책 내용 중에서) 지적하고 싶은 부분이 몇 가지 있어요."
미셸은 말한다.
"여기선 안 했으면 좋겠네. 이건 내 책이야. 내가 보고 겪은 사실을 담은 책이라고.
(You don't have to do that here. It's my book, my version of reality.)"
미셸이 당당하게 이야기한 마이 버전 오브 리얼리티, 내 버전의 진실이라는 단어가 마음에 남았다. 그리고 무려 미국 전 대통령도 부인의 자서전에 묘사된 자기 자신에 대해 말을 덧붙이고 싶어 하는 걸 보며, 나는 앓아누운 엄마나 나는 이런 사람이 아니라고 해명한 아빠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활자화되어 나온 견고한 서사 앞에서, 누군가는 그건 아니야! 내가 아는 이야기는 그게 아니야!라고 말하고 싶을 수 있겠지.
그렇지만 나도 말할 수 있다.
이건 제 책이고, 내 버전의 진실이에요.
수많은 가족들의 요청 속에서 나는 2쇄 찍으면 수정해 볼게, 라는 공약들을 남발해 왔다. 다행히 아직 2쇄를 찍지 못하여 그 약속은 지키지 못하고 있다.
그 약속을 지킬 수 있는 날이 부디 빨리 왔으면 좋겠다.
물론 2쇄 소식은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