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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돌 Nov 06. 2017

잃어버린 진정성을 찾아서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냄비를 버리지 마세요


최근 어린 시절부터 보관해 온 편지 상자를 정리하던 중에 뜻밖의 편지를 발견했다. 발신인은 어린 시절 옆집에 살던 아주머니였다. 아주머니는 내가 보낸 편지에 대해 답장을 보냈는데 내가 전혀 기억하지도 못하는 사건에 대한 내용이었다. 편지의 맥락이 기억나지 않아 엄마에게 전화해 물어보니 엄마는 “너 어렸을 때 냄비 사건 기억 안 나니?” 라며 편지의 맥락에 대해 소상히 알려주셨다.


요약하자면, 이웃집 아주머니가 냄비를 문 앞에 여럿 내버렸고, 당시 초등학교 저학년이었던 나는 멀쩡한 냄비를 버리는 것은 낭비이고 버리는 방식도 무단투기에 가깝다고 생각하여 아주머니에게 편지(!)를 썼다고 한다. 내가 보낸 편지를 갖고 있지 않아 정확한 내용은 알 수 없지만, 아주머니의 답장으로 짐작해 보건대 이러이러한 이유로 냄비를 그렇게 버리시면 안 된다는 내용을 전달한 것 같다. 아주머니는 이웃집 아이의 뜬금없는 편지에 당황하면서도 너의 생각은 잘 알겠고 앞으로 조심할게, 라며 친절히 편지를 끝맺었다.


친절하게 답장해주신 아주머니, 감사합니다

이 사건을 떠올리며 나도 참 유별난 아이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남이 냄비를 버리건 말건 왜 초등학생이 편지까지 썼을까? 나는 어렸을 적에 밖에 나가기보다는 안에서 책 읽기를 좋아하는 조용한 아이였고 이웃집 아주머니와 친분이 깊지도 않았다. 왜 나는 무엇 때문에 ‘주제넘게’ 그런 편지를 쓴 걸까?


이 냄비 사건의 기억을 다시 떠올리게 되면서 나는 내가 한동안 외면하고 있었던 나의 또다른 핵심가치를 알 수 있었다. 정확한 워딩은 아닐 수 있지만 나는 이 아이덴티티를  ‘진정성’이라 이름붙이고 싶다. 내가 생각하는 ‘진정성’은 냄비를 버리는 것이 옳지 못하다고 생각한다면 그걸 생각에 그치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도 알려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옳음/바름/정직함을 추구하는 것. 속으로 생각하는 것을 밖에서도 실현해야 한다고 믿는 것. 이런 사람이 좋은 사람이고 세상은 이렇게 되어야 한다는 이상을 갖고 그걸 추구하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진정성이다.


진정성은 겉과 속이 다르지 않은 것이다



진정성있는 어른이 되고 싶었다


초등학생 때까지 동화작가가 되고 싶었던 나는 중학생이 되면서 사회활동가가 되고 싶다는 꿈을 갖게 되었다. 박경리의 <토지>와 조정래의 <태백산맥> 시리즈를 다 읽은 중학생에게 세상은 불의가 득세하고 불평등이 만연한 곳이었다. 혼자 잘 먹고 잘 사는 게 아니라 다 같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좋은 사회를 만드는 일에 헌신하고 싶었다.


당시 나의 롤모델은, 당시 많은 여자아이들과 마찬가지로, 바람의 딸 한비야였다. 나는 그녀의 오지여행가로서의 면모보다는 국제 NGO에서 활동하며 절대빈곤에 처한 사람들을 돕는 모습을 좋아했다. '왜 어떤 곳에서는 음식이 넘쳐나는데 왜 어떤 곳의 사람들은 굶어 죽어야 하는가?' 가 가장 큰 부조리로 느껴졌다. 사회과학을 전공해서 굶어 죽는 사람이 없는 사회를 만들고 싶었다.


오지여행가에서 국제NGO활동가로 변신한 한비야


책상에 "수단의 굶주린 소녀” 사진을 붙여 놓았다. 야간 자율학습 도중 공부하기 싫을 때마다 죽어가는 소녀의 사진을 보며 지금 열심히 공부해야 저런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힘을 가진 사람이 될 수 있다며 졸음을 쫓았다. 그것은 대학 잘 가서 잘 먹고 잘 살아야지, 보다는 훨씬 공부에 힘을 실어주는 명분이었다.


굶주림으로 쓰러진 소녀가 죽기를 기다리는 독수리의 모습. 이 사진을 찍은 작가는 소녀를 구하지 못했다는 비난을 받으며 끝내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 헬렌 니어링의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와 <조화로운 삶>을 읽었다. 산업주의 체제에 저항하며 버몬트 숲으로 들어가 자급자족하는 삶을 사는 부부의 모습을 보며 큰 영감을 받았다. 본질이 아닌 것은 다 버리고, 생각하는 바를 단호하게 실천할 수 있는 용기를 배웠다.


 스코트는 생활의 질을 높이기보다는 삶의 질을 높이고자 했다. 스코트는 이렇게 말했다.

 “삶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당신이 갖고 있는 소유물이 아니라 당신 자신이 누구인가 하는 것이다. 나는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 어떤 행위를 하느냐가 인생의 본질을 이루는 요소라고 생각한다. 단지 생활하고 소유하는 것은 장애물이 될 수도 있고 짐일 수도 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으로 우리가 어떤 일을 하느냐가 인생의 진정한 가치를 결정짓는 것이다.”

 -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 132p, 스코트 니어링


'땅에 뿌리박은 삶'을 살았던 스코트 니어링과 헬렌 니어링


니어링의 책에서 육식의 비윤리성에 대한 부분을 읽고 나서 <죽음의 밥상> 등의 책을 추가로 읽으며 채식을 결심했다. 공장식 사육의 잔인함과 사람이 먹을 곡물을 소와 돼지가 먹음으로써 생기는 문제점들을 알고 나니 고기를 먹을 수가 없었다. 완전히 비건(Vegan, 엄격한 채식주의자)으로 살진 못하더라도 적어도 소, 돼지, 닭고기는 먹지 말자고 결심했고 그 뒤부터 정말 불가피한 경우가 아니고는 고기를 먹지 않았다. 채식을 시작하며 환경문제에 관심이 생겨 대학 내 환경동아리에 들어갔다. 제3세계 어린이를 돕는 모금활동을 했고, 주말에는 공부방에서 장애아동들을 가르쳤다.


... 왜 나는 이런 나를 잊고 있었을까?



잃어버린 진정성을 찾아서


진정성을 ‘생각하는 대로 살기’로 정의한다면, 나는 진정성 있는 자세가 좀 답답하고, 진지하고, 재미없어 보였다. 한마디로, 촌스러웠다. 게다가 진정성을 갖는 것과 현실적인 성공은 별개의 문제였다. 자원활동을 하면서 접한 소규모 NGO들은 정말 좋은 비전을 갖고 있었지만 좁은 사무실을 여러 회사와 나누어 쓰고 있었고 활동가들은 매우 적은 월급을 받았다. 나는 돈을 많이 벌고 싶었다. 예쁜 옷을 많이 사고 싶었고 베란다 있는 집에서 살고 싶었다. 안정성과 소속감도 나에게 중요한 가치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취업준비 끝에 합격한 회사들 중 가장 돈을 많이 주는 회사를 선택했다.


나에게 무척 중요한 요소였지만 최근 몇 년간 나에게 결여되었던 것이 바로 이 ‘진정성’이었다. 생각하는 대로 살려고 애쓰는 것. 마음에서 우러난 일을 마음을 다해서 하는 것. 내가 하는 일이 세상에 보탬이 된다는 믿음. 내가 하는 일의 비전과 나의 비전이 일치한다는 생각. 직장인이 되고 나서 나는 점점 그 진정성을 잃어갔다. 매출과 손익에 대한 압박, 무의미한 야근, 열심히 하는 사람보다 말 많은 사람이 평가를 더 잘 받는 구조 속에서 나는 진정성을 포기했다. '진정성 있는 직장인'이라는 말은 마치 '파란 사과'만큼이나 비현실적으로 들렸다. 본연의 나와 회사에서의 나를 분리하려 애썼다. 

'그저 시키는 것을 원하는 대로 해 주고 가급적 일찍 집에 가자. 열심히 할 필요 없어. 열심히 하는 티만 내면 돼. 왜냐면 남들도 그러니까. 열심히 한다고 돈 더 주는 거 아니니까. '


나는 겉으론 점점 노련해졌지만 속으로는 하루하루 답답함이 쌓여갔다. 답답한 줄도 모르고 살다 그것이 못 견딜 무게가 되자 나는 휴직을 신청했다. 아마 불안해 죽을 것 같으면서도 기어이 휴직을 신청한 것은 그나마 남아 있던 나의 진정성 때문이었을 것이다.


휴직을 하고 나서 만난 회사 밖 사람들 중에는 자기 직업에 대해 소명의식을 가지고 진정성있게 사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들은 자기 직업을 사랑했고 깊이 몰두해 일했고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이 파는 물건과 서비스를 자신 있게 소개했다. 밤을 새워 일해도 두 눈이 반짝였다. 진정성을 가지고 살기 위해 반드시 은둔자나 사회활동가가 되어야 할 필요는 없었다.


어떻게 진정성 있게 살 것인가? 진정성 있는 회사원은 어떤 사람인가?

지원업무를 한다면 내가 지원하는 사람들이 행복해질 수 있도록 돕고 싶다. 상품 마케팅을 한다면 세상에 도움이 되는 상품을 팔고 싶다. 서비스를 기획한다면 내 가족에게도 기꺼이 권할만한 서비스를 만들고 싶다. 내게 주어진 상품과 서비스가 별로라면 그걸 세상에 도움이 되도록 바꾸고 싶다. 가급적 내가 파는 상품과 서비스가 많이 팔리면 팔릴수록 세상이 편리해지고 사람들이 행복해지면 좋겠다. 왜냐하면 나는 귀하고, 나의 시간은 귀하고, 나의 노동도 귀하기 때문이다.




나의 '진정성'을 추구하는 성향은 나의 비전과 일치하는 일을 하게 되었을 때 엄청난 시너지가 되어 돌아올 것이다. 내 일에 대한 확신만 있다면 강한 추진력을 얻는 타입이기 때문이다. 반면 상대적으로 '진정성없어 보이는' 사람들에 대해 반감을 가질 수도 있고, 나도 모르게 나만 옳다는 아집과 독선을 갖게 될 수도 있다. 또 지나치게 진지한 태도로 임하다유머를 잃 가능성도 있으니 늘 유연하고 열린 사고를 갖기 위해 노력해야겠다. 실제로 자신을 '원리주의자'로 여기며 평생 진정성 있게 살았던 스코트 니어링은 '재미'라는 말을 싫어하는 아주 진지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우리가 지나치게 진지하고, 지나치게 '고지식하다'는 지적들이 많았다. 스코트는 그냥 마시고 떠들 뿐인 '파티'에는 가려고 하지 않았다. 그 사람은 그런 것들을 낮게 보았으며, 거기서 누군가 도움을 필요로 하거나 할 일이 있어도 그 일을 하고서 곧 나왔다. "제가 쓸모가 있을 때만 가겠습니다"하는 것이 그런 초대에 보통 하는 응답이었다.

언젠가 내 책을 쓰는 일을 하면서 "다른 사람이 좋아하든 싫어하든 나는 이 일이 아주 재미있네요." 했더니 스코트는 부드러운 말투로 이렇게 말했다. "그 일을 재미삼아 한다니 찬성할 수 없구려. 인생을 재미로 사는 것은 아니잖소. 좀 더 진지하게 일을 했으면 하오."

그것은 도대체 진지함과는 무관한 단순한 요리책이었다.

-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 205p 중에서


나는 진정성과 유머를 둘 다 가진 람이 되고 싶다.




스코트 니어링과 헬렌 니어링의 삶에 대한 기사:

http://weekly.chosun.com/client/news/viw.asp?nNewsNumb=002254100020&ctcd=C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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