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몽돌 Oct 09. 2017

아무것도 안 할 용기

당신에게 시간을 허락하세요

이제 휴직을 하고 반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별다른 굴곡도 일탈도 없이, 늘 제도권 안에 머무르며 살아온 저에게는 엄청난 모험과 같았던 시간입니다.


직장에 휴직계를 냈을 때, 사람들은 제게 휴직을 하고 무엇을 할 것인지, 또는 무엇을 하려고 휴직을 하는지를 물었습니다. ‘왜’ 휴직을 하는지 묻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저는 무엇 무엇을 하려고 휴직하게 되었다는 근사한 핑계를 대었고 그 대답을 되풀이한 끝에 나조차도 그 핑계를 믿게 되어 버렸습니다.


아무도 ‘왜’에 대해 묻지 않았기에 스스로에게 물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나는 왜 휴직을 하게 되었을까?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아무도 없는 드넓고 푸른 보리밭을 걸으며 계속 생각했습니다. 멀쩡하게 직장 잘 다니던 내가 여기까지 오게 되었을까?


나 자신과 끊임없이 대화할 수 있었던 순례길


아마 가장 간명한 대답은 ‘지금 쉬지 않으면 계속 이렇게 살 것 같아서’ 일 것 같습니다. 지금 멈추는 시간을 갖지 않으면 늘 살던 대로 살 것 같았습니다. 조급하게, 각박하게, 늘 남의 인정을 갈구하면서, 남들이 내게 바라는 것을 하면서. 용문사 템플스테이에서 만난 스님은 저에게 그렇게 살아서 얼마나 잘 살았느냐고 물었습니다.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인생인데 남의 시선 따라 사는 게 아깝지 않냐고 물었습니다.


사는 방식을 바꿔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기 위해 환경의 변화가 필요했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환경을 바꿀 수 있는 가장 급진적인 방법은 근본적 안식기를 갖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항상 뭔가를 더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던 사람입니다. 더 잘, 더 열심히, 더 많이…… 저는 이번에는 한번 덜어내어(-) 보기로 했습니다. 맘껏 게을러져 보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1년의 연봉을 내어놓고 나 자신에게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1년의 시간을 샀습니다.


https://brunch.co.kr/@freesong/13


돌아갈 곳을 둔 마당에 한번 제대로 놀아보자. 생계를 위한 일이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일로 하루하루를 채워보자, 는 저의 다짐은 매일의 일상 앞에 빛을 잃곤 했습니다. 휴직은 요술방망이가 아니었습니다. 회사를 쉰다고 바로 요새 핫한 용어인 ‘자존감’이 급상승한다거나 평생 하고 싶은 천직을 찾는다거나 하지는 않았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그동안 벌지 못할 돈의 액수가 볼드체로 눈앞에 선명하게 떠올랐습니다. 내 안의 비판자는 젊은 애가 벌건 대낮에 일도 안 하고 놀고 있다고 비아냥거렸습니다. 내가 쉬는 동안 회사 동기들은 능력을 인정받아 승진을 하고 해외파견을 가는 것을 SNS로 접할 때는 나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불안이 찾아올 때면 요가를 했습니다. 요가 선생님은 절대로 애써서 동작을 만들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저 한 동작에 오래 머무르며 천천히 숨을 쉬라고 했습니다. 매일 수련하면서 앞으로 숙이는 전굴 자세를 통해 늘 굳어있던 하체 고관절을 부드럽게 풀어주었습니다. 뒤로 젖히는 후굴 자세를 통해 늘 웅크리고 다녔던 어깨와 가슴을 열었습니다. 요가를 몇 달 다닌 어느 날 굳었던 몸이 간질간질해지면서 몸에 피가 도는 것을 느꼈습니다. 코어에 힘이 들어가면서 의욕과 에너지가 살아나는 것을 느꼈습니다. 억지로 잘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그저 충분한 시간을 갖고 호흡을 하는 것만으로도 사람은 유연해지고 힘이 생긴다는 것을 요가를 통해 배웠습니다.


뭉쳤던 마음까지 풀어주는 후굴 자세


저는 항상 좋은 아웃풋을 내라고 저를 다그치며 살아왔습니다. 마치 알을 낳는 닭을 대하듯이 저 자신을 대해 왔습니다. 휴직을 하면서 처음으로 그 닭에게 알을 낳지 않아도 너는 그 자체로 가치있다고 말해 주었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아, 돈을 벌지 않아도, 남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지 않아도 괜찮아,라고 저를 도닥이며 반년을 보내고 나니 놀랍게도 힘이 생겼습니다. 나는 어떤 사람인지, 어떻게 살고 싶은지, 어떤 일들을 벌여 보고 싶은지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설령 아무 변화도 없이 다시 복직하여 같은 자리로 돌아가더라도, 전과 다르게 살 수 있겠다는 희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관성에서 벗어나 안 해본 일을 하는 것은 항상 어렵습니다. 열심히 달려온 사람일수록 잠시 쉬고 싶어요,라고 말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그 어렵게 뗀 말 한 마디에 득달같이 그래서 뭐 할 건데? 라고 캐묻는 사람들 앞에서 작아지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길을 찾는 우리에겐 시간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이미 답을 알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다만 잠시 멈춰 우리 몸과 마음에 귀기울일 시간이 필요한 것 뿐입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 어떤 유용한 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 그저 숨만 쉬면서 보내도 되는 시간. 그런 여백의 시간을 우리 자신에게 허락했으면 좋겠습니다.






제책임: 빵집을 차리려고 직장을 그만두신 건 아니라는 부분이 저는 개인적으로 공감이 많이 가요. 저도 직장을 그만둘 때를 떠올려 보면, 사람들이 다 물어보잖아요. 뭘 하려고 그만두느냐고. 그러면 일단 뭘 안 하려고 그만두는 거라고 말했거든요. 그 지점부터 뭔가 아이디어가 떠오르기도 하고, 뭘 해봐야겠다는 욕구가 생기기도 하고.

직장생활이 일상의 거의 대부분을 차지할 때는 그 안에서 다른 것을 해보려는 에너지나 욕구가 잘 생기지 않아요. 뭐가 하기 싫다는 마음은 있어도, 하고 싶은 것이 떠오르진 않죠. 물론 현실적인 고려, 특히 경제적인 고려를 안 할 순 없지만, 일단 방향을 전환하려면 좀 여백의 시간이 필요하지 않나 하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   <일상기술연구소>(제현주/금정연 저) 8장 나만의 가게 꾸리기 중에서



그래서 휴직하고 뭐하니- 요가를 합니다 편이 다음 웹페이지 메인에 올랐습니다. 태어나서 제가 무엇을 하고 어떤 생각을 하고 살고 있는지를 만 명이 봐주었던 적은 처음인 것 같아요.


https://brunch.co.kr/@freesong/21


처음 회사를 쉬게 되었을 때 많이 불안했습니다. 저처럼 휴직, 퇴직, 갭이어, 안식기를 감행하며 불안해하고 있을 누군가에게 제 이야기를 나누어 주고 싶은 마음에 브런치를 시작했습니다. 부족한 글을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번 글은 경어체로 썼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그래서 휴직하고 뭐하니 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