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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돌 Sep 21. 2017

그래서 휴직하고 뭐하니 1

요가를 합니다

그래서 휴직하고 뭐하니.

사람들이 나에게 끊임없이 묻는 질문이다. 나도 누군가가 휴직한다면 부담없이 물어볼 질문인데 막상 이 질문을 받으면 순간적으로 작아지는 느낌이다. 회사 다니면서는 절대 못하는 특별하고 신나는 일을 매일 하고 있다고 말해야 할 것 같아서다. 근데 그러지 못한 것 같아 이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난 뭘 하고 살고 있는지를 되돌아보게 된다.

사실 남들은 사실 나에게 별 관심이 없다. 이 의례적인 질문을 의식하는 것 역시 남에게 멋있게 보이고 싶다는 내 욕심 탓이다. 그 욕심을 살짝 내려놓고, 앞으론 '그래서 뭘 하고 살고 있는지'에 대해 얘기해 보려 한다.


휴직하고 가장 꾸준히 한 것이 있다면 요가다. 가까운 요가원에 무려 주 5일을 등록해서 매일 오전에 요가를 하며 매트 위에서 땀을 흘렸다. 회사를 다니면서 가장 부러워했던, 평일 오전에 요가원 다니는 여자가 되었다.


그간 나의 운동 역사는 주로 이런 식이었다. 힘이 없고 살이 찐다. 운동을 해야겠다고 생각한다. 3개월에 몇 프로 할인, 이라는 헬스장 광고를 본다. 헬스장을 등록한다. 인바디를 해 보니 근육은 없고(근육이 신생아 수준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도 있다) 지방만 많단다. 일단 지방부터 태우자며 러닝머신을 몇 번 뛴다. 고통스럽다. 그러고 헬스장을 다시 찾는 건 3개월 후, 락커에 넣어둔 샴푸를 찾기 위해서다.


그렇게 몇 번을 반복하며 헬스장 발전에 고스란히 기부하고 나자 돈이 많이 들더라도 무조건 정해진 프로그램이 있는 필라테스 같은 걸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불규칙한 퇴근 시간 탓에 정해진 시간대에 수업을 듣기가 쉽지 않았다. 9시 반 수업도 가기 어려운 날이 부지기수였고 스트레스로 녹초가 된 날 필라테스를 하며 지옥의 복근 운동을 하다 보면 그냥 굶고 말지 왜 이 돈 주고 고생을 하고 있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결국 필라테스는 친구에게 양도하고 말았다. 운동보다 잠이 절실히 필요한 시기였다.

 

휴직을 하고 처음에는 내게 잘 맞는 운동을 찾기 위해 마일로나 구아바 패스 같은, 여러 운동을 탐색해 볼 수 있는 프로그램을 이용했다. 월 X회 얼마, 가맹점 어디든지 원하는 시간을 예약해서 갈 수 있는 프로그램이었다. 자유롭게 시간을 운용할 수 있고 다양한 분야의 운동을 경험하고 싶은 사람에게 추천한다. 나의 경우 필라테스, 발레, 1:1 척추교정, 요가, 클라이밍 등을 경험해보고 나니 가장 맘 편하게 오랜 시간 할 수 있는 것이 요가였다.


요가는 연습한다고 하지 않고 ‘수련한다’고 하는 게 마음에 들었다. 그 수련에는 몸뿐만 아니라 마음도 포함되어 있는 것 같았다. 요가하는 사람들은 대개 유하면서도 강해 보였고, 편안하면서도 힘이 있어 보였다. 실제로 주변에서 퇴사를 하거나 인생의 전환점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요가를 통해 심신의 안정을 찾는 걸 보았다. 굳이 셀렙인 이효리 같은 경우를 들지 않더라도, 휴직 중 만난 많은 퇴사 선배들은 요가를 인생 운동으로 꼽았다. 요가를 통해 인생이 얼마나 달라졌는지 말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확실히 전보다 더 편안하고 밝아 보였다.


 

<효리네 민박>의 이효리 덕분에 요가원을 찾는 사람이 많아졌다고 한다


아직 수련 기간이 길지 않아 대단한 심신의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다. 여전히 나는 동작을 헤매고 중심을 못 잡아 우왕좌왕하며 호흡을 헐떡거린다. 하지만 요가를 하기 전보단 등이 많이 펴졌고 어깨 통증이 줄어들었다. 아예 불가능하던 자세가 조금씩 되는 것에 희열을 느끼며, 무엇보다 매트 위에 서는 시간을 즐기게 되었다. 수업시간보다 조금 일찍 가서 자세를 잡고 호흡을 고르는 시간이 하루 중 가장 행복하다.


신기한 것은 한 시간 매트 위에 선 내 모습에서 내가 기존에 살던 방식이 보인다는 것이다. 몸은 아직 따라주지 않는데 마음은 항상 앞서간다. 옆에 앉은 사람은 저만큼 되는데 왜 나는 안되지? 잘하고 싶은 마음에 팔을 조금 더 뻗고 다리를 조금 더 늘이다 호흡을 놓치고 만다. 숨을 쉬지 않고 참으니 몸은 더 뻣뻣해지고 동작은 더 어색해진다. 요가 초보자인 내 모습과 사회생활 초보자였던 내 모습은 닮아 있다. 회사를 다닐 때도 의욕은 앞서가는데 역량은 그에 따라오지 못했다. 초보자니까 그게 당연한 것이었는데 나는 그걸 받아들이지 못하고 욕심을 부렸다. 아직 사원인데 과장님만큼 잘 하고 싶어 했다. 그 엇박자 속에서 종종 호흡을 놓쳤고 나를 잃었다.


남들과 비교하기 시작하면 자기 자신에게 집중할 수 없다


아쉬탕가 요가 선생님은 항상 두 가지를 강조한다.

첫째, 아사나(동작)를 잘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호흡을 잘 하는 것이 중요하다. 사람이 어려운 일을 맞닥뜨렸을 때 가장 먼저 하게 되는 일이 숨을 참는 것이라고 한다. 호흡을 잃으면 마음의 평정을 잃고 몸까지 경직되어 힘든 일을 이겨낼 수 없다. 요가를 통해 어려운 동작 속에서도 호흡을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기면 생활 속에서 힘든 순간이 생길 때도 호흡을 유지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아쉬탕가 요가 수련은 호흡 연습이다. 나머지는 그저 구부리는 것이다”(Ashtanga yoga practice is a breathing practice. The rest is just bending.”)라는 말이 있는 것이라고.


둘째, 아쉬탕가 요가는 각 동작별로 정해진 시선점이 있다. 숙련자는 고요하게 시선점을 응시하며 호흡을 통해 자기 내면으로 들어간다. 초보자는 시선점을 놓치고 눈빛이 흔들린다. 이 사람 저 사람을 보고 남과 자신을 비교한다. 남을 쳐다보지 말고 자기 자신에게 집중하라. 숙련자는 동작을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매트 위에서 자기 자신만 볼 수 있는 사람이다.


당신이 제대로 호흡을 하는 순간에는 그 누구도 당신의 평화를 앗아갈  수 없다.


나는 오늘도 매트 위에 선다. 매트 위의 나에게 집중한다. 누구와도 경쟁하지 않는다. 어제보다 조금 더 호흡에 집중한 것, 힘든 순간에 반 뼘 더 뻗어보았다는 것에 기쁨을 느낀다. 매일의‘수련’을 통해 나는 힘든 순간에도 편안히 숨 쉴 수 있는 사람, 남의 성취에 연연하지 않고 내 길을 가는 사람에 조금씩, 아주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다.






"아쉬탕가 요가 수련은 호흡 연습이다" 출처

http://www.yogachikitsa.net/2013/03/02/ashtanga-yoga-is-a-breath-practice-seriously-it-really-is/


잘된 한국어 번역이 있어 함께 소개한다.

"우리가 힘들게 아쉬탕가 수련을 하는 이유"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fermata2008&logNo=220503322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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