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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돌 Apr 05. 2017

출근하지 않는 삶

휴직 9일차


 예전에 세미나에서 만난, 까마득한 선배 한 분은 직장을 구할 때 '워킹데이 10일 휴가를 내고 2주간 쉴 수 있느냐'가 가장 큰 고려 조건이라고 했다. 그분 말에 따르면 사람이 1주일을 쉬면 항상 ‘다음 주엔 직장에 가야 한다’는 사실에 대해서 생각하기 때문에 ‘일하는 자아’를 내려놓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적어도 2주는 쉬어야 제대로 긴장을 풀고 재충전할 수 있다고. 그때는 크게 와 닿지 않던 선배의 말이 (“아니 대한민국에서 2주 쉬면 자리 빼겠다는 뜻 아닌가요?”) 이젠 이해가 가기 시작한다. 휴직 첫 주에는 출근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어색하고 불안했다. '일하는 자아'를 내려놓을 수 없었다. 실제로 출근하는 꿈을 꾸기도 했다. 2주차에 들어서면서 조금 안정감을 찾았고 이 생활이 재미있어지고 있다. 이제야 좀 쉬는 것 같다.


 생각보다 시간이 잘 간다. 해야 할 일, 하고 싶은 것이 많아서 하루가 꽉 찬다. 다른 사람의 오더에 의해서가 아니라 내가 스스로 하루의 일과를 정하다보니 시간을 훨씬 더 책임감 있게 쓰게 되었다. 무엇을 하더라도 회사 다닐 때보다 훨씬 몰입하고 집중해 있다.

 휴직 전에는 24시간이 통째로 내게 주어진다면 리스트에 올려놨던 일들을 다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1번부터 100번까지, 공책 몇 페이지를 빼곡히 채웠던 것들을 전부 다 할 수 있을 거라고. 그런데 휴직 첫 주에 시간을 어떻게 썼는지 되돌아보니, 아예 새로운 일을 하기보다는 예전에도 해 왔던 일들을 더 집중해서 하고 있었다. 예를 들어 지금 열심히 하고 있는 외국어 공부, 책 읽기, 강연 찾아 듣기 등은 다 회사 다니면서도 어느 정도는 해 왔던 것들이다. 관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반면 ‘시간이 정말 많으면 00 할텐데’ ‘휴직하면 00 해야지’ 하는 것들은 여전히 우선순위가 저 아래에 있다. 예를 들면 방 청소 같은 것들이다. 휴직하면 정말 집안이 먼지 하나 없이 반들거리고 광채가 날 줄 알았다. 거기에 더해 깔끔한 북유럽풍 인테리어라던가 직접 새벽시장에서 꽃을 사와서 예쁘게 장식한다던가를 할 수 있을 줄 알았지. 하지만 회사 다닐 때 하지 않았던 것은 휴직하고서도 하지 않는다. 이제 알겠다. ‘수능 보고 나면 치울게요’, ‘취업하면 치울게요’, ‘휴직하면 깨끗하게 하고 살게요’ 이 말은 계속 지금처럼 더럽게 하고 살겠단 말이다.

 시간의 유무에 상관없이 내 안의 우선순위는 하지 않는다. 바쁘다는 이유로 지금 하지 않는 것은 시간이 많더라도 아마 하지 않을 확률이 높다. 뭔가를 정말 하고 싶은데 그걸 지금 하고 있지 않다면, 정말 그걸 하고 싶은게 맞는지 스스로에게 질문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진짜 내 욕망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면 리스트에서 맘 편히 지워버려야 한다.

 모든 것을 다 잘하기보단 진짜 하고 싶은 것에 집중하며 시간을 보내고 싶다.




배경 그림: 데이비드 호크니, 'A bigger Splash'(19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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