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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돌 Mar 31. 2017

잘 선택했어, 네가 옳아

가장 듣고 싶었던 말

<최인아책방>에서 정신과 의사 정혜신과 심리기획자 이명수가 북토크를 한다기에 들으러 갔다. 무려 책 제목이 <봄은 왔는데 내 마음은 지옥>이었다. <미움받을 용기> 만큼이나 hooking한 제목이다. 지금 내 마음은 지옥보다는 천국에 가깝다. 하지만 마음 하나 먹기에 따라 천국이 금새 지옥이 되기도 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마음이 지옥일 때는 어떻게 하면 되는지 알고 싶었다.


 강연에서 가장 마음에 와 닿았던 것은 정혜신 박사의 '당신은 늘 옳다'는 말이었다. 사람의 행동은 틀릴 수 있다. 하지만 그 행동을 추구하는 사람의 마음과 감정은 항상 옳다. 왜냐면 사람은 결국 자신에게 가장 필요한 것, 자신에게 가장 도움이 되는 것을 본능적으로 찾게 되고 그 방향으로 결정을 내리기 때문이다. 정혜신 박사는 이것을 사람의 무의식이 갖는 근원적, 본능적 건강성 때문이라 설명한다. 사람은 본질적으로 자기가 살길 쪽으로 끌리게 되어 있다. 옆에서 보기에는 그 사람이 잘못된 길로 가는 것 같아도, 그 사람에게는 그것이 옳은 방향이라는 것이다.


 정신과 생활을 한 지 25년이다. 그간 만나 일대일로 상담한 사람이 1만3000명은 되는 것 같다. 수많은 사람의 속마음을 들여다보면서 임상적으로 100% 확신하는 명제가 있다. 모든 인간은 본능적으로 자기가 살길을 찾아 떠나게 돼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무의식이 갖고 있는 근원적 건강성 내지 균형성이다. 대기업 CEO들을 상담하다 보면 어느 날 사무실에서 직원들과 커피를 마시며 깔깔대다 말고 ‘이게 다가 아닌데’ ‘내가 이렇게 살려고 했던 게 아닌데’라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는 얘기가 반복적으로 나온다. 이게 바로 무의식적 건강성이다. 이 사람 내부에서 ‘네가 살길이 그 길이 아니다’라는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왜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드는 건지 설명할 길이 없기에 자신도 당황스럽다. 지금 하는 일을 때려치우고 다른 일을 한다는 건 상상하기도 어렵다. 이렇게 휘청할 때 ‘이러면 안 되지’ 하면서 떠오른 생각을 떨쳐버리고 하던 일에 매진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하던 일을 멈추고 자신의 내면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도 있다. 결국엔 후자가 자기 살길을 찾아간다. (정혜신, "아이들은 이미 다 알고 있다" – 시사IN)


 그 이야기를 듣고 두 장면이 떠올랐다.


 하나. 휴직을 하겠다고 부모님께 통보하며 미안하다고 했던 나다. 회사와 모든 절차를 끝내고 부모님께 전화를 걸어 이런이런 이유로 휴직을 하게 되었다고 말씀드렸다. 엄마는 왜 쉬려고 하는지,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물어보시고는 우물쭈물하는 나의 답변을 듣고 바로,  네가 그냥 좀 쉬고 싶은가 보구나 하고 간파했다. 문제는 그 이야기를 들은 내가 눈물이 쏟아졌다는 것이다. 수화기를 붙들고 계속 엄마, 미안해. 남들 다 열심히 사는데, 엄마도 아직 돈 버는데, 나만 쉬어서 미안해. 했다. 이미 정신적으로, 경제적으로 독립한 다 큰 처자가 본인의 결정에 따라 휴직을 하는데 (그것도 허락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통보를 하는 상황에서) 나는 왜 부모님께 미안했던 걸까?

 

 둘, 휴직을 하고 평일 오후에 혼자 집에 있으면서 혹시 옆집에 내 소리가 들릴까봐 순간 조심했던 나다. 평일 오후에 집에 있어보니 새삼스럽지만 평일에 회사를 나가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옆집 아주머니, 아기들, 할머니의 대화 소리, 택배 기사님 소리가 우렁우렁 현관에서, 복도에서 울려 펴졌다. 때론 화장실 물 내리는 소리, 세탁기 돌리는 소리가 벽을 타고 전해지기도 했다. 나는 순간이었지만 내 소리도 옆집에 들리면 어떡하지, 하고 생각했다. 왜일까? 일 그만두고 집에서 '노는' 사람으로 보이고 싶지 않았던 걸까?

 

 ......어째서 나는 '내 살길을 찾아간' 나에게 그토록 엄한 잣대를 들이대었는지.


 나는 나만의 이유가 있어 휴직을 택했다. 이렇게 하는 것이 더 좋을 것이라는 직관과 충동. 누구도 그것에 대해 해명을 요구할 수 없고 나는 그것을 일일히 설명할 의무가 없었다. 그런데 왜 나는 정말 이게 맞아? 제대로 선택한 게 맞아? 라며 몇번이고 스스로를 재판대에 세웠을까? 왜 나는 건장한 청장년층은 마땅히 (회사에 나가) 노동을 해야 하고 (안정적인) 소득을 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갖고 나의 선택을 스스로 인정해 주지 못했을까? 정혜신 박사의 말처럼, "~ 해야 한다"는 명제들, Should be 콤플렉스야말로 사람이 자기 자신으로 사는 것을 가로막는 몹쓸 것들인데 말이다.


 지금 내려놓을 수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마른 명태처럼 꼿꼿해져 작은 충격에도 쉽게 부스러지는 중년이 아니라 아직 덜 건조된 말랑말랑한 나이에 이런 시간을 가질 수 있어 다행이다. 감사한 일이다.


 누구에게나 타인에게 쉽게 드러 수 없는 어둡고 습한 구석, 어딘가 꼬인 마음이 있다.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는 고정관념과 Should be들로 축축해진 마음. 회사에서 프로페셔널한 일꾼으로 일하면서는 정장 아래 감출 수 밖에 없었던 마음들이다. 그 마음을 휴직 기간 동안 환한 볕에 활짝 널어 말리고 싶다.



했다.

선택했다.

네가 옳다.

네가 항상 옳다.

가장 듣고 싶었던 이 말을 나 자신에게 몇 번이고 해 주고 싶은 날이다.






                                                                       


기사 출처:

http://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24355


배경 그림: 카네이션, 나리, 나리, 장미 Carnation, Lily, Lily, Rose (1885-86)

존 싱어 사전트 John Singer Sargent (1856-1925)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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