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장님, 면담 요청드립니다

첫번째 휴직 시도

by 몽돌


-장님, 면담 요청드립니다.


눈을 질끈 감고 사내 메신저창에 썼다. 심장이 뛰었다. 동상에 걸린 것처럼 피부가 따끔따끔했다. 엔터를 누르기까지 많은 시간과 용기가 필요했다.


이 메시지를 읽었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 그래, 지금 가지.

장의 칼답에 나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세계로 다이빙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내가 속한 xx층의 회의실은 월말 매출을 챙기는 건실한 일꾼들로 가득 차 있었기에, 1층에 있는 휴게실에서 면담을 하기로 했다. 부장과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는 길, 엘리베이터가 한 층, 한 층, 내려갈 때마다 나를 둘러싼 견고하고 안정된 건물이 쿵,쾅,쿵,쾅 무너져 내리는 기분이었다. 내가 이 말을 하면 이제 이 건물에 가득한 몇천명의 사람들은 나와 아무 관련이 없게 된다. 덜컥 겁이 났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여길 떠날 마음이 섰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5층, 4층, 3층을 모두 눌러서 엘리베이터가 내려가는 것을 막고 싶은 마음마저 들었다.


회사를 왜 다니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xx층에서 1층으로 내려가는 짧은 시간 동안, 나는 사람들이 회사를 왜 다니는지 알 것 같았다. 내가 그토록 싫어한 권태는 곧 달콤한 안정감이었다. 따박따박 들어오는 월급은 내가 돈에 구애받지 않고 입고 먹고 여행다닐 수 있게 해 주었다. 매일 부딪히는 그 많은 미운 사람들마저 사실 나를 더 추운 세계로부터 보호해주고 있었는지 모른다.


1층에 도착하여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로비의 큰 유리창을 통해 오후의 햇살이 따갑게 쏟아지고 있었다. 이때까지 사무실에 갇혀 일만 하느라 제대로 햇살을 쐰 적이 없었다. 휴직을 하면 매일매일 이 햇살과 마주하게 될 것이다. 좋을 줄 알았는데, 이상하게도 나에게 쏟아질 엄청난 시간이 왈칵 두려워졌다.


과 둘이서 회의실에 들어가 앉았다. 쓸데없이 정직한 나는 또 이미 던진 주사위를 능청스럽게 주워담지는 못했다. 원래 계획대로장에게 휴직을 하고 싶다고 말씀드렸고, 그는 다음주까지 좀 더 생각해 보라고 했다.


그날 밤 혼자서 휴직의 대차대조표를 몇 번이고 그려보았다. 휴직을 한 내 모습, 휴직을 하지 않은 내 모습을 몇번이고 시뮬레이션했다. 휴직 후 할 수 있는 많은 즐거운 것들을 리스트업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선명한 것은 엘리베이터를 내려가며 느낀 불안감과 오후의 햇살이 안겨주는 두려움이었다.


그 다음 날, 나는님께 휴직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나는 모험을 동경했을 뿐, 사실 안정이 더 소중했던 것이다.

집에 돌아와 어린아이처럼 펑펑 울었다. 주말 내내 신경성 위염과 근육통을 동반한 감기몸살을 앓았다. 하루 연차까지 쓰고 나서야 몸을 겨우 추스릴 수 있었다.


첫 번째 소심한 휴직 시도는 이렇게 실패로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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