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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돌 Feb 17. 2019

복직 일주년

물구나무서기는 못하게 되었지만

복직 일 년 만에 몸이 아프기 시작했다

올해의 목표는 브런치에 매주 1개의 글을 쓰는 것이었다. 별 것 아닌 소소한 글이라도 자주 쓰고 공유하는 것.

그런데 막상 새해가 시작되자 조직 이동 후 새 부서 일에 적응하느라 계속 바쁘고 정신이 없었다. 새로운 업무에 적응하느라 늘 어깨를 뾰족하게 세운 채로 주중의 일과를 보냈다. 싫은 일을 잔뜩 했으니 그만큼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한다며, 주말마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운동을 하고 강연을 듣고 사람들을 만났다. 다시 주중이 되면 피곤한 몸과 마음 위에 남이 주는 스트레스를 넙죽넙죽 받았다. 빡빡하게 긴장된 몸과 마음에, 글쓰기가 들어갈 틈 따위 없었다.


그렇게 무리를 하다 마침내 병이 났다. 병원을 순례하며 주말의 1/4를 보냈다. 3층 내과를 들려 위염 약을 받고, 같은 건물의 4층 안과를 들려 결막염 약을 받고, 역시 같은 건물의 7층 치과를 들려 잇몸 통증 진료를 받았다. 달랑달랑 처방전 3장을 들고 내려가 1층 약국에서 약을 받으면서 '다음 생에는 이 건물 건물주로 태어나고 싶다'라고 생각했다. 약국 정수기 앞에 서서 식전에 먹어야 하는 위염약을 삼키면서, 바로 뒤에 오신 어르신이 내가 처방받은 것과 똑같은 약을 받아가는 것을 보았다. 저분이 내 나이의 3배, 아니 2.5배는 되는 것 같은데... 나는 건강관리를 소홀히 한 젊은이로서 부끄러움을 느꼈다.


처방전에 찍한 날짜를 보면서 생각했다.

휴직하고 요가하고 명상하고 수영하면서 만든 몸과 마음이, 복직 1년 만에 다시 원상 복귀했구나.

아아, 항상성을 유지하려는 인체의 신비여.


물구나무서기는 못하게 되었지만

오랜만에 간 요가 수업에서 물구나무서기를 시도하다 실패했다. 선생님이 잡아주었는데도 목과 어깨 근육의 힘이 부족해서인지 휘청대며 중심을 잡지 못했다. 선생님은 "한동안 안 오시더니 감을 잃었네요."라고 했다. 나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더 슬펐다. 아, 예전엔 이것보다 잘했는데. 일 년 전보다 군살이 붙어 전굴 자세도 잘 안 되고, 기지개만 켜도 우두둑 소리가 나고, 다리 뒷근육도 짧아져서 다운독 자세를 할 때마다 불편하다. 그러다 보니 몸이 유독 무거운 날은 수업에 가기 싫기도 하다. 전보다 못 하는 나를 보기가 싫은 것이다. 그날도 그런 나를 잘 달래어 수업까지 갔는데, 막상 그런 말을 듣고 나니 괜히 속상했다.

조금 쳐진 마음으로 요가원을 나오면서 겨울밤의 공기를 맡았다. 입춘이 지나자 신기하게도 낮의 햇살은 더 따뜻해지고 밤의 공기는 부드러워졌다. 이젠 겨울보다 봄에 더 가까워지고 있다.


나는 딱 작년 이맘때 반백수의 생활을 접고 다시 회사로 돌아왔다. 일단 한번 돌아가서, 일 년을 지내보자고 생각했다. 스스로 약속한 일 년이 지나고, 다시 새해가 왔다.


휴직 일 년은 직장 생활을 하면서 잊어버렸던 꿈과 이상들을 다시 생각해보는 과정이었다면, 복직 후의 일 년은 현실 속의 나를 인정해 가는 과정이었던 것 같다. 조직에 속해 일을 하게 된다면 어쩔 수 없이 감수해야 하는 것들이 있다는 것을 비로소 받아들이게 되었다. 나의 많은 욕구들을 하나의 직장, 하나의 일이라는 그릇 안에 다 담을 수 없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회사 안에서는 해결할 수 없는 마음들을 풀기 위해 글도 쓰고, 독립출판도 해 보고, 새로운 사람들도 많이 만났다. 내 인생이라는 카트에 어쩔 수 없이 싫어하는 것들을 담아야 할 때도 있지만, 늘 우선순위는 내가 하고 싶은 것, 좋아하는 것들에 두자고 다짐했다.


나는 나와 타인 사이의 경계, 나와 내 일 사이의 경계가 없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남들의 기대와 평가를 여과 없이 그대로 받아들여 스스로를 힘들게 했다. 내가 하는 일이 곧 나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성과를 내지 않으면 나라는 존재가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나와 나 아닌 것 사이의 경계를 세워 가는 감각을 조금씩 익혀 가고 있다. 남의 기대는 남의 기대일 뿐 내가 반드시 충족시켜줘야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매일 마음에 새긴다. 우리는 모두 완벽하게 다른 존재이니까, 저 사람이 나를 반드시 이해해 줄 필요도 없고 나도 누군가가 이해가 안 간다고 길길이 날뛸 필요가 없다.


내가 하는 일이 곧 나는 아니라는 것, 나는 내가 하는 일보다 더 크고 다채로운 존재라는 것은 작년의 가장 큰 발견이었다. 늘 유용한 인간이 되기 위해 애써왔지만, 내가 가장 편안하고 행복했던 순간은 내가 최고로 유용하게 쓰이는 순간들이 아니었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좋은 사람들과의 대화하고 멋진 음악을 듣고 추우면 추운 대로 비 오면 비 오는 대로 날씨와 계절을 느끼는, '쓸모없는' 시간들이 가장 즐거웠다. 이제는 그런 흩어져 사라져 버릴 무용한 순간들을 누리기 위해 돈을 벌고, 딱 그만큼만 유용해지면 된다고 생각한다. 나의 유용함을 증명하려 애쓰기보다는 무용한 것들을 마음껏 즐길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다시 일을 하는 일 년 동안 물구나무서기는 못하는 몸이 되었지만 그만큼 새로 알게 된 것들이 있다. 그러니 마냥 아쉬워하지만은 말아야겠다.

이제는 주 40시간 이상 노동을 하는데, 매일 밥 먹고 운동만 하던 때와 몸 상태가 같을 수는 없겠지.

수많은 사람들과 부대끼면서 하루를 보내는데, 혼자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던 날들과 마음 상태가 같을 수는 없을 것이다.

항상 건강하고, 항상 컨디션이 좋고, 항상 마음이 편안하기는 불가능하다.

중요한 것은 매 순간 다른 내 몸 상태, 마음 상태를 내가 주깊게 살펴봐 주는 것이다.


휴직하고 했던 것들을 기억하며

이제는 퇴근 시간이 들쑥날쑥해서 예전만큼 자주 요가를 가진 못한다. 가끔 가서 내 몸 상태를 확인한다. (아이쿠, 그새 몸이 또 굳었네. 오늘은 어깨가 특히 아프구나! ) 동작을 멋지게 해 내는 것도 좋지만 호흡에 집중하면서 움츠러든 몸을 쭉쭉 펴주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전처럼 시간을 내어 명상을 하지는 않지만, 내가 숨을 꽉 참고 있다고 생각되는 순간 -상사의 피드백을 듣는 순간이라던가, 긴장되는 발표를 앞둔 순간에 의식적으로 숨을 쉬려고 노력한다. 결론모를 회의가 끝도 없이 이어지는 날에는 혼자서 조용히 '숨쉬기 운동'으로 딴짓을 한다.


전만큼 긴 글을 쓰지는 못하지만, 하루를 마치기 전 짧은 일기를 남긴다. 많은 사람들이 내게 휴직기간은 다시 오지 않을 소중한 시간이라며, 하루하루 소중히 즐겁게 보내라고 말해주었다. 하지만 사실 회사를 다니는 날들 역시 똑같이 다시 오지 않을 소중한 기간이다. 지나가면 다시 오지 않을 오늘을 기록하고 기억하려 마음을 쓴다.


여전히 책을 읽는다. 우연히 고른 책에서 내가 꼭 듣고 싶었던 말들을 만난다. 모서리를 접고 밑줄을 치면서 그 말들의 손을 꼭 붙잡고 하루를 산다.


"무엇을 하고 싶은지 할 수 있는지, 자신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꿈에서 그치지 않고 현실에서 이루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런 것들을 매번 생각하고 실천하는 과정이 삶을 결정짓는 중요한 부분 아닐까요."

- 이사 토모미, <여자, 귀촌을 했습니다> '농사짓지 않고 시골에서 사는 법' 중에서


"인생은 즐기기 위해 있는 것이고, 상대가 남자든 여자든 보고 싶을 때 봐야 하고, 그때가 아니면 갈 수 없는 장소, 그때가 아니면 볼 수 없는 것, 마실 수 없는 술, 일어나지 않는 일이라는 게 있다. "

- 에쿠니 가오리, <맨드라미의 빨강 버드나무의 초록> 중에서


도서관에서 빌린 책들과, 크레마 사운드에 저장된 책들, 그리고 좋아하는 몇 편의 넷플릭스 드라마, 좋아하는 노래들, 좋아하는 사람들과 예정된 약속들을 생각하면 살 만한 것 같다. 삶의 모든 부분이 만족스러운 것은 아니지만, 좋아하는 것들에 좀 더 마음과 시간을 쓰고 싫어하는 것들엔 매정하게 마음을 주지 않으려고 한다.


푹 쉬면서 몸을 회복하고, 앞으로는 좀 더 틈과 여유가 있는 날들을 꾸려가고 싶다.

그러다 언젠가는 물구나무서기도 다시 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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