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몽돌 Jul 28. 2019

내가 지금 이래도 되나

라는 망설임 앞에서

뒤늦게 한 아이돌 그룹의 덕질에 빠진 친구 A가 있다. 늦게 배운 도둑질이 무섭다고, 덕질이 현생을 즐겁게 해 주다 못해 이제 현생을 위협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영상을 실시간으로 챙겨보다 보니 잠이 부족하고, 그들이 광고하는 모든 제품을 사다 보니 돈이 부족하고, 해외투어 콘서트까지 다니다 보니 휴가일수가 부족하다. 이제 회사 같은 팀 사람들도 다 그가 어느 그룹 팬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하루는 친구가 회사에 새로 산 멜빵바지를 입고 갔더니 후배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그것도 방탄소년단이 입은 거예요?


또 다른 친구 B의 ‘덕통 사고’는 좀 더 늦게 찾아왔다. 프로듀스 101에 출연한 모 아이돌에게 깊이 빠진 그는 새벽까지 그의 이전 영상을 찾아보느라 바쁘다. 휴대폰 잠금화면을 '최애'의 사진으로 바꿔 놓고 회사일이 짜증 나고 힘들 때마다 휴대폰을 본다고 한다. 그렇게 ‘슬픔이 없는 십오 초’를 보내면서 힘든 월화수목금을 버틴다. 이렇게 바람직하고 건전한 덕후 생활이 어디 있나 싶은데도 B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지금 이래도 되나 싶어. 이직 준비도 해야 하고, 영어 공부도 해야 하고, 운동도 해야 하는데……”


나는 말했다. 친구야, 내가 지금 이래도 되나 라는 마음을 버려, 제발! 그냥 마음껏 덕질하라고!



세상에는 두 부류의 사람이 있다. 어떤 생경한 즐거움과 만났을 때, A와 같은 사람들은 이에 저항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빠져든다(그래, 내가 이러려고 공부하고/일하고/돈 버는 거지!). 하지만 B와 같은 사람들은 즐거우면서도 마음껏 즐거워하지 못하고 자꾸만 자기 검열을 한다(내가 지금 이래도 되나?).


나는 오랫동안 B의 그룹에 속해 왔다. A와 같은 사람을 늘 부러워하면서도 선뜻 그렇게 살지는 못한다. '내가 지금 이래도 되나'에 대한 한, 나는 전문가라고 자부한다. 다년간의 분석에 따르면 '내가 지금 이래도 되나'는 아래와 같은 요소로 구성된다.


내가 → '다른 사람도 아닌 내가'

B그룹의 사람들은 자신을 ROI(Return on Investment, 투자수익률)을 따질 수 있는 상품처럼 생각한다. 뭔가를 생산해 내는 것이 아니라, 그냥 무용한 즐거움을 누리는 일은 굉장한 사치로 여긴다.


지금 → '다른 위중한 과업이 있는 이런 시기에 하필'

사실 늘 그렇다. B그룹의 사람들은 항상 위기상황이다. 마음껏 즐길 수 있는 시기는 평생 없다.

이래도 되나  →'나는 이러지 말아야 하는데!!!'
B그룹의 사람들은 '(나는) 이래야 한다'는 본인만의 기준이 있는데 대개 그 기준은 매우 높아 평생 충족이 안 된다. 이런 높은 자기 기준은 자기 비난, 자책은 물론 때론 죄의식까지 불러일으킨다.


내가 지금 이래도 되나의 자매품 문장들은 이런 것들이 있다.


내가 지금 이럴 때인가?
나 (돈/시간을) 너무 낭비하나?
(남들은 00 하는데) 나만 이렇게 살아도 되나?



일을 쉬는 일 년의 시간 동안 나는 무수히 많은 '내가 지금 이래도 되나'의 순간들을 만났다. 내가 지금 이렇게 쉬어도 되나. 이렇게 놀아도 되나. 뭔가 더 중요한 걸 안 하고 지금 고작 이런 걸 하고 있어도 되나. 이 괴로운 시간들을 통해 발견한 것은 내 안에 17세기 청교도 뺨치는 금욕주의자 꼰대가 한 명 들어가 있다는 것이다. 그는 내가 충분히 즐거워해도 되는 순간에도 끊임없이 ‘네가 지금 이래도 되니?’ 하고 잔소리를 해댄다.


그래서 나는 백 만큼 즐거울 수 있는 일에도 한 삼십 만치 즐거워하다가, 내가 지금 이럴 때가 아닌데...... 하고 반성하며 처진 어깨로 총총 걸어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곤 했다. 가보지 않은 칠십 만큼의 세계는 영원한 환상의 영역으로 남았고, 그 칠십을 죄책감 없이 마음껏 누리는 사람들을 늘 동경했다.


나의 ‘지금 이래도 되나’의 기원은 중학생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나는 당시 한창 붐이었던 판타지 소설에 흠뻑 빠져 있었고, 직접 판타지 소설을 써서 인터넷에 연재해 보려고 했다. 좀 미숙하지만 세계관과 등장인물들도 다 만들어 놓았다. 끝이 어떻게 날진 모르겠지만 일단 시작해 보고 싶은 이야기였는데, 나는 1화까지 쓰고 나서 그 파일을 삭제해 버렸다. 1화를 쓰는데도 이렇게 시간이 많이 걸리는데, 완결까지는 얼마나 많은 시간이 소요될 것인지 아득했다. 바로 앞에 닥친 더 중요한 일(시험, 고등학교 입시, 그리고 집안의 장녀로서의 일들) 앞에 소설 쓰기는 아주 바보 같은 짓처럼 여겨졌다.

※ 사족이지만 나는 장남, 장녀는 B그룹에 속할 확률이 매우 높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영영 휴지통으로 들어가 버린 재미난 일들은 그 뒤로도 무수히 많았다. 당장의 중요한 과업을 위해 희생되어야 하는 즐거움들. 시험기간인데 벚꽃을 보러 가도 되나. 시간이 없는데 극장까지 가서 영화를 봐도 되나. 취준생인데 여행을 가도 되나 등등. 내가 지금 이럴 때인가, 라는 말은 살아난 식욕을 사라지게 하고 한창 열 오른 즐거움도 식게 만드는 마법의 주문이었다.


그렇게 아껴온 즐거움들이 복리처럼 쌓여 언젠가 큰 '한 방'으로 돌아오는 일은 없었다. 그때 못 누린 즐거움은, 지나가 버린 순간은 어떤 식으로도 다시 누릴 수가 없었다. 내 안의 청교도 꼰대가 나에게 미친 해악은 이만저만한 것이 아니었다. 그걸 깨달은 이후로 나는 가 언제든지 '지금 네가......' 하고 입을 떼려고 할 때마다 바로 닥쳐! 하고 소리를 지르기 위해 무진장 노력해 왔다. 그렇다, 노력해 왔다는 것은 여전히 잘 안되고 있다는 뜻이다.


한국인의 마음속에는 아마 어느 정도는 ‘내가 지금 이래도 되나’라는 금욕주의가 자리 잡고 있을 거라 생각한다. 세계에 유래 없는 초고속 성장을 이룩한 대가로 늘 마음이 급하고 뭔가에 쫓기는 민족. 도시화가 이루어졌음에도 여전히 농촌 마을공동체의 멘털리티를 가지고 있어, 옆사람 사는 모습에 온갖 관심이 많은 사람들. 모내기하는 시기와 추수하는 시기가 정해져 있듯, 몇 살엔 대학 가고 몇 살엔 취직하고 몇 살엔 결혼 안 하면 큰일 나는 것처럼 생각하는 사회 분위기. 그 유명한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짤이 모두의 마음속에 신전처럼 자리 잡아, 사람에 따라 정도는 다를지언정 “내가 지금 이래도 되나, 하라는 00은 안 하고......”라는 검열관을 모두 마음속에 지니고 산다. 가끔 가다 신기할 만큼 그런 자기 검열이 없는 사람들을 만나게 될 때마다 나는 그들의 산뜻한 멘탈이 세상 그 무엇보다 부럽다.



내가 지금 이래도 되나? 그래, 지금 이러면 이 뒷감당은 미래의 내 몫이다. 내일 출근해야 하는데 새벽 늦게까지 덕질을 하면 그 피곤함은 내일의 내가 감당할 것이다. 하지만 그 미친 듯이 빠져 볼 때의 흥분, 몰입감, 의미 없이 흘러가던 시간이 밀도 있게 쫀쫀해지는 느낌 또한 온전히 나의 것이다. 그렇게 아주 흠뻑 빠져 지낸 시간은, 비록 밥도 안 되고 돈도 안 될지언정 사람에게 깊은 자국을 남긴다. 하나의 즐거움을 끝까지 따라가 보고 나면 또 새로운 즐거움을 시작할 구력이 생긴다. 나는 감히, '내가 지금 이래도 되나' 모먼트를 넘어서는 사람에게는 새로운 세계가 열린다고 말하고 싶다.


만약 이 글을 읽는 당신이 나와 비슷한 사람이라면, 그래서 내가 지금 이래도 되나 라는 말이 늘 당신을 붙잡는다면, 꼭 말해 주고 싶다.


응, 당신은 지금 이래도 된다.


지금 이러려고, 당신은 지금껏 수많은 힘들고 지루한 순간들을 버텨 왔다.


내가 지금 이래도 되나 싶은 순간을 만날 때마다 스스로에게 그렇게 말해 주자. 물론이지, 충분히 그래도 돼. 그렇게 스스로를 응원해 주다 보면 적어도 다섯 번 중에 한두 번은 마음 편하게 하고 싶은 것을 하게 되지 않을까.  


마음 속 꼰대 청교도 검열관은 이제 그만 조용히 시키고, 마음껏 기뻐하고,

마음껏 즐거워하자.


인생의 잔재미들을 야무지게 찾아 누리고,

때론 형편껏 사치도 부릴 수 있는,

스스로에게 너그러운 사람이 되면 좋겠다.


당신은 ROI를 따질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고백하자면 나도 A와 같이, 모 아이돌 그룹의 팬이다. 6월엔 런던 웸블리에서 열린 콘서트에도 다녀오는 미친 짓을 했다. 어쩌다 천우신조로 티켓팅에 성공하고 나서도,  내가 / 지금 / 이래도 되나 라는 생각을 수없이 했다. 뭐 아이돌 콘서트를 보러 해외를 가? 그런 건 정말이지 남의 일인 줄 알았다. 그럼에도 다녀왔고, 그 며칠은 인생에서 길이길이 남을 추억이 되었다. 너무너무 즐거웠고, 행복했고, 아름다운 순간들이었다.

여전히 나는 무용한 즐거움들 앞에서 내가 지금 이래도 되나 라는 혼잣말을 하며 망설인다. 하지만 이제는 눈 질끈 감고 그 순간을 넘기면 새로운 문이 열린다는 것을 조금은 알게 되었다.


지금, 당신은, 그래도 된다




매거진의 이전글 여름 텃밭에서 배우는 것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