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몽돌 Jul 21. 2019

여름 텃밭에서 배우는 것들

가지는 가지, 오이는 오이가 되는 곳

올해부터 구청에서 운영하는 텃밭을 분양받아 작게 농사를 짓고 있다. 몇 평 안 되는 밭에 상추, 깻잎, 케일, 쪽파, 당근, 고구마, 감자, 오이, 가지, 방울토마토를 심어 두서없는 다품종 소량생산을 해 보고 있다.


작물은 농부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큰다고 하는데, 우리 텃밭의 작물은 농부의 발자국 소리를 들으면 깜짝 놀라 잠에서 깨어날지도 모른다. 나는 바쁘다는 핑계로 텃밭 주인의 소임을 자주 잊어버리는 게으른 농부다. 그래도 가족들의 도움으로 겨우 대를 세우고 웃거름도 주었다. 물도 자주 안 주고 게으름을 피우는 나 같은 농부에게도 텃밭은 분에 넘치게 많은 것을 안겨준다. 특히 여름은 잎채소도 열매채소도 풍요로운 계절이다.


유월 말 회사 식당의 자율배식 코너엔 유독 상추가 자주 나왔다. 지친 몸에 신선한 푸성귀라도 넣어야겠다는 생각인지 너도나도 상추를 잔뜩 담아 먹었다. 역시 상추를 잔뜩 담아 온 회사 동기의 식판을 보고 나는 빙긋이 웃으면서 마치 대단한 비밀을 알려주듯이 말했다.


"나...... 왜 지금 상추가 매일 나오는지 알 것 같아."

"왜?"

"지금 상추가 제철이라 진짜 많이 나거든. 지금 안 따면 금방 질겨지고 써져서 못 먹어. 우리 텃밭도 지금 장난 아니야."

"재고 되기 전에 소진하는 거구나."

"뭐 말하자면 그렇지."


제조업계에서 몇 년 일하면 사람이 이렇게 삭막해진다고 생각하며, 나는 상추쌈을 입에 넣었다.


직접 길러먹어 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것이다. 여름 상추가 얼마나 잘 자라나는지. 분명 며칠 전에 따먹어 잎이 듬성듬성해졌는데, 금세 다시 두툼하게 새 잎으로 가득 차 있다. 먹어도 먹어도 끝이 안 나서 징그럽기까지 한 상추. 아 이젠 질려서 못 먹겠다며, 뽑아버리고 다른 걸 심으려고 점점 억세지는 잎새 사이로 손을 더듬어 넣으면 안에 보송한 여린 잎이 자라고 있어 깜짝 놀라 손을 뗀다. 새로 돋아나는 여린 잎의 감촉. 아마 텃밭을 가꾸지 않았더라면 평생 몰랐을 감각이다.


당근을 기르며 처음으로 당근 잎을 먹어보았다. 씁쓸하고 고소하다.


여름 텃밭은 해질녘에 가야 한다. 햇볕에 목이 타들어갈 작물들이 가엾다고 낮에 텃밭에 가면 사람이 먼저 지쳐 탈수증에 걸릴지도 모른다. 시원한 바람이 솔솔 불 무렵 텃밭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할 일은 작물들의 상황을 확인하는 것이다. 고추나 방울토마토 같이 대를 세워준 식물들이 제대로 서 있는지를 확인한다. 열매들이 모두 고르게 햇빛을 받을 수 있도록 불필요한 가지들을 쳐낸다. 여름에 왕성하게 자라는 것은 작물뿐만은 아니다. 부지런히 자라는 잡초를 뽑아 준다.


이제 수확을 할 때다. 고추는 청양고추와 풋고추를 조심히 구분해서 담는다. 가시에 찔리지 않게 조심해서 가지와 오이를 딴다.  뭐니 뭐니 해도 방울토마토를 딸 때가 가장 재미있다. 여름 햇살을 받아 빨갛게 익은 방울토마토 하나를 따서 쓱쓱 닦아 입에 넣으면 달고 미지근한 맛이 입안에 가득 찬다. 미리 챙겨 온 가방이 각종 열매채소들로 묵직해지면, 아직 무성한 잎채소 중에서 먹을 만한 여린 잎을 골라 따서 가방을 마저 채운다.


빨갛게 익어가는 방울토마토


수확을 마치면 물뿌리개에 물을 가득 받아 종일 햇살 아래 버텨온 작물들에게 촉촉하게 물을 준다. 그러다 보면 해가 뉘엿하게 진다. 오랜만에 하늘도 보고 산도 보면서 여름 저녁 바람을 맞고 있으면 시간이 멈춘 것 같다. 그 순간만은 아무 생각도 들지 않는다. 마음이 넉넉하고 풍요롭다.


잎채소는 워낙 잘 자란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서 그러려니 했는데, 오이와 가지 같은 열매채소가 사람 팔뚝만 하게 열려 있는 것은 볼 때마다 신기하다. 마트에서 잘 포장된 '상품'으로 만나던 오이와, 모종 시절부터 알고 지낸(?) 오이는 다르게 느껴진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그냥 풀떼기에 지나지 않았던 아이가 어쩌다가 이렇게 커다란 열매를 맺었을까. 무엇이 이 열매를 만들었을까. 적시에 찾아와 준 햇빛과 바람과 빗물에게 감사하게 된다.


틱낫한 스님은 먹기명상을 할 때 건포도 한 알에도 우주가 들어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라고 한다. 텃밭농사를 짓다 보면 왜 열매 한 알에도 우주가 들어있는지 얼핏 알 것 같다. 물과 바람과 햇빛과 흙의 양분이 가지를 만들고 오이를 만들고 방울토마토를 든다. 나는 그걸 먹고 활동을 하고 배변을 하고 죽고 나면 다시 흙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다시 가지가 되고 방울토마토가 되겠지.


그것이 순환.

자연.

우주.


삭막한 사무실, 네모난 벽과 네모난 모니터 안에 갇혀 살다가 텃밭에 오면 내가 나 혼자 똑 떨어져 사는 사람이 아니라 거대한 질서의 일부라는 걸 실감한다. 어차피 흙으로 돌아가는 인생이다. 텃밭을 다녀오면 잠시 겸허해지고, 가벼워진다.


노을지는 텃밭


텃밭에 가지를 심으면 가지가 나고 오이가 심으면 오이가 난다. 오이 모종이 시들어 버릴 수는 있을지언정 오이가 가지가 되지는 않는다. 청양고추를 심은 자리에 풋고추가 나지는 않는다. 그걸 보면서 생각한다.


나도 그냥 나로 살겠구나.


나는 그냥 나로 살 수 있을 뿐이구나. 충분한 보살핌을 받지 못해서, 또는 환경을 잘못 선택해서 비실비실 시들시들할지언정 내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으로 살 수는 없는 것이다.


올봄에 제주 레몬을 사서 레몬 소금을 만들었다. 발라낸 씨앗을 집 화분에 묻었더니 싹이 났다. 겉모습만 봐서는 잡초가 아닌지 의심이 가는 여린 싹이었다. 거실에 두어서는 일조량이 부족해 잘 안 자르는 것 같기에 조심히 떠 와서 텃밭에 옮겨 심었다. 혹 나중에 잡초로 여겨 뽑아버릴까 봐 각별히 표시를 해 두어야 했다. 레몬나무의 자리를 만들어 주며 말했다.


아직 네가 누군지 잘 모르겠지만, 너는 잡초가 아니고 레몬이야. 언젠간 레몬이 될 거야.

처음엔 여기가 낯설어서 좀 비실비실 할 수도 있는데, 조금만 참아. 

이제 네가 좀 더 잘 자랄 수 있는 곳에 왔으니까. 너는 너답게 레몬으로 잘 자라기만 하면 돼.


그 말을 하면서 쪼그만 레몬나무 싹과 눈을 맞추는데 괜히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레몬나무에게 했던 말을 나에게도 해 주고 싶었다. 레몬나무 앞에 쪼그려 앉아서, 예전에 라디오에서 듣고 좋아서 마음에 담아두었던 말을 되새겼다.

'자기가 해 보고 싶었던 일에는 결국 돌아오게 된다. 언제든지 자기가 한 선택을 번복하고 다시 시작할 수 있다.' 나에게 물을 주는 마음으로, 햇볕을 쬐어 주는 기분으로 그 말을 몇 번이고 몇 번이고 해 주었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해 남산에 사주명리학을 배우러 다녔던 적이 있었다. 태어날 때부터 주어지는 여덟 글자, 팔자(八字)를 읽는 법을 배웠다. 각자 태어날 때 갖고 태어나는 글자가 다르다는 것, 각자 고유한 기질과 운명을 갖고 태어난다는 것, 결국 자기 생긴 바대로 산다는 것이 당시에 큰 위안이 되었다. 텃밭도 나에게 비슷한 메시지를 전해준다. 좀 더 선명하고 직접적으로.


건조한 사막에 혼자 남겨진 물고기가 된 기분이 들 때, 왜 나는 이 모양인가 왜 나는 누구저럼 저렇게 못 하나 싶어 마음이 푹푹 꺼질 때, 나는 초록으로 가득한 여름 텃밭에 간다. 가지는 가지가 되고 오이는 오이가 되는 곳. 레몬나무에선 오렌지가 아니라 반드시 레몬이 열리는 곳.


오이가 오이이고 레몬이 레몬이듯이 나도 나일뿐이다. 특유의 빛깔과 향기와 맛이 있는. 그러니 억지로 '나다움'을 찾아 나를 괴롭게 할 필요도, 나와 다른 남을 부러워할 필요도 없다. 애쓰지 않고 자연스럽게 살아가도 괜찮다. 내게 맞는 환경을 찾아가는 것을 주저하지 말자. 다만 헤매는 날들 가운데서도 내가 나에게 충분한 물과 햇빛을 주자고 다짐하면서, 게으른 농부는 텃밭을 떠난다.




매거진의 이전글 직장인의 온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