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절의 중국이라니

2. 시월, 중국, 청두

by 몽돌

우리의 청두 첫 여행지는 청나라 옛 거리를 재현했다는 콴차이샹즈였다. 오래된 옛 가옥 사이로 큰 골목(콴)과 작은 골목(차이)을 누비면서 기념품도 사고 길거리 음식도 먹어야겠다는 생각으로 갔으나, 사람이 생각보다 정말 너무 많았다. 어깨와 어깨를 맞추어 앞으로 나란히 전진을 해야 하는 수준이었다. 후진은 불가능했다.



“오늘 목요일 맞아? 이 사람들 출근 안 하고 왜 다 여기 있는 거야?”

나만큼이나 준비 없이 여행 온 P가 말했다. 순간 머릿속에 뭔가가 섬광처럼 스쳐 지나갔다.

"아 지금 중국...... 국경절인 것 같다?"

검색을 해 보니 역시 맞았다.

국경절의 중국이라니, 지옥엘 왔구나.


말 그대로 인파, 사람의 파도 속에서 두어 골목을 이리저리 밀려다니고 나니 관광할 의지가 사라졌다. 청두가 이 정도로 붐비면 베이징이나 상하이는 도대체 어떻단 거지? 겨우 인파를 빠져나와 비교적 한적한 골목에 들어서자 한 꼬마 아이가 나에게 다가와 중국어로 말을 걸며 자기가 여기 무슨 행사에 참가하러 왔는데 돈이 없다고 했다. 팅부동 팅부동(난 못 알아들어) 하고 돌아서자 그 다음 골목에서는 웬 아줌마가 나에게 말을 걸어 뭔가를 영업하려고 했다. 전부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한국에서 각종 전도와 '도를 아십니까'에 희생되어 본 경험이 있는 나에겐 익숙한 뉘앙스였다. P는 사람들이 여기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왜 사람들이 너에게만 말을 거냐고 했다. 내가 글로벌리 인터내셔널리 호구의 상인가 보지, 하고 말하고 나니 슬퍼졌다. 밥이나 먹으러 가기로 했다.






백종원 따거가 갔던 탄탄멘 집으로 향했다. 덕씨 아저씨의 3대째 특제 비법으로 만든다는 탄탄멘 집은 당시 티비 속의 호젓한 모습과는 달리 제법 가게 세를 확장한 모습이었다. 야외 테이블이 방송 때보다 무려 세 배로 늘어나 있었고 탄탄멘 가격은 1.5배가 되어 있었다. 펜과 종이를 든 호객 아저씨가 우리가 근처를 서성이자 한궈런?(한국인) 바이쫑위앤!(백종원) 하면서 앉기를 권했다.


앉아서 탄탄멘 두 개를 시키자 일회용 종이 그릇에 탄탄멘이 나왔다. 탄탄멘은 맛있기는 했지만 감탄을 할 정도는 아니었고, 테이크아웃도 아닌데 일회용 종이컵에 먹는 건 좀 아닌 것 같았다. 전체적인 가게 분위기가 방송에서 본 분위기와 전혀 달라서 아무래도 덕씨 아저씨가 방송 후 돈을 많이 벌고 다른 사람에게 가게를 넘긴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탄탄멘의 기름기를 씻어내기 위해 중국차를 마시러 가기로 했다. 바이두 지도를 검색해서 근처에서 가장 평이 좋은 찻집에 갔다. 벽담표설(碧潭飘雪), '푸른 호수에 날리는 눈'이라는 아름다운 이름의 자스민 녹차를 마셨다. 차예사는 나긋나긋한 몸짓으로 차를 따라주었고 우리는 뜨거운 물을 몇 번씩 리필해 마셨다. 여행 중 가장 마음이 편한 시간을 보냈다. 항상 여행 때마다 느끼지만 쾌적한 찻집/카페에 들어와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면서 인스타그램 피드를 넘겨보는 일만큼 행복한 일이 없다. 한국에서도 가능한 일인데 왜 먼 타국까지 굳이 비행기를 타고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차로 물배가 찰 지경이 되어서야 찻집을 나섰다. 삼국지 영웅들을 모셨다는 무후사와 진리 거리를 가기로 했다. 중국 우버인 디디 택시를 불러 갔는데, 전 중국의 관광객이 다 여기로 왔는지 어느 구간부터는 차가 꿈쩍도 하질 않았다. 택시 기사는 목적지까지 정액을 받아 놓고는 우리를 중간에 내리게 했다. 우리같이 택시에서 강제하차당한 관광객들의 행렬 속에서 부지런히 1km를 걸어 도착한 진리 거리는 아까 콴차이샹즈보다 사람이 많았다. 무후사는 심지어 12월 31일 보신각 종 앞을 연상시킬 정도로 사람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었다.


"저길 들어가는 게 의미가 있을까?"

"유비 관우 장비 얼굴 구분도 못할 것 같은데?"

우리는 깔끔하게 무후사 관광을 포기했다.






그래, 관광이 안 되면 먹방이다. 백종원 따거의 먹방루트를 따라 원조 마파두부집 진마파두부를 조금 일찍 가기로 하고 다시 택시를 잡았다. 진마파두부 앞에 내렸더니 사람들이 말 그대로 진을 치고 앉아있었다. 지금 시간이 5시밖에 안 되었는데...... 직원에게 대기 번호표를 받으며 물었더니 두 시간은 기다려야 한다는 대답이 나왔다. 내가 받은 번호가 701번인데 380번을 부르고 있었다.



에이 그래도 설마...... 여기에 사람들이 몇백 명이 있는 건 아니니까...... 이 300번 사이에 분명 허수도 많을 거야. 우리는 기다려 보기로 했다.


A산 바 지어우(A389), A산 지어우 지어우(A399)...... 번호표를 호명하는 낭랑한 기계의 음성을 들으며 한 시간을 기다렸다. 중국어를 하나도 모르는 P는 우리의 호명을 기다리면서 중국어 숫자를 완벽하게 깨치게 되었다. 성질 급한 한국인들은 이제 기다림에 지쳐가는데, 옆에 앉아 한 시간을 함께 기다린 중국인들은 조금의 짜증도 한숨도 없었다. 심지어 밀크티며 해바라기씨며 과자 등을 들고 와 먹으면서 기다리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아니, 웨이팅 하면서 먹는 건 뭐야?"

"이쯤 되면 이제 이 식당은 배고픔을 채우는 의미가 아닌 거지."

"아, 진정한 미식가구나."


이 와중에 나는 아까 자스민차를 많이 마신 탓인지 화장실이 몹시 가고 싶어졌다. 그러나 근처 공원 공중화장실을 가기에는 악명 높은 중국의 화장실 상태가 두려웠다. 공중화장실을 다녀온 뒤에도 마파두부를 맛있게 먹을 수 있을까? 한 시간이 지났지만 번호가 오백 번대 후반임을 확인하고는 우리는 이 상태대로 한 시간을 더 기다리진 못하겠다고 결론을 내렸다. 진마파두부는 포기하고 우선 다시 숙소로 돌아가기로 했다.


“한 시간이나 버렸어 한 시간을……”

괴로워하는 내게 P는 말했다.

“괜찮아, 중국 문화 제대로 체험했잖아. 손절할 수 있는 것도 능력이야.”

그래. 오늘 우리는 진짜 대륙을 보았다. 그 어떤 관광지보다 많은 걸 보았다고. 다시 택시를 잡으며 나는 앞으로 중국차는 계속 리필이 되더라도 조금만 마시겠다고 다짐했다.






숙소로 돌아와 잠시 쉰 뒤 봐 뒀던 촨촨집을 갔다. 촨촨은 마라 훠궈와 비슷한 탕에 꼬치에 꽂힌 재료들을 직접 골라 먹는 음식으로, 최근에 젊은이들 중심으로 크게 인기가 있다고 했다. 우리 앞에 세 팀이 있길래 이 정도 웨이팅은 껌이지, 하고 이름을 적고 앉았다.



그러나 대기하는 사람은 단지 세 팀만이 아니었다. 우리 뒤를 이어 여러 사람들이 와서 앉더니 우리보다 먼저 호명되어 식당으로 들어갔다. 알고 보니 중국의 웨이신(위챗페이)을 사용하는 사람들은 미리 식당에 예약도 할 수 있고 꼭 식당 앞에 줄을 서있지 않더라도 자기 앞에 몇 명이 남았는지도 실시간 확인이 가능하다고 했다. 결국 아무것도 모르는 한궈런들은 촨촨집에서도 한 시간 웨이팅을 했다. 보슬비가 내려 우산을 꺼내 썼다. 어이고 힘들다. 도저히 못 견디겠다 싶을 무렵쯤 우리의 번호가 호명되었다.


촨촨은 여러 꼬치를 직접 골라 뜨거운 마라 국물에 익혀 먹는 요리다. 나는 마라 양념을 한 소고기를 펄펄 끓는 소기름과 벌건 향신료 국물에 넣어 익혔다가 그것을 다시 참기름+마늘+파+고수에 찍어먹는 이 엄청난 조합이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몇 년간 한국화 된 마라로 위장을 단련했음에도 본고장 쓰촨의 마라 소스를 받아들이기엔 아직 수련이 부족했던 걸까. 촨촨 꼬치를 몇 개 먹고 나자 속이 부글부글거리기 시작했다. 정작 한국에서 마라를 잘 먹지 못하던 P는 인생 술안주를 만났다며 마라 소고기 촨촨을 몇 번 더 추가해서 먹었다.




본고장의 마라에 패배한 나는 쓰린 속을 달랠 요거트를 사서 숙소로 돌아왔다. 속옷까지 마라 향이 배인 것 같았다.


마라향을 열심히 씻어내고 침대에 누워 내일의 계획을 세웠다. 내일은 원래 아침 일찍 일어나 청두의 명물 판다기지를 방문할 계획이었는데, 국경절의 어마어마한 관광객을 실컷 보고 나니 내일 판다기지를 가는 게 의미가 있을까 싶었다. 가더라도 판다 털끝이라도 볼 수 있을 것인가. 네이버 블로그의 판다기지 방문후기(평소에도 사람이 매우 많다는 내용이 대부분) 포스팅을 75% 정도 보고 나서 옆에 누운 P에게 말을 걸었다.


“우리 내일 판다는 볼 수 있을까?"

이미 잠든 P는 대답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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