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 늦게까지 먹은 마라촨의 강렬함 탓에, 아침 6시 전에 일어난 우리의 얼굴은 띵띵 부어있었다. 몸이 부서질 듯이 피곤했지만 호텔 조식과 쓰디쓴 커피를 꾸역꾸역 입에 밀어넣으며, 마치 목요일 회식 후 금요일 출근과 같은 피곤함을 느꼈다. 그래도 여기까지 와서 판다는 봐야지. 그렇게 귀엽다던데.
판다는 아침 일찍 식사를 하고 그 뒤로는 내내 잠을 잔다고 했다. 판다를 보려면 그리고 인파를 조금이라도 피하려면 아침 일찍 가야 했다. 그래서 우리의 계획은 7시반 판다기지 오픈 전에 도착하여 오프라인 표를 1번 타자로 사서 들어가는 것이었다. 인터넷 예매를 하더라도 인터넷 예매자 입장 줄이 오히려 길어서, 표를 현장구매하나 미리 구매하나 입장 시간에는 큰 차이가 없다는 블로그 포스팅을 (어제) 본 뒤였다.
그러나 계획은 어그러지라고 있는 법. 아침 일찍부터 일어나 설쳤는데도 어제 먹은 마라촨의 위력을 느끼며 화장실을 들락날락하고 나니 어느새 시계는 7시 반을 향하고 있었다. 디디 택시 어플을 켜서 경로를 확인하니 이미 팬더기지 주변은 빨간 색으로 표시되어 있었다. 교통정체가 일어나고있다는 뜻이었다. P가 말했다.
"그냥 가지 말까?"
그러나 새벽같이 일어나 조식을 먹은 의지의 한국인은 포기하지 않는다.
"일찍 일어난게 아깝잖아. 가자."
어떻게든 국경절 인파를 뚫고 판다를 보겠다는 결연한 의지로 아침 택시에 몸을 실었다.
택시가 경로의 반절쯤 왔을 때, 중국 바이두 지도 어플로 판다기지를 검색한 나는 다음과 같은 안내문구를 발견한다.
국경절 기간 현장표 발매 없음. 인터넷상에서 미리 표를 구매할 것
중국어로 되어 있는 안내문을 혹시 잘못 해석한 것인가 싶어 번역기로 다시 더블체크를 해 보아도 내용은 같았다. 망했다. 급히 중국어 표 예매 어플을 깔고 다시 확인해보아도 이미 오늘 오전 표는 없었다. P는 그걸 지금 말하면 어쩌냐고 했고 나는 치미는 화를 참으며 말했다.
"네이버 블로그 작년도 포스팅에는 그런 내용 없었던 말이야......"
우리는 결국 꾸역꾸역 팬더기지 근처까지 택시를 탔다. 그래, 여긴 중국이니까 혹시 현장 표가 조금은 남아있을 지도 모른다고 믿으며. 판다기지 한참 앞에서 차가 막히기 시작했고 매정한 택시기사는 돈을 다 받아먹고는 교통정체 구간 앞에서 어김없이 우리를 떨궜다.
한참을 걸어 팬더기지 매표소에 도착한 우리는 믿을 수 없이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과...... 바이두에서 확인한 것과 동일한 내용의 거대한 팻말을 보게 된다.
“표가 없는 사람은 줄서지 마시오”
“표는 인터넷 구매할 것”
줄을 어마어마하게 선 인파를 보니 사실 표가 있더라도 입장을 다시 고려해 보아야 하는 상황이기는 했다. 혹시 모르니 한번만 더 확인하고 가자, 하고 인포메이션 데스크를 찾아 나는 울 것 같은 얼굴로 물었다.
“현장 표 못 구하나요?”
“인터넷 예매해야 돼요. 지금은 12시 이후 오후표밖에 없어요.”
“내일 오전은요?”
“국경절 기간 오전 표는 이미 다 팔렸어요."
팬더는 일찍 일어나 아침밥을 먹고 잔다는데 오후 표가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아침 6시부터 설쳤던 피곤한 한국인들은 이쯤되면 할 만큼 했다는 생각으로 청두의 명물 판다기지를 포기하기로 마음먹는다. 그래 판다는 에버랜드에도 있으니까...... 유투브로 보면 되니까......
국경절인 것도 모르고 중국을 온 내가 바보다. 근데 왜 판다 고작 그걸 못 봤다고, 왜 눈물이 나려고 하는 걸까. 왜 이렇게 슬프고 피곤하고 짜증이 나는 걸까. 갑자기 싸하게 아픈 배를 문지르다가 깨달았다.
아, 곧 생리기간이구나.
널뛰는 짜증과 피곤은 PMS(생리전증후군) 때문이었다.
국경절에, 생리까지 겹치다니! 싸르르 아파오는 배를 부여잡고 판다기지를 빠져나왔다. 날씨는 어찌나 흐리고 습하고 찌뿌둥한지. 수십 개의 중국 관광객 대절 버스를 지나, 팬더머리띠를 한 사람들의 무리를 지나, 우리는 말없이 걸었다.
다시 시내로 향하는 택시를 잡아 탔다. 택시 기사 아저씨는 너희 벌써 판다를 다 보고 온 거냐고 농담을 했던 것 같다. 지칠대로 지친 나는 팅부동 팅부동(전 못 알아들어요) 하고 말았다.
호텔 방에서 모자랐던 잠을 한참을 자고 일어났다. 여행지의 호텔에서, 벌건 대낮에, 아무 관광도 하지 않고 어떤 명소도 가지 않은 채 낮잠을 푹 자고 일어나는 것은 무슨 금기를 깨는 일인 것마냥 큰 쾌감을 주었다. 기분이 조금 좋아졌다.
그래, 관광이 아니면 미식이다. 밥이라도 맛있는 걸 먹자.
중국 맛집 어플 따종디엔핑을 검색해서 근처 식당 중 평점이 높은 맛집을 가기로 했다.
생리통으로 끙끙대면서도 맛있는 걸 먹겠다는 일념으로 1km를 꾸역꾸역 걸어 갔더니 이 식당도 이미 삼십여명이 웨이팅 중이었다. 아니 지금 오후 세 신데...... 다들 이렇게 늦은 점심을 이토록 열성적으로 먹는단 말인가. 청두는 과연 미식의 도시였다.
두 차례에 걸친 웨이팅 경험으로 보건대 이 식당 입장은 한시간 반은 걸릴 각이다. 우리는 어제 배운 빠른 손절력을 발휘하여 그 옆골목의 아무 식당에나 들어갔다. 곱창국수 페이창펀과 물만두를 시켜 먹었다. 두 음식 모두 뻘건 고추기름이 올라가있었다.
매운 차오쇼우(만두)
나는 다시 찾아온 생리통으로 몸이 배배 꼬일 지경이었다. 식욕도 없고 젓가락을 들 힘도 없었다. P에게 무슨 맛인지 묘사해 달라고 했다.
"음, 어제 먹은 거랑 비슷한 맛이야."
조금 위안이 되었다.
이른 오후에 다시 숙소로 돌아와 침대에 누워 끙끙 앓으면서 나는 슬퍼했다. 국경절에 그것도 생리기간에 중국에 온 내가 바보다. 어떻게 두 개 다 미리 고려하지 않고 올 수가 있단 말인가. 내 소중한 연차까지 썼는데. 기분이 한없이 땅으로 땅으로 가라앉으려 했다.P에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