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보와 함께 낮잠

4. 시월, 중국, 청두

by 몽돌

넷플릭스로 귀한 시간을 탕진한 우리는 다음날 다시 진마파두부에 도전했다. 이번엔 어제의 실패를 만회하기 위해 11시 오픈 전에 도착했다. 10시 45분쯤 도착했는데 식당은 이미 거의 만석이었고 우리는 마지막 2인석에 앉을 수 있었다. 우리 뒤로 긴 줄이 이어졌고 사람들은 웨이팅 대기번호를 받기 시작했다. P가 말했다.


"우리 뒤부터 줄선다!"


식당에 밥 먹으러 와서 이 말만큼 쾌감을 주는 말은 없다.



닭고기와 땅콩을 볶은 꿍바오지딩은 마늘과 생강과 파의 향이 어우러져 향긋하고 달았다. 와글와글 끓는 맵삭한 원조 마파두부와 흰쌀밥을 곁들여 먹으니 좋았다. 마파두부가 맵고 짤 때는 꿍바오지딩을 다시 한 입, 물만두를 한 입 먹다 보니 한 상을 거하게 다 비웠다.


밥을 먹고 기분이 좋아진 우리는 근처 두보초당을 산책하러 갔다. 방금 먹은 훌륭한 아침밥이 총 70위안이었는데, 두보초당 입장권은 50위안이었다. 초당 입장은 하지 않고 공원만 둘러보았다. 두보의 생애와 두보의 시를 하나도 모르더라도, 중국풍으로 으리으리하게 조성된 두보초당 공원은 아주 아름답고 한가로웠다. 마침 날씨까지 화창하게 개이기 시작했다. 오늘이 가는 날이라고 청두가 우리에게 호의를 베풀고 있었다.



공원을 좀 걷다 햇살이 땃땃하게 내리쬐는 명당자리를 찾아 앉았다. 배는 부르고, 생리통은 잠시 가라앉아 통증이 사라진 자리에 졸음이 찾아왔다. 바람이 선선하게 불고, 옆에선 두 아주머니의 중국어 대화가 음악같이 들렸다. 어디든 보온병을 갖고 다니며 쪼르르 차를 마시는 중국인들 옆에서, 우리는 등을 붙이고 기대 앉아 낮잠을 잤다. 삼 일의 여행 중 가장 청두스러운 순간이었다. 훗날 청두 여행의 기억을 다시 떠올리게 된다면, 무엇보다 이 때의 바람과 온도와 소리들을 가장 먼저 떠올릴 것이다.





두보초당을 나온 우리는 청두에 와서 처음으로 뭔가를 제대로 했다는 만족감에 기분이 좋아졌다. 쇼핑을 하기로 했다. 첫날 들른 찻집에 다시 가서 봐 둔 찻잔을 샀다. 차를 포장하는 동안 주인이 권한 차가 맛있어 찻잎도 한 통 샀다. 골목을 걷다 다른 찻잎가게로 들어가 선물용 차를 좀 더 샀다.


까르푸에 들러 마라양념을 한 땅콩과 해바라기씨를 샀다. 청두 특산품 코너에서 아주머니가 열심히 영업하는 훠궈 홍탕 양념을 못 이기는척 카트에 담았다. 특산품 코너의 시뻘건 색조에 P와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한 석달간은 빨간 거랑 기름진 거는 안 먹을래."

"그래, 사 놓고 연말에나 먹을 것 같다."

오직 마라로 가득 채운 카트를 계산하고 저녁을 먹으러 갔다.


청두에서의 마지막 식사는 생선요리였다. 이 식당에서 가장 유명한 걸로 주세요, 했더니 아주 커다란 사이즈의 마라 생선요리가 나왔다. 우리는 잠시 말이 없었다. 부글부글 끓는 빨간 생선 때문인지, 식당의 붉은 조명 때문인지 몰라도 P는 조금 비장한 얼굴이 되었다.



커다란 생선을 뼈만 남기고 먹어치우고 나자 이제 여행자로서의 의무는 다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청나라 옛거리 콴차이샹즈는 도망치듯 빠져나왔고 삼국지 영웅들이 있다는 무후사는 구경도 못했고 판다기지는 매표소까지만 갔지만, 쓰촨 사람처럼 매일 빨간 기름을 먹었다. 비겁하게 한식으로 도피하지 않았다. 그것이 중요한 것이다. 몸은 다소 안일했으나 위는 열일했으니 이만하면 되었다.


공항으로 가기 위해 택시를 불렀다. 마라땅콩과 마라양념으로 무거운 까르푸 비닐봉지를 택시에 올려놓았다. 택시가 고속도로에 올라서자 이제야 비로소 쉴 수 있겠다는 큰 안도감이 들었다. P에게 말했다.


"당분간 아무것도 안 사고 아무것도 안 먹고 싶어."

"그럼 여행 잘 한 거네."

"그러게. 얼른 집에 가고 싶다."


꼬질해진 흰색 운동화에서 마라 냄새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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