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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돌 Dec 08. 2019

나의 선생님들에게

여전히 수능 꿈을 꾸는 제자가

선생님,


아침에 일어나 뜨거운 차를 끓여 쪼르르 따르다 맥락 없이 툭, 당신의 말이 떠올랐습니다.


고등학교 입학 후 첫 국어 시간이었습니다.

가장 좋아하는 과목이었기 때문에 저는 낯선 환경에 적응하느라 힘겨운 와중에도 그 시간을 가장 기다렸어요.


검은색 파마머리에 동그랗고 하얀 얼굴, 먼 곳을 응시하는 것 같은 표정,

약간의 비음이 섞인 읊조리는 듯한 말투로 시를 잘 읽어주실 것 같았던 당신,

문학을 사랑해 국어교사가 되셨을 것 같은 당신.

당신은 하얀 분필로 똑 똑 똑 칠판에 이름 석 자를 쓰고는 돌아서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공부는, 피눈물이 날 때까지 하는 겁니다."


"지루하고... 졸리고... 힘들어도 몸에 인이 박히고, 손에 인이 박힐 때까지 해야 되는 겁니다.

 몸이 배배 뒤틀리고, 괴롭고 눈에서 눈물이 나고, 몸이 부서질 거 같고, 응. 그래야 실력이 늘지. 그러면서 느는 거지."


마치 연극 독백을 하시는 것 같은 말투로 말씀하셨던 당신.

그 말들은 그날부터 내 가슴에 깊이 박혔습니다.


당신은 깔끔하게 수업을 진행하는 분이었고 그 뒤로 국어수업은 재미있는 순간이 더 많았음에도,

저는 첫날 당신이 한 말만 선명하게 남아있습니다.


피눈물이 나게 해야 한다.


아마, 중학생 때 담임 선생님께 들은 말과 비슷한 이어서였을까요.






또 다른 당신은 불그스름한 큰 얼굴에 큰 눈, 우렁우렁하게 울리는 큰 목소리를 가진 분이었습니다.

그 눈 앞에 서면 거짓말을 할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어쩌면 당신의 거짓말 또한 쉽게 들통날 것 같은 그런 큰 눈이었습니다.

당신은 그 눈으로 저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진심을 담아,


공부는 죽기 살기로 하는 거다.


당시 중학교는 급식소를 짓고 있는 중이었기 때문에, 우리는 집에서 도시락을 싸왔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은 조별로 돌아가며 선생님과 밥을 먹었습니다.

교탁에 둘러서서 각자 가져온 도시락을 펼쳐 놓고, 집집마다 다른 멸치볶음과 계란말이 맛을 나눴습니다.  

당신은 돌아가면서 한 명씩 학교생활이 어떤지 가족들은 잘 지내는지 물어보다가, 제 차례가 되자 이렇게 말씀하셨죠.


"너는 어째 4반 김지수 한 명을 못 이기냐? 걔 별 거 아니야. 다음 시험에는 네가 이기는 거다?"


쓰다 보니 가슴속에 뜨거운 김치볶음이 걸려있는 것 같습니다. 지수는 전교 1등이었고 저는 그 밑 또는 어쩔 때는 밑 밑 밑에 있었거든요. 저는 마른 흰 밥을 다 씹지도 못하고 삼키면서 "네." 하고 대답합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도 저는 책을 봤습니다. 옆 학교 남자애들이 쟤 봐라, 힐끔거려도 쳐다보지 않았습니다.

집에 와서는 책상 앞을 지키고 앉아, 별 내용도 없는 교과서를 읽고 또 읽었습니다.


눈을 감고도 페이지를 넘길 수 있을 때까지. 페이지 상단에 있는 그림과, 그 밑에 있는 작은 설명까지도 눈이 감고도 보일 때까지.


어느 날 새벽 세시에 일어나 다시 중간고사 공부를 하려던 참이었어요. 알람에 맞춰 일어난 내 얼굴이 거울 속에 비치는데, 어찌나 피곤하고 지쳐 보이던지요. 저는 그 거울 속 나를 한번 쓰다듬어 주지도 못하고 세수를 하러 갔습니다.


한 시간만 더 자야지, 하고 알람을 다시 맞추다 아침까지 자 버린 날도 있습니다. 그럴 때는 스스로가 너무 한심하고 불안해서 제 뺨을 때리며 울었습니다. 정신 차려, 어쩌려고 그래. 너 이번에 진짜 공부 하나도 안 했어.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되었는데.

더 즐겁게 지냈더라면 좋았을 텐데.



저는 4반 김지수를 영영 이기지 못했고 급식소는 제가 졸업할 때 즈음에야 다 지어졌습니다.


당신과의 점심식사가 돌아올 때면 체할 것 같았습니다.

밥을 다 먹고 각자 도시락을 정리해 자리로 돌아갈 때였어요.

"00아, " 하고 부르며 그 큰 눈으로 또 말씀하셨죠.

"공부는, 원래 목숨 걸고 하는 거다. 실컷 해봐 끝까지. "


제 얼굴은 잠을 자지 못해 이미 노랗게 떠 가고 있었는데도요.



제가 당신에게 배신감이 들었던 것은, 이후 부모님을 통해 전해 듣게 된 말 때문입니다.

학부모 상담에서 부모님께 이렇게 말씀하셨다면서요.

"00이 같은 저런 애가 성적 때문에 자살을 많이 합니다. 어머님 신경 써서 지켜봐 주세요."


선생님, 저는 당신 말대로 죽기 살기로 목숨 걸고 했을 뿐인데요.







다시 차 한 잔을 따르며 떠오르는 또 다른 당신의 얼굴이 있습니다.


초등학교 3, 4학년쯤이었을까요.

기말시험을 앞두고 반에서 다 같이 총정리 문제집을 풀었습니다.

사과가 어쩌고 배가 어쩌고, 숫자를 세는 수학 문제였습니다. 문제를 다 푼 저는 문제지 옆에 엄지손톱만 한 복숭아를 그렸습니다. 미술학원에서 배운 대로 음영과 그림자도 넣어, 복숭아는 제법 진짜 복숭아처럼 올록볼록해 보였습니다.


얼굴이 기억나지 않는, 마른 체격에 안경을 꼈던 당신은 수업이 끝나고 나를 불렀어요.

"니 문제집 내놔 봐라."

"니 지금, 니는 문제 다 풀었다고 옆에 복숭아 그리고 앉아있나?"


그 이후의 기억은 블러 처리를 한 것처럼 희미합니다. 기억나는 건 제 몸이 순간 붕 떠 날아간 것과, 왁스칠을 한 나무 바닥에 제가 처박혀 있었다는 것뿐입니다.


아팠는지 당혹스러웠는지 부끄러웠는지는 생각나지 않습니다.

그 뒤로 저는 문제집에 복숭아 따위를 그리지 않게 되었습니다.



문제집 몇 권을 더 풀고 중학교에 갔고, 죽기 살기로 공부하란 말을 들으며 선생님과 도시락을 먹었고, 피눈물이 날 때까지 하란 말을 들으며 문학 지문을 풀고 수능을 쳤습니다.


좋았던 기억들, 웃었던 기억들도 분명 있었을 텐데, 좋은 기억들은 먼저 희미해지는 걸까요. 좋았던 순간들을 가장 먼저 기억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10년, 20년이 되어도 나는 당신들의 그 말만 생각이 납니다.


왜 그런 말을 했을까.

공부를 시키는 게 선생의 본분이니까.

딴 길로 안 새게, 중간에 포기하지 않게 단속시키는 게 선생 역할이니까.

세상 일은 내 맘대로 안되지만 그래도 공부는 하면, 되는 거니까.

죽을 것 같이 피눈물 나게 하면 그래도 성적은 오를 테니까.

그걸 안 하고 있는 학생이 답답하게 느껴졌을까요.








날이 추워지고 수능날이 다가오면 어김없이 수능 꿈을 꿉니다.

내일이 수능인데 수학 공부를 하나도 안 해놓은 나를 봅니다.

어째서 내일이 시험인데 공부를 하나도 안 해놓은 거지?

당황해서 책상 밑 교과서며 문제지를 다 꺼내고

망했다, 어떡하지, 큰일났다 하고 부산을 떱니다.

세상이 꺼져버릴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이상하다, 나는 이 시험을 쳤던 것 같은데, 대학에도 갔던 것 같은데,

나는 왜 아직 이 교실에 앉아있나를 생각합니다.

그러면 꿈에서 빠져나올 수 있습니다.

꿈에서 깨어 안도의 한숨을 쉽니다. 아, 다행이다.

나는 예전에 시험을 다 쳤구나. 정말 다행이다.


어째서 세월이 10년 넘게 훌쩍 지나도 번번이 그 교실로 돌아가게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나는 그 교실에 계속 갇혀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며칠 전 사랑하는 사람에게 이런 모진 말을 했습니다.


"왜 원하기만 하면서 노력을 안 해? 그러면서 그걸 원하다고 말할 수 있어?"

"세상에 그냥 되는 게 어딨어. 할 거면 죽기 살기로 해야지. 아님 아예 하지 말던가."


그걸 들은 그의 표정은 코너에 몰린 강아지 같습니다. 주눅 든 그의 얼굴을 보면서 나는 말을 하면서도 내 말에 상처를 받습니다. 찰싹찰싹, 내가 내 뺨을 때리는 것 같습니다.


그 말은 사실 오랫동안 내가 나에게 해 온 말이기도 했습니다.


내가 말해놓고도 놀라고 당황스러워, 그 모진 말들은 대체 어디서 왔을까 생각했어요.


나는 여전히 그 추운 교실에 교복 입고 앉아서 네네, 하고 앉아있구나.

당신들의 말을 받아쓰면서, 노랗게 질린 얼굴로.

고향을 떠나고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을 하고 몇 번씩 사는 장소를 옮겨 다니며

수많은 생의 대소사를 넘어왔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나는 여전히 그 교실에 있었을 뿐이구나.

계속 시험, 쳤구나.

죽기 살기로 안 하는 내 뺨을 때리면서 살았구나.


원한다면서 왜 노력을 안 해?

죽기 살기로 해야지, 피눈물 나게 해야지, 몸이 부서질 때까지 해야지.


그 유리조각 같은 말들에 아파하다 그걸 기어이 믿게 되어 버려서는

자기도 아파하면서 그 아픈 말들을 남에게 비수처럼 꽂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젠 진짜로 교복을 벗고 졸업을 하고 싶어요.


드르륵, 교실 문을 닫고 나가 학교 밖으로 한 걸음 한 걸음 걸어 나가 봅니다.

다시 그 교실로 몇 번이고 소환이 되더라도,

다시 수능 꿈을 꾸게 되더라도,  

나는 제 발로 걸어 나올 겁니다.


그 새벽 세 시의 거울 안에 갇혀 있는 아이를 데리고 나와

잘 재우고 잘 먹일 겁니다.

그리고 내가 그때 필요로 했던 어른의 모습으로,

내가 무엇보다 듣고 싶어했던 말을 해줄 거예요.



목숨 걸고 해야 하는 일은 세상에 없어.

몸이 부서지게 하지 않아도 괜찮아.

 

피눈물 나게 할 필요 없어.

그렇게 아등바등 달려가지 않아도 괜찮아.


즐겁게 살아도 돼.

잘 자고 잘 먹고 잘 놀고

웃고 떠들고 기뻐해도 돼.


그래도 안 죽어.

망하지 않아.

정말이야.


......


괜찮아.


네 잘못이 아니야.  

너는 잘못이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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