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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돌 Dec 16. 2019

시키는 대로 하는 자판기같은 인생

N잡 꿈나무, 회사 생활에 임하는 자세 1

지난 주 나코리님의 소개로 <나는 사람책을 읽기로 했다> 모임에 '사람책'으로 참여해 발표를 하고 왔다. '멀티 페르소나'라는 매력적인 주제에 대해 세 명의 연사가 발표를 했는데, 나는 <N개의 나를 나눠 담는 법 - 딴짓, N잡, 그리고 덕질의 힘>이라는 제목으로 15분간 내 이야기를 나눴다.


아니 어쩌려고 엄청난 제목을 질렀나. 한 달 전 생각없이  질러놓은 제목의 무게에 눌려 끙끙거리며 고민했다. 사실 나를 가장 괴롭힌 건 이런 생각들이었다.


내가 뭐라고.

내가 뭐 대단한 글을 쓴다고.

책 하나 낸 것 뿐인데, 딱히 베스트셀러가 된 것도 아닌데,

내가 남들 앞에서 딴짓이니 N잡 얘기를 할 수 있는 걸까.


'내가 뭐라고'라는 자기비하의 감정이 스멀스멀 올라왔지만, 그 감정들을 엽떡과 감자칩과 맥주의 힘으로 다스렸다.  대단하게 성공한 사람만이 사람책이 될 수 있는 건 아니지.  그냥 나는 내 관점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편하게 이야기하면 된다고 생각하며 부담감을 내려놓았다.


직업이라는 건 남이 불러주는 이름이기도 하지만, 스스로 불러주는 이름이기도 하다. 당신은 작가야, 라고 누가 불러주는 것 만큼이나 나는 쓰는 사람이니까, 라고 스스로 자신을 정의하는 힘이 필요하다. 요즘같은 자기PR의 시대, 크리에이터의 시대에는 자기가 자신을 믿고 밀어주지 않으면 직업을 만들어갈 수 없다.


이다혜 작가님의 <출근길의 주문>을 읽으며 용기를 냈다.


나대라.
쑥스러움, 부끄러움, 낯가림이 심해서 나댈 수 없다면 세상은 당신의 존재를 알지도 못한다.


발표를 준비하면서 회사 밖의 나를 찾기 위해 고민했던 지난 삼 년동안의 일들을 정리할 수 있었다. 일년의 무급휴직, 그 이야기를 독립출판한 일, 그리고 정식 출판에 이어지는 과정까지. 그날 발표 내용 중, 나의 '자판기론'에 대해 공유해보고 싶다.







커피 자판기 같은 회사 생활


휴직 전, 나는 회사에서의 내가 꼭 커피 자판기 같다고 생각했다.

위에서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해야 하는 존재.

까라면 까야하는 존재. 




회사생활은 남이 시키는 커피를 시킨 대로 내려주는 과정 같았다. 상사가 500원 넣고 밀크커피 줘, 하면 밀크커피 내려줘야 하고. 임원이 300원 넣고 율무차 줘, 하면 율무차를 내려줘야 했다. 간혹 쓸데없는 의욕이 뻗쳐 상무님 오늘은 모카커피 어떠세요,라고 역제안을 해 보기도 했지만 이내 300원이 딸랑, 하고 들어오면 "네, 다음 율무차~ " 하면서 영혼없는 율무차를 내렸다. 기계적이고 반복적인 업무, 조금의 주체성을 발휘할 여지가 없는 몇 년을 보내자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죽을 만큼 힘들면 회사 그만두지 그래가 안 되는 이유>라는 가슴을 후벼 파는 제목의 만화가 있다. (부제는 무려, "그 일, 당신의 목숨보다 소중한가요?"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계속 열심히 해서 잘되는 사람과 열심히 하다 뚝 끊어져 버리는 사람의 차이를 만드는 요소로 크게 두 가지를 말한다.


1) 열심히 하는 일이 자신이 정한 것인가?

2) 열심히 한 일의 성과가 알기 쉬운가?


사람은 일이 단순히 많다는 이유만으로 불행해지진 않는다. 내가 정하지 않은 일, 열심히 해도 결과의 차이가 없거나 적합한 성과/보상/뿌듯함이 주어지지 않는 일 앞에서 사람은 한없이 무력해지고, 무기력해진다. 나 역시 그랬다. 나름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고작 나는 자판기 같은 회사원이 되었구나. 그리고 앞으로도 이런 생활을 계속해야 하는구나, 라는 좌절은 무척 컸다.




자판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휴직을 선택하다


답답함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을 때, 나는 회사에 새로 생긴 일 년의 무급휴직 제도를 사용하기로 결심했다. 어떻게든 이 자판기 생활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긴 시간을 들여서라도 직업을 바꾸고 싶었고 여차하면 다시 학교로 돌아가 새로 학위를 딸 생각까지 했다.


그런데 막상 직업을 바꿔보려 해도, 또는 이직 원서를 내 보려 해도 내가 어떤 종류의 일을 하고 싶은지를 도통 알 수 없었다. 하다못해 여행을 떠나려고 해도 가고 싶은 행선지가 있어야 티켓을 끊을 텐데, 놀랍게도 나는 하고 싶은 게 없었다. 그리고 새로운 뭔가에 도전할 에너지도 없었다. 나는 '회사가 싫다' '이건 아무래도 아닌 것 같다'라는 강렬한 감정 외에는 어떤 선호나, 욕망이 없는 사람 같았다. 그렇지만 또다시 남들이 가는 방향으로, 원치도 않은 채  열심히 달려가는 건 지긋지긋했다.


처음으로 나 자신에게 물었다.


너는, 다른 사람 말고 너는, 어디로 가고 싶은데?


그리고 처음으로, 쭈뼛쭈뼛 대답을 못하는 나에게 충분한 시간을 주었다.


즉, 돈 안 되는 일만 했다는 것이다.


그동안 해 보고 싶었던 일, 그런데 현실적으로 돈 버는 데에 크게 도움은 안 되는 일들만 골라서 했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다녀왔고, 그 뒤로 스페인과 동유럽을 오래 여행했다. 요가, 명상, 요리를 배웠고 도서관에서 오래 시간을 보냈으며 자원활동과 여러 소모임을 통해 회사 밖의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https://brunch.co.kr/@freesong/21

https://brunch.co.kr/@freesong/24


그렇게 반년이 지나자 조금씩 다시 의욕이 생겼다. 나는 생각보다 하고 싶은 게 많은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이런이런 일을 해 보고 싶어 하는구나. 이런 방식으로 일을 진행하는 것을 좋아하는구나. 회사 밖의 일 년을 통해 나 자신의 선호와 욕망에 대한 어렴풋한 윤곽을 그릴 수 있었다.


이젠 내가 어떤 걸 좋아하는지, 뭘 하고 싶은지도 알겠고 체력도 회복이 되었으니, 다시 회사로 돌아가면 잘 다닐 수 있지 않을까? 어쩌면 이제는 다를지도 몰라, 라는 그릇된 기대를 가지고, 나는 다시 이전의 회사에 복직을 해 보기로 다.



- 2화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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