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에 관한 에피소드가 두 개가 있는데, 하나는 당시 6만 원 정도에 한국에서 부친 택배를 여기에서 80불의 세금을 내고 찾아온 일이다.
잘못된 세금일 수 있어서 비디오를 찍으며 박스를 열고 물건들을 확인했는데, 맨 밑에 내 반지가 들어있었다.
너무나 낡은 14K, 분명히 80불이 훨씬 안되는 반지였다.
남편이 비행기 타고 올 때 손가락에 끼고 왔으면 됐을 걸 몰라서 그런 실수를 했다.
나머지 하나는 택배 하나가 한국으로 돌아간 일이다.
한국 우체국에서 캐나다로 택배를 보내면 Canada Post가 받아서 나에게 배달된다.
Canada Post 사이트에 내가 직접 조회하지 않으면 언제 오는지 알 수 없다.
한국은 택배가 오기 전에 문자도 오고 기사님께서 친절하게 전화도 주셨지만, 여긴 배달에 있어선 굉장히 불편하고 친절도 기대하기 힘들다.
부재 시 작은 크기의 물건은 우편함에 넣어두기도 하지만, 큰 것은 문고리에 작은 종이(delivery notice)를 남기고 간다.
언제 어디로 와서 찾아가라는 내용이 적혀있다.
내가 나의 신분증과 이 종이를 가지고 가거나, 내가 종이에 남편의 이름을 쓰고 남편이 신분증(나와 동일한 주소여야 함)을 가지고 가면 대리 수령할 수 있다.
이때 일정 기간 찾아가지 않는 물건은 발신인에게 돌아간다.
남편이 한국을 떠나기 전 보낸 여러 개의 박스들을 잘 받고 있었는데, 한 개가 다시 한국으로 돌아간다는 내용이 추적 사항에 떴다.
내가 체크하지 않았으면 나도 모르게 돌아가고 있었을 택배였다.
이사를 나갔지만, 문고리에 notice를 남겨둘 줄 알고 하루에 한 번씩 그 집을 확인하고, 우체국도 확인했는데 물건을 배송을 담당하던 기사가 그렇게 처리해버렸다.
택배가 아직 핼리팩스 선착장에 있으니 내가 가져가게 하면 될 텐데 기사가 이미 그렇게 처리했으니 한국으로 돌아가야 맞는다는 황당한 답을 주었다.
Canada Post 핼리팩스 제일 큰 우체국, 내가 항상 가던 작은 우체국, 페이스북, 전화 통화 등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은 다 해봤는데 도와줄 수 없다고 했다.
비싼 물건들도 아니었고, 당장 못 받는 거야 괜찮았다.
그 물건이 한국에 도착했을 때 받은 사람이 비용을 내야 하는데, 다른 세입자가 그 아파트에 살고 있으니 그 사람에게 돈을 내달라고 하고 우리가 송금해 줘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그 사람에게 다시 우리에게 부쳐달라고 해야 하는.
부탁도 부탁이지만, 한국으로 돌아가는 요금과 다시 캐나다로 부치는 요금이 아까워서 이렇게 일처리를 한 우체국 기사를 만나서 취소해달라고 사정해보기로 했다.
당시 영주권이 나오면 3년 만에 한국 가려고 개인 휴가 가능한 날을 2년째 모으고 있었는데, 이 기사를 만나기로 한 날 처음으로 휴가를 내었다.
우체국을 통해서 알아낸 건 그 사람의 이름뿐, 얼굴도 전화번호도 우리 동네를 지나가는 시간도 받을 수 없었다.
이미 이사 나온 빈 집 앞에 주차하고 하염없이 그 기사를 기다렸다.
차에서 점심도 먹고 차도 마시고, 눈이 빠지게 길만 살피고 있었는데, 우체국 트럭이 드디어 주차를 한다.
한바탕 퍼부어 주어야 하나 어쩌나 오만가지 생각을 하고 내렸는데, 그 기사 아저씨 너무나 사람 좋은 인상으로 활짝 웃는다.
기사 : 너 이 집 사니? 내가 너한테 줄 선물이 있어. 자 너의 택배!
하면서 다음번 택배를 준다.
나 : 네가 혹시 전에 내 택배 하나 돌려보냈어?
기사 : 응, 아무도 살고 있지 않길래.
나 : 사람이 없으면 그냥 delivery notice 남겨서 내가 기한 내에 찾아가게 하지 왜 돌려보냈어? 남편이 보낸 건데 이미 캐나다에 와버려서 한국에 그 택배를 받을 사람이 없어.
기사 : 누군가가 notice가져가서 네 택배를 찾아가면 어떻게 해? 그래서 내가 돌려보냈지.
만약 다음번 세입자가 이 notice를 가지고 찾으려 한다 하더라도, 내가 허락한 적이 없으니 이 택배는 찾아갈 수가 없는데 이 기사는 틀린 말을 하고 있었다.
나 : 내 생각 해서 그렇게 해준 건 고마운데, 네가 돌려보낸 거 다시 찾을 수 있게 도와줘, 아직 핼리팩스에 있대.
기사 : 나도 어쩔 수 없어. 내가 이렇게 처리한 이상 이건 다시 돌아가는 게 맞아.
차로 몇 분 거리에 있는 택배를 어떻게든, 다시 돌아오게 해주거나, 내가 가서 찾을 수 있게 도와주길 바랐는데, 끝까지 안된다고 했다.
결국 한 달 반에 걸쳐서 한국으로 돌아가서 다시 한 달 반이 지나 우리가 살고 있는 아파트로 배달되었다.
다행히 한국에 살던 다음 세입자와 인사라도 나눈 사이여서 부탁했지, 그렇지 않았더라면 한국에서 분실될뻔한 택배였다.
배달의 천국, 한국이 정말 그리웠던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