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도 못 말리는 그녀의 환불에는 끝이 없다.
"12일까지만 다니고 환불하면 3분의 2를 돌려준데. 엄마 나 환불할까?"
또 시작이다. 삼반수를 시작하고 들어간 대치동 학원이 맘에 들지 않다는 이유이다. 자신의 실력보다 너무 높은 반에 들어갔는지, 문과인데도 수학선생님이 이걸 맞춰야 의대에 간다는 이상한 소리를 하며 주야장천 킬러문항만 풀려대는데 본인은 하나도 이해를 못 하겠고, 한 문제도 못 풀겠다고 한다.
작년 수능 킬러문항을 없앤다고 했을 때 울 아이는 환호했다. 킬러문항은 원래 풀지 않고 포기한 상태에서 준킬러를 얼마나 맞추느냐에 따라 등급이 결정되는 상황이었다. 9월 모의고사에서 킬러문항이 없어지자 준킬러를 다 맞추어 1개를 틀리고 수학 1등급 초반이 나오는 기염을 보여줬다. 물론 동점자가 무지 많았지만 말아다.
정작 수능에서는 변별력을 우려해 킬러는 없어졌지만 준킬러를 다 꼬아 놓아서 당황한 아이가 준킬러문제를 많이 틀리는 바람에 수능에서 원하는 점수가 나오지 않았다.
'킬러문항까지 손을 댈 수 있을 정도가 돼야 준킬러가 꼬아 나오든 말든 성적이 잘 나오지 않겠니? 맨날 똑같은 문제만 풀면 실력이 안 늘지 한 달이라도 제대로 다녀봐.'
어제오늘 이틀째 똑같은 소리를 하다 지쳐 결국은 네 맘대로 해라. 언제 네가 내 말 들었냐로 끝나는
똑같은 패턴
그녀의 환불의 역사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깊다.
영어학원을 등록하면 혼자 공부할 수 있다고 환불해 가지고 오고, 국어학원을 등록하면 선생이 못 가르친다고, 방학 때 탐구과목이라도 들으라면 누가 사회과목을 학원을 다니냐고 환불해 왔었다. 고교시절 내내 수학학원만 바꾸지 않고 제대로 다니고 다른 과목은 한두 번 다니다 매번 환불소동이 벌어졌다.
지인과 이야기하다가 오죽하면 매번 환불해 오는 내 딸이 나은지 학원은 꼬박 가서 앉아있어 학원비가 엄청나가지만 성적은 오르지 않는 지인의 아이가 나은지 토론을 할 정도였다.
고등 내내 아주 저렴했던 수학학원 말고는 든 돈이 없어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를 지경이었다.
상황이 이러다 보니 우리 부부는 아이입시가 4년이 걸릴 것을 눈치채고, 더 이상 학원을 다니라 강요하지 말고 차라리 돈을 모아 재수할 때 보태주자 암묵적 합의를 하였다. 그리고 그 슬픈 예감은 여지없이 틀리지 않았다.
삼반수까지 할지는 몰랐지만 말이다.
현역시절 수능을 치르고 폭망 한 성적에 재수를 결정했으나, 부모 마음에 어디든 붙어 놓고 하는 것이 맘이 놓여 정시로 붙은 대학을 아이 몰래 등록하였다. 물론 아이는 그 학교에 다닐 생각이 없으니 등록하지 말라고 했었으나 워낙 소심하고 안정제일 주의인 나는 그래도 등록해 놓고 재수를 해라. 사람일 모르지 않느냐며 설득하다 포기하고 몰래 등록하는 사태까지 간 것이다.
어느 날 계좌에 등록금이 환불됐다는 문자가 왔다. 이상하다 아이한테 등록했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는데 누가 환불했지?
범인은 그녀였다. 알고 보니 신입생을 환영한다. 무슨 동아리를 가입하라는 문자를 받은 아이가 엄마가 저지른 만행을 알고 홈페이지에 들어가 말도 없이 환불을 하고 나한테도 아무 말 안 하고 있었다고 한다.
재수 시절도 환불의 역사는 계속된다. 유명 재수종합학원에 들어간 뒤 잘 다니다가 6월 모의고사 후 성적이 본인생각만큼 안 올랐다는 이유로 친구가 다니는 스파르타 학원으로 옮기겠다고 환불을 해 가지고 왔다. 하루이틀 가더니 기존에 다니던 학원보다 수업 수준이 떨어지고 너무 옥죈다는 이유로 스파르타 학원을 다시 환불해 가지고 왔고, 기존학원에 빌다시피 하여 며칠 만에 겨우겨우 원래대로 복귀할 수 있었다.
삼반수를 시작한 올해도 마찬가지이다. 일 학기를 다니고 대학교 방학이 시작되자 독학재수학원에 일주일 가더니 도저히 혼자 해서는 불안해서 안 되겠다고 제대로 된 반수반에 가야겠다며 환불을 해 왔다.
그래서 제대로 된 반수반에 갔더니 이제는 너무 수준이 높아 본인이 들러리라며 환불을 할까 물어 온다.
도대체 그녀는 나의 의견을 왜 확인하는지 모르겠다. 한 번도 엄마의 의견대로 따라 준 적이 없잖아. 실컷 물어보고 본인 맘대로 할 것이면서 오늘도 딸아이는 내게 묻는다.
"엄마 나 환불해도 돼?"
"니 맘대로 해!!"
결국 이소리를 듣고 싶은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