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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엔나프라하 Sep 03. 2024

1화. 명동

명동만 28년째 근무

출근길


복잡한 강남역에서 버스를 타면 곧 한남대교를 건너 기업체 회장님들과  연예인,  BTS가 산다는 나인원 한남을 왼쪽으로 한남더힐을 오른쪽으로 하고 남산 1호 터널이 지나고 곧 명동성당 국가인권위역에 도착하면 사람들이 우르르 내리기 시작한다.


횡단보도를 건너 명동성당 앞을 지나노라면 부지런한 관광객들은 벌써부터 들뜬 표정으로 돌아다니고, 화장품 가게에서는 문을 열고 가판대를 문 앞으로 옮기고, 출근하는 자들은 저마다 손에 커피 한잔을 사들고 바쁜 걸음을 움직인다.


명동의 아침은 저마다 부지런한 출근자들, 관광객들, 그들을 맞이하는 상점들로 분주하다.


96년에 입사해 28년째 맞는 명동의 아침이지만 매일 오늘처럼 감수성이 살아나지는 않는다.

그동안 20여 년간은 강북에서 지하철로만 다녔으니 졸면서 서있다가 갑자기 눈이 떠지면 을지로 3가 자동으로 내려 갈아타고 정신을 차리면 어느새 을지로 입구에서 내리는 그야말로 출근 기계였다. 주로 지하로만 다니면 영혼 없이 몸의 감각만으로 내리고 타고 할 수 있다. 그렇게 지각 한번 없이 이십여 년을 영혼 없는 출근자로 살았다.


강남역으로 최근 이사 오고 지하철 출퇴근이 생각보다 불편하여 버스를 타기 시작했다.

을지로 입구에서 강남역까지 한 번에 오면 되지만 2호선 순환선은 너무 많은 시간을 소요하여 버스를 타기 시작한 것이다.


버스를 타기 시작하니 많은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요즘같이 비가 많이 오는 장마철엔 매일 아침저녁으로 지나가면서 한강의 수위를 살펴보기도 하고, 한남동을 지날 땐 유명인들의 자택을 보며 저기 살면 행복할까? 같은 같잖은 생각들을 한다.


초콜릿 가게에서 아침에만 싸게 파는 카푸치노 한잔을 사서 손에 들고 명동 거리를 걸으며 출근을 재촉한다.


갑자기  IMF전의 명동거리가 생각난다.

지금의 눈스퀘어는 코스모스 백화점이었고, 롯데 영플라자는 미도파 백화점, 에비뉴엘은 한일은행이었지.

상업은행 건물은 리모델링을 거쳐  K파이낸스센터로 거듭나고, 그 수 많던 을지로 입구에 있던 은행과 증권사들은 모두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코로나 때는 어떤가? 이 명동거리는 텅텅 빈 유령도시가 되어 사람하나 지나다니지 않고 겨우 출근한 자들의 점심 장사로만 버티던 수많은 음식점들은 결국 문을 닫고 말았다.


이제 다시 명동은 관광객들로 붐비기 시작한다.


아침부터 부지런히 캐리어를 끌고 다니는 사람들은 애교이고, 저녁에 명동에 오면 붐비는 외국 관광객들로 한국사람 찾기가 더 어렵고 한국말 듣기가 더 힘들다.


예전에는 중국단체관광객들과 일본인들이 주였다면, 이제는 어느 나라 사람인지 분간이 안 될 정도로 각양각색의 인종들이 몰려든다.


IMF, 코로나 등을 지내온 명동의 흥망성쇠를 생각하다가 그 속에 줄곧 내가 있었음을 상기해 낸다.


오늘은 28년째 꿋꿋이 지켜온 명동의 직장인인 나를 생각해 본다.


너의 끈기와 인내에 박수를!


너의 수고와 노고에 찬사를!


아무도 칭찬해 주지 않는 나에게 스스로 잘 버텼다고 그간 고생했다고 말해주고 싶다.


이 모든 상념과 감수성은 다 버스로 출근했기 때문이다.


470번 버스에 감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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