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벌과 배금주의에 관하여 (2)

by 에밀리

저는 학부 시절부터 최근까지, 오랜 기간 강사로 일해 왔습니다. 강사 시장에서는 학벌이 유리하게 작용하는 측면이 분명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학벌이 없으면 끝이라는 법은 없습니다. 없으면 없는 대로 자신을 증명하면 되고, 있다면 감사히 여기면 될 일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학벌이 높은 사람이 강사 일을 한다고 하면 ‘불쌍하다’거나 ‘인생이 실패했다’는 시선이 따라붙습니다. 실제로 제가 전 직장에서 상사로부터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너는 대학교에 진학한 이후, 노력이란 걸 전혀 하지 않았을 거다. 그 결과 제대로 된 기업에 취직을 못하고 강사 일이나 하는 '인생 실패자'가 된 것이다.”


왜 강사라는 직업을 ‘실패’로 규정짓는 걸까요?


저는 강사로 일하며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했고, 영어라는 언어를 가르치며 큰 보람을 느꼈습니다. 특히 세상의 때가 묻지 않은 아이들을 가르칠 때면, 그 천진난만함 속에서 오히려 제가 치유받는 기분이 들곤 했습니다. 이 아이들이 훗날 유년 시절을 떠올리며 “참 좋은 선생님이었다”라고 기억할 수 있도록, 저는 몸이 부서져라 최선을 다했습니다.


단언컨대, 그 전 상사의 발언은 대단히 실례되는 것이며, 강사라는 직업에 소명의식을 가지고 일하는 모든 분들에 대한 모욕입니다.


또한 학벌과 관계없이, 단지 자신이 높은 연봉을 받는다는 이유로 타인을 깔보는 태도 역시 옳지 않습니다. 학벌주의를 비판하겠다면 그 문제에 집중해야지, 엉뚱하게 배금주의로 논점을 돌려서는 곤란합니다.


배금주의의 가장 큰 문제는, 세상에는 언제나 ‘나보다 더 많이 버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사실입니다. 돈으로 타인을 평가하고 무시하는 사람은, 결국 자신 또한 돈으로 평가받을 준비가 된 사람일 뿐입니다.


사회생활을 하며 그야말로 다양한 인간군상을 마주해 왔습니다. 그런데 “K대를 나와서 영어 강사라니, 인생 실패자다”라 말하며, “학벌은 아무 의미가 없구나!”라면서 타인의 노력과 소명의식을 평가절하하는 사람들은, 이상하게도 학벌이 그리 좋지 않은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볼 때 저는 그저 안타까울 뿐입니다. 저는 직업에 귀천이 없으며, 급여의 액수로 인간을 판단해서도 안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때때로 그들의 말은 타인을 향한 비난이기보다는, 자신의 콤플렉스가 드러난 자화상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마지막으로, 마광수 선생의 시 한 구절로 글을 맺고자 합니다.
‘못생김’을 ‘학벌’로 바꾸어 읽어보면, 참으로 많은 생각이 들 것입니다.



「나도 못생겼지만」


못생긴 여자가 여권 운동하는 것을 보면
측은한 마음이 생긴다.
그 여자가 남자에 대해 적개심을 표시할 땐
더 측은한 마음이 생긴다.


못생긴 남자가 윤리, 도덕을 부르짖으며
퇴폐문화 척결운동 하는 것을 보면
측은한 마음이 생긴다.
그 남자가 성(性) 자체에 대해 적개심을 표시할 땐
더 측은한 마음이 생긴다.


못생긴 여자들과 못생긴 남자들을 한데 모아
자기네들끼리 남녀평등하고 도덕 재무장하고
고상한 정신적 사랑만 하고 퇴폐문화 없애고
야한 여자, 야한 남자에 대해 실컷 성토하게 하면—


그것 참 가관일 거야.
그것 참 재미있을 거야.
그것 참 슬픈 풍경일 거야.


—마광수, 『일평생 연애주의』 (문학세계사,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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