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에 관하여

by 에밀리


2016년, ‘여자라서 죽었다’ 시위가 들불처럼 번지던 시기, 저는 대학에서 사회학을 전공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제 주변은 언제나 남성들이 대부분이었고, 그들이 “너 페미니스트는 아니지?”라고 묻는 순간마다, 저는 스스로를 검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사회학 과목에서 좋은 성적을 받았고, 젠더·페미니즘·가부장제 문제는 언제나 제 지적 호기심을 자극했습니다.


다만 저는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간주하지는 않습니다. 페미니즘에 대해 자칭할 만큼 충분히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만 사회학을 심화 전공하면서, 몇몇 강의와 텍스트를 통해 사유의 폭을 조금이나마 확장해 왔을 뿐입니다.


근래 들어 페미니즘을 TERF와 동일시하거나, ‘위험한 사상’으로 낙인찍는 분들이 많아진 것 같습니다.

그러나 페미니즘은 단일한 이념이 아니라, 다양한 분파와 층위를 가진 사상이며, TERF는 그 일부에 불과합니다.


이를 실감한 경험이 있습니다. 과거 홍세화 선생 등이 주최한 ‘대안세계화 포럼’에서 한 페미니스트의 강연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는 한 아들의 어머니로서, 연애 시장에서 남성들이 겪는 불공정성, 그리고 이른바 ‘맨박스(Man Box)’ 문제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맨박스란 가부장제 사회가 남성에게 강요하는 일련의 규범적 남성성을 뜻합니다. 예컨대 ‘남자는 평생 세 번만 울어야 한다’, ‘데이트 비용은 남성이 부담해야 한다’는 통념 등이 그 예입니다. 그는 이러한 맨박스가 남성과 여성 모두의 행동을 제약한다며, 그 틀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그 강연을 들은 뒤, 저는 실제로 감화되어, 남자친구와 데이트할 때 오히려 제가 비용을 더 많이 부담했습니다.


이렇듯 페미니즘은 단일한 정의로 환원될 수 없는 사상입니다. 자유주의 페미니스트도, 사회주의·공산주의 페미니스트도 있으며, 최근에는 ‘립스틱 페미니즘’처럼 새로운 흐름도 등장했습니다. 그러나 그 근본에는 언제나 소수자와의 연대라는 가치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제 페미니즘이 더 이상 오해나 낙인의 대상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 본래의 의미와 존엄이 사회 속에서 제대로 이해받고, 서로의 다름을 존중하는 대화로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화, 목, 토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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