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본주의
인문학은 결국 인본주의에서 출발합니다. 인간을 사유의 중심에 두고 이해하려는 마음, 그리고 사랑하려는 태도가 그 기반이죠. 인간과 사회를 단순한 과학적 팩트로 환원하는 대신, 그 안의 감정과 맥락을 읽어내려는 따뜻한 학문입니다.
저는 사회학도입니다. 저희 학교는 특이하게 사회학 전공자에게 인문학사를 수여하는데, 그 의미를 예전엔 잘 몰랐어요. 인문학·사회과학·인간을 깊이 성찰하게 된 것은 대학보다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후였습니다. 현장에서 마주한 현실은 고전이론보다 훨씬 복잡했고, 저는 그때부터 배워온 이론과 개념들을 제 경험에 반추하기 시작했습니다. 책 속 문장이 삶 속에서 비로소 살아 움직이고, 제가 익힌 이론들은 그제야 제 안에서 뜨겁게 고동치기 시작했습니다.
살다 보면, 인간을 차별하고 차이를 만들어내는 수많은 기제가 사회 곳곳에 존재한다는 것을 절감하게 됩니다. 폭언, 폭력, 성희롱·성폭행 또한 예외가 아니고요. 문제는 이런 행위를 일삼는 이들이 종종 의사결정권자의 위치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저는 여러 조직 문화를 경험했습니다. 회사, 병원, 여초 조직, 남초 조직… 다양하게 겪어봤지만, 정말로 “아, 이건 내가 죽겠다” 싶었던 곳은 한 남초 회사였습니다.
거기는 언어폭력과 성희롱이 일상화된 공간이었고, 제가 “힘들다, 폭언과 성희롱, 성적 대상화를 멈춰달라”고 요청하자 오히려 저를 예민한 여성으로 몰며 힐난하더군요.
인문학도로서 늘 인간을 이해하고 사랑하려 노력했던 저는, 그 경험 이후 인간 자체에 대한 극도의 피로감과 절망을 느꼈습니다. 인사팀과의 면담은 조직이 변화할 가능성이 거의 없음을 확인하는 과정이었고, 결국 저는 그 곳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깨달았습니다.
조직은 변하지 않는다. 변화할 수 있는 건 오직 개인이다.
조직이 개인을 지속적으로 고통스럽게 하고, 그로 인해 극단적인 충동까지 든다면, 삶을 지키기 위해 떠나는 것이 맞습니다. 칸트를 인용하자면, 자기 자신도 결국 사람일진대, 사람은 그 자체로 소중한 '목적'이고, 직장은 어디까지나 밥벌이의 '수단'일 뿐이니까요.
제 브런치에 존 롤스를 인용해 쓴 ‘직업 선택의 자유’ 글이 있습니다. 그 글과 연결되는 이야기이니, 함께 보면 더 좋을 것 같아요. (참고자료: https://brunch.co.kr/@freevaccine/30)
아, 마지막으로, 아래에 첨부한 카톡 대화는 당시 동료와 나눴던 대화 내역을 재구성한 것입니다. 참조용으로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