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이함'이라는 낙인

동질적인 한국 사회와 푸코의 규율권력

by 에밀리
푸코.png 미셸 푸코, "감시와 처벌"


‘당신은 특이하네요.’라는 말을 들으면 어떤 기분이 드는가. 한국 사회에서 이 표현은 칭찬보다 낙인에 가깝게 작동한다. 우리는 오랜 시간 ‘동질성’을 미덕으로 여겨왔고, 개성이나 차이를 드러내는 일은 종종 조심스러운 행동으로 간주된다. 교복 착용의 엄격한 통일성, 사회적 이벤트에 적용되는 TPO의 규범성 등은 모두 푸코가 말한 ‘규율권력’의 일상적 형태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환경에서는 정상성 규범에 자신을 온전히 맞추지 못한 사람이 곧 ‘특이한 존재’로 분류된다. 그 결과 개인은 자기검열을 내면화하고, 사회가 요구하는 ‘무난한 구성원’을 스스로 재생산하게 된다.


나 역시 평생 ‘특이하다’는 말을 들으며 살아왔다. 그 말은 종종 나를 불편하게 했다. 한국 사회에서 ‘특이함’은 존중이 아니라, 대개 ‘조직에 잘 맞지 않는 사람’이라는 평가로 미끄러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개인적 특성을 과시하며 살아온 적이 없다. 오히려 공동체 안에서 조화를 이루기 위해 애쓰는 편이었다.


사회학을 심화전공까지 했지만, 스스로를 전문가라고 부르지 않았다. 나는 그저 계속 배우고, 글을 쓰며 사유를 이어가는 사람일 뿐이다. 누군가의 생각을 단정적으로 틀렸다고 말하지 않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사람마다 상식의 지평이 다르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특이하다’, ‘비범하다’는 말을 듣는다. 이전 직장에서 친하게 지내던 분들은 종종 “너는 정말 똑똑하고 비범한 사람”이라고 말해주었다. 그 말이 진심 어린 칭찬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마음은 한없이 복잡했다. 나는 그저 평범한 한 시민으로 살고 싶을 뿐인데, 사회가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나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향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특별해지고 싶은 마음도 없고, 지식을 과시하고 싶은 마음은 더더욱 없다. 성실하게 배우고, 사유하고, 살아가고자 할 뿐이다. 하지만 ‘특이하다’는 말이 따라붙을 때마다, 내가 원하는 나의 모습과 사회가 나를 규정하는 틀 사이의 간격이 점점 벌어지는 듯해 때때로 마음이 무거워진다.

화, 목, 토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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