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선, 반칙과 특권, 평등의 위선
비판적 지식인 진중권 교수는 한국 사회의 진보 좌파가 어떻게 스스로 몰락해 왔는지, 그 과정을 ‘독선, 반칙과 특권, 평등의 위선’이라는 키워드로 설명합니다. 이 책의 출간 배경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임명을 둘러싼 일련의 사건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진 교수는 그 사건이야말로 진보가 스스로의 신념을 잃어가는 모습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준다고 말합니다.
아래에는 제가 인상적으로 읽은 몇 가지 대목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2017년 백악관 대변인 숀 스파이서는 트럼프 대통령 취임식 참석 인원이 축소되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항공사진과 수치 모두 그의 발언이 사실이 아님을 드러냈습니다. 기자가 추궁하자 그는 “대안적 사실”이라고 답변했지요.
하지만 ‘대안적 사실’은 사실이 아닙니다. 거짓이 반만 참을 포함한다 해도, 그것은 여전히 거짓입니다.
진 교수는 이 개념이 조국 교수 가족 논란에서도 재현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는 대학 내부에서 확인한 사실과 완전히 다른 ‘대안적 사실’이 특정 진영 내부에서 조직적으로 생산되는 과정을 목도했다고 적습니다. “표창장은 진짜이고, 총장은 거짓말을 했으며, 그 배후에는 검찰과 보수세력이 있다”는 식의 서사가 진영 전체에 공유되며 확신으로 굳어졌다는 것이죠.
정치는 점점 기업처럼 행동하고, 정당은 유권자의 니즈를 ‘매출(득표)’로 환산하려 합니다. 문제는 정당과 기업의 목적이 전혀 다르다는 데 있습니다. 기업이 사익을 추구한다면, 정당의 목적은 공공선이어야 합니다.
정치가 마케팅 논리에 종속되면, 결국 공공선 대신 특정 진영의 이익을 위한 정치를 하게 되고, 유권자의 표는 자기도 모르게 ‘사적 이권’의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진 교수는 정치가 때때로 ‘주술적 사고’로 회귀한다고 말합니다. 조선 시대 궁중에서 벌어졌던 저주 의식처럼, 상징물을 공격해 실체를 통제하려는 방식입니다. 그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촛불집회에서 본 충격적 장면을 예로 듭니다. 누군가가 박 전 대통령의 머리 모형을 장대 끝에 매달아 들고 있었고, 그는 그 장면을 지금까지 목격한 집회 중 “가장 끔찍한 효수극”으로 기억했다고 회상합니다.
진 교수는 이른바 진보 좌파가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대안을 수용하지 않으며, 스스로를 검열하는 구조를 만든다고 강하게 비판합니다.
“그렇다고 저쪽을 찍을 거야?”라는 말은 상대를 악으로 규정하고 내부 비판을 차단하는 장치가 됩니다. 심지어 페이스북에서 ‘좋아요’를 누를 때조차 눈치를 봐야 한다는 말은, 진보 내부의 폐쇄성이 얼마나 심화되었는지를 드러냅니다.
민주화 운동 시절 희생된 동지들을 딛고 성장한 586세대는 어느새 이 사회의 강자로 자리 잡았습니다. 정작 이들은 약자를 대변하기보다,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는 데 더 많은 에너지를 쓰게 되었습니다.
진 교수는 이용수 할머니가 정의연의 회계 비리를 폭로했을 때, 일부 운동권 글쟁이들이 할머니를 공격한 사례를 언급합니다. 운동이 약자를 대변하지 못한다면, “차라리 할머니들을 해산하고 새로 뽑는 것이 낫겠다”고 할 정도로 운동권의 기득권화를 통렬히 비판합니다.
진 교수는 마지막 장에서 “진보의 종언”을 말합니다. 민주화 세대는 더 이상 진보적 가치(liberal values)를 대표하지 않으며, 오히려 꾸준히 보수화되었다는 주장입니다. 정보화 시대의 기회를 발판으로 상당한 축재에 성공했고, 지금은 지켜야 할 것이 많은 ‘새로운 보수’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의 다음 지적은 마음을 강하게 흔드는 통찰을 던져 줍니다.
“산업화 세대는 청년들에게 일자리와 아파트 한 채라도 남겨주었다. 하지만 586세대는 일자리도, 아파트도 남겨주지 않는다. 그저 자기 자식에게 재산과 학벌을 물려주는 데에 몰두하며, 다른 젊은이들에게서 공정하게 경쟁할 기회마저 빼앗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