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희, 『문학의 숲을 거닐다』

by 에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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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도 만나본 적은 없지만, 마음 깊은 곳에 울림을 주는 사람이 있다. 나에게는 장영희 교수님이 그러한 분이다. 교수님은 소아마비로 인해 지체장애를 겪으셨고, 그로 인해 거동이 불편하셨다. 아마도 ‘소수자’의 위치에서 세상을 바라보셨기에, 남들과는 조금 다른 시각을 지니셨던 것 같다. 흔히 인문학의 본질을 “사람을 이해하는 일”이라 하지만, 그것을 삶의 전 영역에서 실천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장 교수님은 바로 그 어려운 일을 몸소 보여주신 분이었다.


‘사람을 이해한다’는 것은 말처럼 간단하지 않다. 특히 대학 교수라는 높은 사회적 지위를 얻게 되면, 기득권의 위치에서 약자의 고통을 그들의 눈높이로 이해하기란 더더욱 어렵다. 그럼에도 장 교수님의 글을 읽고 있노라면, 그분은 언제나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잃지 않으셨음을 느낄 수 있다.


『문학의 숲을 거닐다』는 교수님이 강단에서 겪은 일들과 그 속에서 얻은 통찰을 담은 에세이 모음집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이야기는, 교수님이 한 남학생과 ‘마니또’가 되어 편지를 주고받은 일화이다.

교수님이 막 임용되어 영문강독 수업을 맡았을 때, 학생들에게 영어 실력을 키우는 방법으로 서로에게 편지를 쓰게 하는 과제를 내셨다. 여학생과 남학생이 1:1로 짝을 지어 영어 편지를 주고받는 방식이었다. 그런데 학기 초에 한 여학생이 개인 사정으로 수업을 중도 포기하면서, 짝이었던 남학생이 곤란한 상황에 처했다. 교수님은 고민 끝에 직접 그 남학생의 마니또가 되어, 여학생인 척 편지를 주고받기로 하셨다.


남학생은 사법고시를 준비하던 법학과 학생으로, 오랜 고시 생활 속에서 외로움을 느끼고 있었다. 교수님이 여학생인 줄 모르고 쓴 편지에는 고독감과 진솔한 마음이 담겨 있었다. 교수님은 그 마음을 따뜻하게 위로하며 답장을 보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남학생은 점차 호감을 표현하기 시작했다. “고민을 들어주셔서 감사하다. 만나서 이야기하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교수님은 깊은 고민에 빠졌다. 자신의 정체를 밝히면 학생이 큰 충격을 받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결국 교수님은 ‘곧 유학을 떠날 예정’이라고 편지에 적으셨다.


그러자 남학생은 “제가 고시에 합격하면 3층 게시판에 이니셜을 적어두겠습니다.”라고 답했다.

3년 후, 교정에 ‘○○○ 사법고시 합격’이라는 플래카드가 걸렸다. 교수님이 기억하던 바로 그 이름이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3층 게시판을 찾아가니, 정말로 이니셜과 함께 “연락을 기다립니다.”라는 메시지가 남겨져 있었다.


교수님은 그 학생에게 자신의 정체를 밝혔을까? 아니면 학생의 추억을 지켜주기 위해 끝내 비밀로 남겨 두셨을까? 답은 책 속에 남아 있다.


『문학의 숲을 거닐다』에는 이 외에도 마음을 따뜻하게 적시는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장 교수님은 삶을 통해 ‘인문학이란 결국 사람을 사랑하는 일’임을 보여주셨다. 그분의 글을 읽으면, 세상을 조금 더 따뜻하게 바라보고 싶다는 마음이 절로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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