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단편 2

혜화역에서

by 조 용범

오후 느지막이 혜화역 계단을 올라
큰 나무 아래에서 티볼트 곽과 세찬 악수를 하였다.
오늘은 이렇게도 노천에 낭독 공연장을 마련하고
행인을 벗 삼아 비극을 읊겠다는 것이었는데,
재미있는 것이 몇 장면은 관객들이 직접
낭독을 할 수 있다는 말이었다.
셰익스피어-라. 불꽃같은 사랑이라.
이윽고 광장을 고운 베일을 쓴
줄리엣의 음성과 결투의 칼 소리가 메웠다.
사백여 년 전 그날도 이렇듯
우리 같은 시민을 위한 공연이었으리라.
장난기 많은 어린아이부터
수줍은 연인들과 늦여름 바람에
흩날리는 아마도-미루나무까지.
그래 입추란 단어가 무색하게도
지나가는 여름이 젊음을 달군 오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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