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et Mr. Lobb

by 조 용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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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 중인 장인에게 촬영 허락을 구하였는데, 그는 고개를 끄덕인 건지 착각이 들 정도로 나지막이 알았다는 사인을 보내었다. 아마 작업 중인 슈 트리에 대한 집중을 깨뜨리지 않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오늘의 필름은 3장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필름 감기가 그렇듯, 확신할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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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나무문이 열리자, 아침 내내 어깨 위를 적시던 부슬비의 음습함은 깨어지고 옅은 가죽 내음과 나무향이 폐부 깊은 곳에 날아와 엉겨 붙었다. 오래된 전시장을 가득 메운 수제 구두와 백 년도 훌쩍 넘은 창립자의 초상화가 어둔 샹들리에 빛에 아른거리고 있었고, 슈 트리를 갈아대는 장인의 끌 소리가 홀을 채우고 있었다. 엘은 이 오래된 숍에서 일하는 장인 중 한 명이었다. 그는 용무를 물었고, 친절하게도 사진 촬영을 허락해 주었다. 이윽고 뜻하지 않은 구식 필름 카메라의 출현에 그는 놀람을 감추지 못하는 눈치였다.


“관심이 상당해 보이는데, 매장 투어 해볼래요?”


올해 들은 문장 중에서 가장 기분 좋은 말 아니었을까. 백오십여 년도 넘은 전통의 흔적-왕실의 인장과 초창기의 슈 트리, 각종 증명문서와 시그니쳐 제품들이 로비를 수놓고 있었다. 엘을 따라 지하로 내려가니, 비로소 머릿속을 맴돌던 나무향의 진원지가 나타났다. 오래된 슈 트리들을 이십 여 미터도 넘게 차곡차곡 쌓은 보관창고가 저 깊숙이까지 있었던 것이다. 제품 사후 서비스를 항상 새 것처럼 진행한다고 하니, 그 노력과 정성에 대해서는 이로서 증명된 셈이다. 좁다란 복도 사이의 방 안에 열중하여 작업을 하고 있는 장인의 어깨와, 잠시 담배라도 태우러 나갔는지 조금은 흩어진 빈 책상, 어둑한 복도 끝 구두 드로잉에 시선이 멈추었다. 작업자들에게 인사도 건네고, 라스트를 만드는 작업이나 이 브랜드가 고수하고 있는 ‘굿이어 웰트’ 공법에 대하여도 설명을 들어볼 수 있었다.

엘은 유쾌한 사람이었는데, 매장과 작업장을 돌아보는 동안 시종일관 미소를 유지하며 천천히 안내를 해주었다. 이윽고 다시 로비로 향하는 계단에서 그가 말했다.


“아까 촬영한 사람, 슈 트리 만드는 장인 말이에요……. 그분이 존 롭의 손자에 손자에 손자에.. 손자쯤 될 거예요. 파리에도 간다고 했죠?.…….”


그렇게 롭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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