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딩 노동자와 선원과 직장인과 관광객

by 조 용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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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니치로 가는 배를 타려는 날이라, 평소보다 길을 조금 틀었다. 흩뿌리는 비에 인상을 잔뜩 쓰고는 걷고 있었는데, 아마 우산을 쓰고 있었다면 동상을 발견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것은 멀리 안갯속 고층빌딩을 바라보며 서 있는 젊은 청년 노동자의 뒷모습이었다. 안전모를 쓰고 왼쪽 어깨엔 무거워 보이는 자재를 걸친 채로 서 있는. 굳게 다문 입술은 자신감에 차보였다.

‘작업 중에 목숨을 잃은 수많은 노동자들을 위하여-우리는 당신들을 기념합니다.’ 영국 건설 산업노조에서 세운 빌딩 노동자 동상이었다. 길 건너에는 타워 힐 메모리얼이 자리하고 있었는데, 문득 돌이켜 보면 엊그제 지나던 포스트 맨 공원이나, 어느 지하철 역사 내부에 마련되어 있던 기념 시계까지. 모두 타인을 위해 희생했던 이름 없는 또 다른 이들을 기념하는 곳이다. 이 도시엔 그런 곳이 많았다. 짧은 내리막을 지나 타워 부두에 다다랐다. 배를 통해 출퇴근을 하는 런던 시민들을 볼 수 있었고, 런던 타워로 구경을 나온 관광객과 가족들의 모습도 보였다. 모두가 저마다의 하루를 시작하는 중이었다. 곧 그리니치행 보트가 잔교에 도착하며 물보라를 일으켰고, 턱수염 난 청년 선원이 눈인사를 건넸다. 이내 군중 사이에 섞여 배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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