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by 조 용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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힏-쓰러 에얼폳-트, 아마도 이것이 그 영국식 악센트에 가까운 한글 표기가 아닐까. 비에 젖은 그 축축한 아스팔트 바닥에 발을 내딛자, 모두 검은 눈의 이방인을 바라보았다. 그러기도 했을 것이 시각은 이미 자정에 가까웠으며, 짙은 야상과 십이 킬로그램의 프레임 배낭을 메곤, 앞섶에는 검정색 카메라 가방까지 달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는 이미 열두 시간이 훌쩍 넘는 비행에 약간 지쳐 있었는데, 비행기 옆 자리의 얼굴이 기억나지 않는 그 친구는 잊을 만하면 방귀를 뀌었으며, 1시간에 1번꼴로 화장실을 가는 바람에 정말 어떻게 되는 것 아닌가 싶은 걱정마저 들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친구가 승무원들이 주는 식사나 간식을 거르는 것도 아니었다.

여행의 묘미는 예상치 못했던 곳에서 발견하는 것이라는 친구의 조언이 생각났지만 이것을 위한 말은 아니길 내심 바라며 준비해 온 스마트폰 속의 영화를 재생한 그는 급기야 실소를 금치 않을 수 없었다. 이제 곧 내릴 그 영국, 런던을 위한 영화인 [노팅힐]이 중국어 더빙 버전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중국어를 할 줄 몰랐고, 스마트폰의 설정이 잘못된 것 도 아니었다. 떼려야 뗄 수 없는 더빙이었던 것이다. 그는 잠시 이어폰을 빼고 보이지 않는 하늘을 바라보며 웃음 지었다. 다시금 영화를 보려고 노력했지만 사실 그것은 불가능에 가까워 보였다. 휴 그랜트의 눈웃음에 양 조위 목소리가 겹치니- 물론 둘 다 매우 사랑하고 아끼는 배우이지만, 반대 상황이었어도 우스웠을 것이다.- 화양연화를 영어 더빙 버전으로 본다면. 문득 옆 자리 방귀쟁이 친구가 열 시간 만에 그에게 말을 걸었다.


“Are you laughing at me?”


물론 아직 이어폰을 빼지 않아 계속 중국어가 들릴 뿐이었다.


추신. 결국 옆자리의 그 친구는 입국 심사를 1등으로 통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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