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돌바닥을 느끼며 걷고 있었다. 어쩔 땐 다소 보행이 어려운 것도 사실이지만, 깊은 시간 동안 이 자리를 지켜온 작은 조각들을 위해서라면 이런 정도의 불편함은 감수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근 천년이 다 되어가고 있는 이곳은 십 수 세기 동안 보존되어 온 중세 군사 건축양식의 표본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제 곧 여왕폐하의 왕관을 보러 다른 건물로 들어갈 차례였다.
버스비를 쓴 근위병이 그 입구를 지키고 있었다. 사실 눈에 띄는 색의 붉은 코트가 아니었다면 알아채지도 못 한 채로 지나쳤을 가능성이 컸다. 그는 앞을 바라본 채로 미동도 하지 않고 있었다. 로마행 비행기 안에 있던 때가 떠올랐다. 한국에서부터 열두 시간이 걸리는 직항이므로 타고 내릴 때의 식사 시간을 제외한다면 거의 대부분을 어둠 속에 있었다. 저마다 ‘영국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했을 때 떠오르는 몇 가지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한 자리에 계속 있다 보니, 절로 근위병 생각이 나지 않겠는가. 앉아만 있어도 어려운 일을, 그는 무겁고 더운 곰 털모자를 쓴 채 소총까지 들고 부동자세로 서 있다. 그가 믿고 있는 신념이 얼마나 강한지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 아닌가.
희끗한 수염의 미스터 버릿지씨가 주변의 문을 잠그고 있었다. 무전기와 애플 워치를 발견하지 못했다면 아마 옛날로 돌아간 듯 한 착각을 일으키는, 엘리자베스 여왕의 라틴어 이니셜이 크게 쓰인 전통 차림의 근무복을 입고 있었다. 그는 관람시간이 끝나가고 있으니 사진을 찍으려면 서두르라고 꼬마 아이들에게 친절하게 말하였다. 그는 요먼 워더였는데, 그것은 헨리 7세 때부터 시작된 런던 타워의 근위병을 뜻하는 말이다. 지금은 이곳에 상주하면서 성곽 경비와 가이드를 겸하고 있지만, 군 복무 이십 년 이상의 경력자만 지원이 가능하니 버릿지씨 또한 만만찮은 관록의 소유자였다.
자매로 보이는 두 명의 귀여운 인도 여자아이들이 근위병 앞에 쪼르르 섰다. 근위병이 팔다리를 크게 흔들며 움직였는데, 아마 자신에게 허용되어있는 십 여보를 사용해 사진이 더 잘 나오는 위치로 가 주는 것처럼 보였다. (그들은 구십도 각도와 십 여 보 내에서 움직일 수 있다고 했다.) 아이들이 까르르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