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명의 선원에 바쳐 1

by 조 용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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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칠고 투박한 질감의 해먹들이 주-욱 매달려 있었다. 실내는 다소 어두웠고, 이 미터가 넘는 거대한 대포들이 바로 곁에 있었다. 간이 식탁이라고 부르기엔 다소 큰 테이블과 식기들이 그 사이마다 놓여있었다. 장장 오 킬로그램부터 삼십여 킬로그램에 이르는 포탄도 바닥에 정렬되어 있었다. 불꽃이 일며 발사되는 대포와 뒤로 밀려나는 거대한 반동, 따가운 화약 연기. 그리고 이들이 합쳐져 만들어지는 상상 이상의 굉음 속에서 지냈을 숙련 포수들의 주름살. 파도의 습기와 목재파편이 부서지며 나는 톱밥 냄새. 그 속에서는 누구라도 고양이 다리 바람이 불던 때를 회상하지 않겠는가. 어션트 해전부터 지브롤터, 프랑스혁명 전쟁을 지나 트라팔가 해전으로 이어지는 이 일급 전열함의 경력은, 이제는 전투가 아닌 로열 네이비의 자존심으로 남아있다. 트라팔가 해전 승리의 주역인 호레이쇼 넬슨의 기함으로도 알려진 이 퇴역 올드 파이터의 이름은 H. M. S Victory이다.

런던에서 이곳 포츠머스까지는 꽤 시간이 걸리기에, 새벽 나절에 방을 나서 워털루 역으로 향했다. 아침은 열차에서 판매하는 빵과 커피를 마셨는데, 창밖의 안개 자욱한 들판이 런던보다는 더 영국스럽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었다. 긴 시간이 걸려 항구에 도착하였다. 기차역을 나오니, 곧바로 바다로 이어지는 부두와 범선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흥미로운 것은 바다 특유의 소금기 가득함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동네였다는 것인데, 어찌 되었든 평일 이른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꽤 많아 발길을 재촉하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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