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명의 선원에 바쳐 2

by 조 용범

빅토리호는 천 칠백 오십구 년 기공되어 육천 그루의 나무를 사용하였으며, 백 사문의 대포와 팔백 명의 선원을 싣는 영국의 일급 전열 함이다. 현재가치로 환산하면 약 백십일억 원을 상회하는 초기 건조비용이 들어갔다고 하는데, 현재로도 적은 돈은 아니지만, 당시로 따지면 굉장한 예산이 아닐 수 없다. 어둔 선실들을 뒤로하고 주갑판으로 올랐다. 사람들 사이에 섞여 배의 후미로 향하는 중에, 문득 모두 둥그렇게 둘러서서 바닥을 바라보고 있다.
[Here Nelson Fell-21st Oct 1805.] 트라팔가 해전에서 넬슨이 적군의 저격으로 쓰러진 위치를 빛나는 금판으로 표시해 놓았던 것이다. 주변을 보니, 곧장 조타수를 지나 선장실로 이어지는 쿼터 데크 한가운데였다. 그는 이 배에서 유명을 달리했지만 결과적으로는 대승을 거두어 프랑스-스페인 연합 함대를 격퇴했고, 이후 나폴레옹이 영국을 포기하고 러시아로 향하는 바람에 쇠퇴의 길을 걷게 된 중요한 전투이기도 했다. 그 수많은 승리들부터 기나긴 항해, 그리고 개보수까지도 잿빛 아딧줄과 포신에 손때로 남은 이름 모를 선원들의 손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으리라. 비바람 치는 순간에 맨손으로 저 마스트에 올라 돛을 접고, 포를 쏘고 총을 허리에 꽃은 채로 먹고 자고. 빅토리호의 모든 곳에 그들이 남아있다.

함미 상갑판 끝에 섰다. 현재 남아있는 십팔 세기식의 유일한 전열함, 가장 오래된 군함이라는 사실만으로도 빅토리호를 찾을 이유는 충분했다. 저 멀리 도크에는 수리 중인 항공모함이 있었고, 주변에 있던 이에게 항공모함의 이름을 물었다. 퀸 엘리자베스 호라 하였다. 이 배에서부터 이어진 로열 네이비의 자존심을 이어받아 바다에 서게 될 것임이 분명해 보였다. 그리고 더 많은 선원들로 가득 찰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무명의 선원에 바쳐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