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분장실, 노란 전구들이 달린 거울 앞에 피에로 메이크업 중인 한 남자가 있다. 그는 분장을 마치고 양손으로 입술을 끌어올린다. 있는 힘껏 잡아당기다 보니, 눈물이 흘러나와 아이라인이 번진다.
이내 검은색 눈물이 천천히 흰 뺨 위를 가른다. 그는 주인공 아서다.
“거울은 내 가장 친한 친구다. 내가 눈물 흘릴 때 절대 웃지 않기 때문이다.” -찰리 채플린
영화 [조커]는 코미디언 지망생 아서 플렉이라는 한 사람의 비극적인 삶을 통해, 인간의 외롭고 깊은 내면의식의 끝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주인공 아서는 피에로 분장을 하고 가게 홍보 또는 아동병원 위로공연 등의 행사를 나가는 대행업체의 직원이다. 그는 유명 TV 코미디 쇼를 보고, 스탠드 업 코미디 바에서 공연하는 등 코미디언에 대한 꿈을 키우고 있다. 하지만 원치 않는 상황이나 어울리지 않는 타이밍에서 실소를 터뜨리는 ‘병리적 웃음 유발(pathological laughter)’과 망상장애 등의 질환을 앓고 있기도 하다. 또한 정신병원을 드나들었던 노모와의 가난한 삶까지. 전체적으로 하루하루가 버거운 삶을 살고 있다.
영화는 이외에도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시스템에 적응할 수 없었던 아서가 어떻게 조커라는 아이콘으로 재탄생하게 되는지에 대하여 그리고 있다. 그 붓질을 풀어내는 방식으로 선택한 장르는 잭슨 폴록의 추상화와도 같은 블랙 코미디라고 볼 수 있는데, 영화 속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살인, 모함, 시기, 폭동, 시스템 전복 등, 사회적으로 위험한 사건이다. 하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화자로 코미디언 지망생을 내세움으로써 이야기 중간중간 아주 묘한 실소를 자아내게 한다.
아서 플렉은 유명한 코미디언이 되고 싶어 한다. 만약 그가 ‘유명한’것을 원하지 않고 작은 것에도 만족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면, 이야기는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어쨌든 스스로를 얼마나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가가 바로 코미디언이 가져야 할 기본적이면서도 가장 중요한 포인트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병적 장애들로 인해 그것을 획득치 못한다. 이로 인해 영화 속 모든 타인은 아서에게 물리적인 비난을 준다. 결국 어머니와의 관계마저도 어긋나기 시작하고, 아서는 그녀의 편지를 몰래 뜯어보게 된다. 결국 토마스 웨인(배트맨인 브루스 웨인의 아버지)이 자신의 아버지라고 씌어있는 부분을 읽게 되고, 이후 웨인 저택을 찾아가지만 문전박대를 당한다. 또한 웨인 회장을 직접 찾아갔다가 얼굴에 정통으로 펀치를 맞기도 한다. 하지만 그를 무너뜨린 것은 극 중에서 숱하게 날아오는 주먹과 발길질도 아니요, 사람들의 무시도 아니다. 그것은 바로 그가 사랑한 유일한 사람이자, 우주의 전부인 어머니가 정신이상이라는 증거에서였다. 물론 토마스 웨인의 조작도 어느 정도 작용했겠지만, 아서 플렉이란 개인 자체는 그 진단 서류에 좌절하고 만다. 자기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결국 무릎 꿇은 아서의 자기 파괴는 그때부터 급물살을 타기 시작한다.
인간 모두는 무언가를 원한다. 그것은 곧 사회가 각 개인에게 주입한 가치가 기반을 이룬다. 이를테면 아주 기본적으로: 이러이러한 조건~에서 사람들은 '웃는 거야.’라든지, ‘그런 표정으로 바라보면 불편하단다.’와 같다. 그러한 학습된 조건들을 갖추지 못해 ‘평범하지 않은’ 아서는,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직접적인 멸시를 당한다. 심지어 어머니조차 ‘코미디언은 웃겨야 하는데, 넌 그렇지 않잖아.’라고 말하고 있다. 극 중 아서는 바로 이러한 점들을 예의 없다고 말하고 있다. 아서 플렉이 예의 없는 상대를 대하는 방식은 매우 폭력적이다. 지하철에서 3명의 청년을 살해하는 장면을 돌이켜보면 정당방위라고 보기 어렵다. 총기를 위협요소로서 사용하기보다는, 그 직접적인 기능을 사용하는 것이 핵심인데, 심지어 마지막 청년을 따라가서 죽을 때까지 방아쇠를 당긴다. TV쇼 진행자를 살해하는 장면 역시 계획적이다.
영화 속에서 내내 그가 염원하고 원했던 무언가는 항상 필연적으로 엇나간 수로 시작된다. 코미디언의 꿈, 어머니가 정상이기를 바란 것, 토마스 웨인의 아들이고자 한 것. 모든 것이 그를 거부한다. 우습게도 그가 원한 적 없었던 ‘조커로 완성되는 순간’은 그야말로 우발적이다. 아서를 호송하던 경찰차가 사고로 앰뷸런스와 충돌하게 된다. 그를 발견한 군중들에 의해 경찰차 본넷 위로 옮겨진 아서는 차 위에서 천천히 일어선다. 찌그러진 본넷의 경찰 마크를(공권력과 시스템) 밟고 일어서서 폭도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는 상징적인 아이콘으로 거듭나는 순간.
더 이상 아서 플렉이 아닌 조커라는 캐릭터로서 인정받는 하이라이트이다. 동시에 슬랩스틱 블랙 코미디의 완성형 장면이라고 할 수 있겠다. 물론 그 순간 이후, 그가 영원히 아서 플렉으로 돌아갈 수 없는 이유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영화는 주인공 아서 플렉의 세계와 현실을 공간과 대사라는 부분에서 구분 지어 특정한다. 집, TV쇼를 통한 브라운관속 세계, 냉장고등의 밀폐된 공간은 아서의 저변에 깔린 욕망이자 도피처로서 작용한다. 그리고 이와 같은 공간은 특히 더 어두운 톤의 조명과 절제된 디자인을 보여주며, 미디엄-롱 샷 정도로 조금 떨어져서 촬영해 전체적인 구성을 보여주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 이것은 조금 더 발전하여 무성영화에 가까운 시퀀스들을 생산하는데, 그것은 아서가 혼자만의 세계에 있을 때 발동된다. 이를테면 공중화장실 문을 잠그고 춤을 추는 장면, 냉장고 속으로 들어가는 도피적 샷, 기나긴 계단에서 추는 유명한 춤 시퀀스가 그것이다. 결과적으로 이런 특정 장면들은 대사가 매우 절제되어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주인공은 필요한 말만 하고, 몸짓을 통해 표현한다. 사실 웃느라 말을 못 하는 경우가 허다하지만. 안타까운 것은 ‘언어’라는 분야에서 취약한 아서가 끝까지 그것을 실현시키려 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댄서가 되려고 했다면 이 작품은 비급 뮤지컬 영화가 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본문에서 다룬 내용들은 그간 영화화된 배트맨 시리즈에서 다룬 조커의 기원과는 사뭇 다르다. 이는 영화 [조커]가, 한 인간을 구성하는 서브텍스트들이 조합되는 과정에 중점을 두고 바라본 ‘개인의 드라마’이기 때문이다. 기존 코믹스에서는 화학약품 통에 빠지는 사고를 당해 피부와 머리가 표백된 것으로 그리지만, 이 영화에서는 스스로 분장을 하고 염색을 한다. 그리고 자신이 저지른 사고를 추앙하는 폭도들의 의해 마침내 조커는 완성된다. 코미디언이 받는 무대 위 스포트라이트가 아닌, 성난 군중의 불길과 연막탄으로 말이다.
밤, 병원 앞. 아서 플렉은 의자에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다. 그에게 형사 둘이 접근하여 여러 질문을 던진다. 아서는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자연스러운 척하며 자동 유리문으로 향하지만, 쾅! 하고 온 몸으로 부딪히고 만다. 자동문 위에 씌어있는 안내 문구: EXIT ONLY.
그가 했던 가장 우스운 코미디였다.
-역대 조커를 열연했던 배우 라인업도 쟁쟁하다. 그만큼 성격파이면서 디테일함이 요구되는 캐릭터라고 볼 수 있는데, 시저 로메로부터 잭 니콜슨, 짐 캐리, 히스 레저, 자레드 레토까지. 삼십 대의 짐 캐리가 이 역할을 맡았다면 어땠을까.
-코믹스의 영화적 재생산이란 측면에서 Marvel의 [로건]과 DC의 [조커]는 비슷한 맥락의 순수 드라마라 고 할 수 있다. [로건]이 전형적인 클래식 서부영화의 플롯을 가지고 있다면, [조커]는 미국식 개그코드가 녹아든 현대적인 코미디로서 그 역할을 하고 있다.
-찰리 채플린이라는 부동의 코미디 제왕. 그에 대한 오마주적 세팅들도 존재한다. 특히 아서 플렉은 채플린의 대표 복장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다. 큰 구두와 펑퍼짐한 바지, 꽉 끼이는 재킷과 조끼가 바로 그것이다. 영화 중간중간 등장하는 대사가 매우 절제된 장면들도 무성영화와 코미디의 대가 채플린에 대한 오마주 자체라고 보아도 무방할 정도다.
-자기 집착적인 광기와 권총에서 시작되는 코미디언의 이야기는, 마틴 스코시즈 감독 로버트 드 니로 주연의 [택시 드라이버]와 [코미디의 왕]과도 닮아있다. 사실 채플린의 빈곤한 어린 시절과 정신병력을 지닌 어머니에 대한 스토리는 그대로 따왔다고 해도 무리가 없을 정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