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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단편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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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 용범 Sep 27. 2015

In The Hall Of Butcher King

 한적한 오후의 아파트 위로, 페르귄트의 [아침]이 플루트 소리로 연주되고 있다. 단지 내 정원에는 작은 들꽃이 피어 있고, 오후의 햇살이 점점 이동하여 들꽃에 닿는다. 빽빽이 들어선 아파트들이 위압적이고 웅장하기까지 하다. 1205호의 방 안에서는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소녀가 플루트를 연주하고 있고, 그 곁에는 음악 선생님의 모습이 보인다. 선생님은 리듬을 타며 학생의 연주를 돕고 있다. 일곱 살 영남이 자신의 방 안에서 나오며 누나의 방 문틈을 슬쩍 들여다본다. 누나는 연주에 빠져있다. 


 몇몇 아이들이 놀이터에 있다. 놀이터 가운데 미끄럼틀을 사이에 두고 장난감 총을 들고 뛰어노는 두호와 준영. 이윽고 영남이 아이스크림을 가지고 온다. 친구들은 소리 지르며 장난감 총 무리에서 빠져나와 놀이터 곁 나무 그늘진 벤치에 뛰어가 앉는다. 두호가 봉지를 뜯으며 영남을 툭 친다.     


“영남아, 잘 먹을게.”     


준영은 벌써 아이스크림을 물고 있다. 영남에게 묻는다.     


“야, 넌 비비탄 총 안 사? 엄마한테 사 달라고 해. 같이 놀게.”     


두호는 영남의 눈치를 보다가 화제를 돌린다.     


“영남아 그런데, 저 정육점에서 사람고기판다?     


당황한 영남과 준영. 슬쩍 미소 짓는 두호를 보며 준영이 말한다.     


“야 뻥치지 마,  거짓말하면 산타 할아버지가…….”     


“야 있지도 않은 산타가 선물 잘도 주겠다. 어쨌든 이주 전인가? 종일이가”     


“그게 누군데?”     


“야 이 바보야, 지난주에 실종됐잖아, 종일이.”     


“아 4반 아이!”     


 영남은 썩 유쾌하지 않은 눈치다. 잠자리가 하늘을 가르고 있고, 준영은 두호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듣고 있다.     

“어쨌든 바로 저 정육점 주인이 새로 바뀌고 나서 3일 만에 실종된 거래.”     


“에이, 그거랑 종일이가 무슨 상관이야.”     


“진짜라니까, 그 아저씨가 납치해서.. 어, 저기 나온다.”     


 놀이터 저쪽으로 보이는 상가 1층 정육점에서 가게 주인이 나오고 있다. 배가 나온 큰 체격의 텁석부리 수염을 한 영락없는 산적, 그는 담배를 피운다. 영남은 그런 주인을 계속 바라보고 있다.     


“그래서 어떻게 된 건데?”     


“뭘 어떻게 돼? 납치해가지고 정육점에 가두는 거지. 냉동 창고에 밀어 넣고는 문을 꽝!”     


 정육점 주인이 이쪽을 바라보자, 넋 놓고 있던 영남과 눈이 마주친다. 깜짝 놀라 쭈쭈바를 놓쳐버리는 영남. 집으로 뛰어가 버린다. 그의 급작스런 행동에 당황한 두호와 준영. 정육점 주인은 이쪽을 바라보며 담배를 피우고 있다. 아이들은 다시 장난감 총 무리에 섞여서 신나게 논다.      

 영남은 겁에 질린 채로 엘리베이터 안에 타있다. 12층을 누르고 벽에 기대어 한숨을 내쉬는 영남. 이윽고 문이 열리자, 집에 들어온다. 현관에 풀썩 주저앉아 신발을 벗으려는 영남.  한쪽을 벗었을  때쯤 뒤쪽에서 앞치마를 두른 어머니가 나타난다.      


“어, 남이 왔어? 아니, 아니, 신발 벗지 마. 엄마가 오늘 고기해주려고 하는데, 그대로 가서 좀 사와.”     


 영남의 신발 벗던 손이  움찔한다. 어머니는 물 묻은 손을 닦으며 안방에 들어갔다가 돈을 가지고 나온다. 영남에게 다가와 만 원짜리 두 장을 건네는 어머니.     


“전화해놨으니까, 가서 몇 동 몇 호 얘기하고 돈 드리고 고기 받아오면 돼, 알았지? 누나 다음 주면 시험 보잖아. 아빠도 오랜만에 오시고.”     


영남이 손에 돈을 쥔 채로 고개를 든다.     


“엄마…….”     


“엄마가 바빠서 그래, 고마워.”     


어머니는 빠른 걸음으로 주방 쪽으로 사라진다. 영남은 말없이 돈을 든 채로 현관에 앉아있다.     


 석양이 천천히 하늘을 물들이기 시작했다. 그 아래 아파트 단지 길로 영남은 터벅터벅 정육점으로 향하고 있고, 낮에 친구들과 놀던 놀이터는 텅 빈 채로 남아있다. 영남이 쮸쮸바를 놓치자, 붉은색 색소가 두호의 흰 티셔츠에 튀어 번지고, 이쪽을 바라보는 정육점 주인의 시선이 보인다. 땅에 떨어진 쮸쮸바에서 녹아버린 선홍색 아이스크림이 흘러나와 바닥에 가득하다. 영남은 이만 원을 꼭 쥔다.     

 영남은 정육점 내부에 서 있다. 주변을 유심히 둘러보는 영남. 수염이 덥수룩한 정육점 주인이 휘파람을 불며 문을 거세게 닫고 들어온다. 놀란 영남은 자리에 굳어 있다. 주인은 영남을 못 본 듯, 곁의 라디오 볼륨을 살짝 높이고 주변을 정리한다. 영남은 말없이 그를 바라보고만 있다. 주인은 칼을 들더니 쓱쓱 갈기 시작한다. 라디오에서는 페르귄트 [산왕의 궁전에서]가 흘러나오고 있다. 영남이 모기 같은 목소리에 힘을 주어 말을 꺼낸다.     


“저기요…….”     


“어? 언제 왔니?”     


“저……. 101동 1205호인데…….”     


 주인, 갈다만 칼을 들고 이쪽을 바라본다. 잔뜩 겁먹은 영남. 주인은 아래위로 훑어보더니 웃으며 물어본다.     


“1205호? 삼겹살?”     


영남은 힘겹게 고개만 끄덕거린다. 주인은 이내 씩 웃더니 고기를 꺼내곤 칼을 내려놓는다.     


“엄마가 저녁에 고기 구워 주시려나보다, 그렇지? 야, 아저씨 어릴 때부터 고기 진짜 좋아했는데. 내가 너 만했을 때는 고기 먹는 날이면 아주 그냥 심장이 두근두근 거리는 거야, 초저녁부터…….”     


영남은 여전히 긴장해있다. 주인은 멋쩍은 듯 헛기침을 하며 다시 칼을 간다.     


“고기 싸 줄 테니까, 냉장고에 아이스크림 하나 꺼내 먹으면서 있으렴.”     


 영남은 냉장고 문을 열고, 무슨 아이스크림을 먹을지 바라보고 있다. 정육점 안에 울려 퍼지는 관현악기의 소리가 점점 더 커지고 있었다. 주인은 흥이 나는 듯, 붉은 고기를 고르기 시작한다. 영남은 마음에 드는 맛을 고르려 아이스크림을 헤집기 시작한다. 문득, 고기를 담던 주인이 말을 건다.     


“영남아, 너 몇 학년이니? 앞에 초등학교 다녀?”     


 아이스크림을 찾던 영남의 손이 굳어버리고 머릿속엔 주인의 말이 몇 번이고 울려 퍼진다. 낮에 친구들과 놀이터에서 두호가 했던 말들이 떠오르고. 한껏 빨라진 템포의 음악에 더불어 아이스크림 사이에서는 얼어버린 어린아이의 손이 환영처럼 보인다. 영남의 목에 식은땀이 흘러내리고, 핏빛으로 물든 태양이 정육점 안을 비춘다. 주인의 옆 시퍼런 칼날이 거세게 보이고, 붉은 고기들이 춤을 추는 것 같다. 주인은 기괴한 왕관을 쓰고는 웃고 있다. 그의 뒤에 있는 큰 냉동고 문 틈 사이로 종일이가 얼어버린 얼굴을 하고 손을 내민다. 

 영남은 절정에 이른 음악을 뒤로 한 채 고기가 담긴 비닐봉지를 들고 정육점을 뛰쳐나가 버린다. 이만 원이 정육점 바닥에 천천히 떨어진다. 주인은 얼 빠진 표정으로 밖으로 나간 영남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영남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검은 비닐봉지 속 고기들을 이리저리 뒤적거리고 있다. 12층에 가까워지는 엘리베이터의 숫자. 영남의 이마에는 식은땀이 흐르고 있다. 벽에 기댄 채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영남. 엘리베이터 종소리가 울린다. 내리는 영남.     




 어머니는 봉지에서 고기를 꺼내 접시에 올려놓고 있다. 영남은 야채가 수북한 쟁반을 들며 어머니를 돕고 있다. 그때, 거실에서 누나의 환호성이 들린다. 아버지가 온 듯하다. 뛰어나가는 영남. 누나를 안아주고 있던 아버지는 나머지 한 팔로 영남을 들어 안아준다.

 거실 상 위에 펼친 불판에 둘러앉은 네 가족, 맛있게 고기를 구워먹고 있다. 영남은 아버지가 주신 장난감 총 포장을 뜯어 들고는 함박웃음을 짓고 있다. 누나가 쌈을 싸서 영남에게 팔을 뻗는다.     


“그게 그렇게 좋아? 누나 시험 한방에 붙을게?”     


 영남은 누나의 쌈을 받아먹는다. 씹으면서 고기 맛이 입에 퍼지자, 미소 짓는다. 엄마는 구워진 고기를 누나의 접시에 올려주며 말을 꺼낸다.       


“현정아, 고기 맛있지?”     


“응 엄마, 진짜 먹고 싶었어, 요즘.”     


“영남이도 많이 먹어, 오늘 엄마 심부름해줘서 고마워.”     


영남은 미소 지으며 콜라를 잔에 따라 치켜세운다.     


“아빠, 짠!”     


“어쭈, 어디서 본 건 있어가지고.”     


웃으며 건배하는 가족. 맛있게 익어가는 고기. 아파트 단지 위로 해가 넘어간다.       


 아무도 없는 엘리베이터에는 손가락이 하나 떨어져 있고, 문이 닫히면서 손가락이 밀려 바닥의 어두운 틈새로 떨어진다. 문이 완전히 닫히며, 엘리베이터 벨소리가 땡- 하고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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