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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단편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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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 용범 Aug 15. 2021

촬영장에서 맞이한 입추

 한 걸음 더 내디디니, 시원한 바람이 셔츠 사이를 한껏 부풀려 잠시나마 이 더위를 잊게 합니다. 푸른 하늘과 구름- 올해 들어 가장 파아란 색을 뽐내고 있는 나뭇 잎사귀 그리고 나의 사방을 감싸는 매미들의 열창까지. 이 여름으로 더 들어가려 주변을 둘러보곤 마스크를 벗습니다. 어찌 된 일일까요, 주변에 사람이 없어야만 자연과 하나 될 수 있게 된 이 시대는. 영문을 알 수 없어도 우리는 또 이 여름을 지내갑니다. 이 잠시 동안의 자유를 온전히 함께할 수 있는 날까지.


중략-촬영 중.


 풀벌레 소리가 온 대기를 꽉 채운 팔월의 한 여름밤. 촬영 장비 반납을 마치고 걷는 합정 거리. 제아무리 영하의 추위여도 이렇게 홍대가 텅텅 비어있지는 않았었다. 땀으로 얼룩진 촬영을 씻어 내리려 냉면에 소주를 한 병 산다. 누군가에게는 이 여름이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해도 추운 계절 이리라. 단지 우리는 어두운 계곡을 잠시 지나고 있는 것이리라. 멈추지 말아야 할 것이리라. 삶에서 만나본 가장 뜨거운 입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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