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일본은 이미 1970년대에 맑시즘이 지는 해가 됐다. 서구는 말할 것도 없다. 타국에서 맑스가 몰락하는 동안 한국에서는 맑시즘이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왜 그랬을까?
일본의 경우 60년대 후반에 과격한 전공투의 시위를 겪고 그들의 해체까지 지켜보았기 때문이 아닐까. 유럽의 경우도 68혁명의 실패를 언급할 수 있겠고.
반면 한국은 눈앞에 북한이 강력하게 존재했기 때문에 그들을 분석하고 이해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2. “시좌구조가 전환하면 사유방식과 사고범주의 내용에 의미전환이 발생한다”는 논의를 진지하고 인상 깊게 읽은 맨 처음이 나에겐 가라타니 고진이었다. 그런데 저 얘기가 이미 마루야마 마사오가 했던 논의라는 게 신선했다. 물론 상대주의니 구조주의니 포스트모더니즘이니 판쳤던 근래에야 저 이야기가 아주 새롭진 않지만. 20세기 중반에 저런 사유를 했던 일본인이 있었다는 게 놀랍다.
3. 저자인 야스마루 요시오에게 놀란 점은, 전근대와 근대가 완전히 이항대립적이지 않다고 주장한 부분. 현대인인 우리는 우리 사회의 특징과 반대되는 성질을 전근대 사회에 투영하지만, 그것은 일종의 원근법적 도착이기도 하며, 나아가 그 과정에서 오히려 전근대적 특성을 근대에 투영시키는 측면도 있다는 점을 저자는 지적한다. 어떻게 저 생각을 80년대에 할 수 있었을까. 그저 부럽다.
4. 일본의 20세기 사상사도 결국은 일본 근대화의 씨앗을 일본 사회 내부에서 찾으려는 움직임의 과정이었다. 물론 어떤 이는 외부에서 찾기도 했다.
한국의 경우도 비슷했는데, 우리는 근대화의 씨앗을 찾기 위해 정약용을 영웅화하게 되었다. 정약용의 실학 사상은 과연 근대화의 씨앗이었을까? 그런 논의가 메인 줄기였고. 여기서 더 나아간 게, 실학이라는 사상이 과연 하나의 단일한 사상으로 볼 만큼 실체가 있는 것인가, 아니면 만들어진 허상인가 하는 논의까지.
5. 20세기 세계사를 자본주의가 확장하는 과정으로 이해해야 할까? 1차 대전과 2차 대전도 그 맥락에서 볼 수 있을까?
아니면 20세기 세계사는 자본주의와 그에 대항하는 사회주의의 대결로 봐야 할까? 사회주의는 자본주의에 포함되는가 반대되는가? 사회주의는 특정 국민국가/사회/공동체가 자본주의를 확장하기 위해 선택한 우연적이고 역사적인 체제일까? 일본과 이탈리아의 군국주의나, 스탈린의 공산주의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을까?
6. 홉스봄에 의하면, 전근대사회부터 쭉 있어왔다고 믿어지는 전통 관습 등은 사실 19세기 말 20세기 초에 국민국가가 만들어서 선전하고 정착시킨 이벤트다. 이 과정에서 자본주의와 국민국가는 주체가 되고 민중은 수동적인 존재가 된다. 이에 저자 야스마루 요시오는 민중이 그렇게 수동적이기만 한 존재가 아니라고 반박한다. 민중은 국민국가의 이벤트를 수용하기도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국민국가에 저항/대항하기도 한다고. 국민국가와 민중은 일방향적이고 수직적인 관계가 아니라 서로 독립적인 팩터로 이해해야 한다는 게 야스마루의 입장. 야스마루는 9·11테러나 옴 진리교 지하철 사린 사건 등도 자본주의나 국민국가에 대한 민중의 저항 차원에서 이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