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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이 Apr 14. 2018

1-1. 왜 찰스 다윈인가

우리의 관념을 만든 이들, 시작은 다윈부터

우선 왜 찰스 다윈이 첫 번째 순서인지부터 말해야겠다. 이 글의 목적은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가 어떤 시대와 사상을 거쳐 지금과 같은 관념과 사고방식을 가지게 되었는지 얼기설기 밝히는 데 있다. 물론 과거를 지나친 모든 사람과 사건들은 나름대로 현재의 우리를 형성하는 데 일조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의 주요한 관심은, 우리의 생각과 직접적으로 맞닿는 이들이다.


가령 데카르트 또한 우리의 생각에 상당 부분 일조했다. 특히 르네상스 시대야말로 중세를 벗어나 현대인의 상당한 바탕을 다져준 지층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하지만 여전히 그 시대를 근대라고 부르고 싶은 마음도 없다. 왜냐하면 르네상스는 여전히 신의 시대였기 때문이다. 그 시대의 거의 모든 미술은 여전히 기독교를 소재로 한다. 르네상스 3대 거장인 미켈란젤로, 레오나르도 다 빈치, 라파엘로를 보면 쉽게 이해될 것이다.


데카르트를 비롯한 그 시절의 사상가들 또한 마찬가지다. 그들은 단연 인간의 이성적 능력을 최고로 쳤다. 그리고 우주의 중심에 위치한 신을 위로 치워버리고, 그 자리에 인간을 앉혀 놓았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신의 대리로서였다. 신이 인간에게 신성에 가까운 능력을 줬기 때문이고, 그 능력이 바로 이성적 사고라는 것이다. 우리가 감각이 아닌 판단을 통해 우주를 알아차릴 수 있는 이유 또한 신이 우리에게 능력을 주었기 때문이라는 거다.


그런 면에서 완벽히 신을 걷어치운 자가 중요할 텐데, 그가 바로 찰스 다윈이다. 물론 다윈이 세계 최초의 무신론자라는 말은 아니다. 그의 아버지와 할아버지 모두 무신론자였으며 그보다 전 세대부터 학자들 사이에서는 무신론이 기본값이 되어가는 추세였다. 중요한 건 다윈 덕분에 무신론이 세상에 만연할 계기를 얻을 수 있었으며 심지어 과학적·논리적 근거마저 제대로 갖추게 되었다는 거다. 이것이 여기서 찰스 다윈을 첫 번째로 다루는 이유다.


다윈이 사는 시대에 다수의 (유럽) 사람들은 여전히 성경 말씀을 믿고 따랐다. 딱히 생명의 기원을 고민하지도 궁금해하지도 않았지만, 그들에게 생명이 어떻게 시작되었나 묻는다면 답은 뻔했다. 하나님이 지금의 이 모든 생명체를 만들었다는 거다. 창조론이다. 하나님이 6일 만에 우주를 창조하고 마지막 날에 쉬었다고 창세기에 버젓이 나오지 않는가 말이다. 우주의 나이가 정확히 명시되지는 않지만 성경의 여러 구절을 유추해서 계산하면 대략 6500년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다윈은 비글호 항해를 다녀오고도 20여 년이 더 지나서야 『종의 기원』을 출간하는데 그 이유의 큰 몫은 위와 같은 당시의 사회상 때문이었다. 그 책을 낸 이후의 폭풍을 견뎌낼 대쪽 같은 성격을, 다윈은 지니지 못했다. 다윈은 상당히 소심한 성격이라고 알려져 있다. 원래 다윈의 아버지는 다윈이 의사가 되길 바랐다. 그때나 지금이나 의사가 유망 직업인 건 똑같다. 하지만 심약한 소년 다윈은 피를 보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벌렁거렸다.


그는 생물과 지리에 관한 연구에 호기심이 많았다. 그래서 생물학으로 전향했지만 이렇다 할 직업을 못 구하던 차에 비글호에 타게 될 행운이 찾아왔다. 당시엔 항해가 유행이었다. 대항해시대를 지나 제국주의가 무르익으면서 유럽의 강대국들은 이 대륙 저 대륙 들쑤시고 다니 각 지역의 다양한 유물과 자연물을 가지고 자기 나라로 돌아가기 일쑤였다. 하나님이 창조한 지구의 이모저모를 더 정확히 이해하기 위함이라나.


선장들은 그러한 타국의 물품을 팔아치워 돈을 벌었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이 가치 있는지 없는지를 판단해야 하기 때문에 각 분야의 전문가들을 함께 배에 태우고 갔다. 그래서 보통은 박물학자와 동행했다. 다윈이 그런 신분으로 간 거냐구? 절대 아니다. 그때 다윈은 갓 대학을 졸업한 애송이였다. 다윈은 선장의 대화 상대로 따라간 것이다. 선장은 선원들과 신분 차이 때문에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지 않는데, 그래서 선장의 대화 상대를 함께 배에 태우는 것 또한 당대의 관습이었다.


이유야 어쨌건 다윈으로서는 땡큐였다. 하지만 다윈의 아버지가 이를 탐탁지 않게 여겼다. 안 그래도 의학 때려치고 대학 나와 빈둥대는 아들이 또 다시 제대로 된 직업도 없이 단순히 선장의 말동무로 배를 타고 몇 년을 떠돌아다니겠다고 하니 부가 치밀었을 거다. 하지만 아들의 뜻을 꺾을 수 없었고, 다윈은 배를 타고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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