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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이 Apr 18. 2018

1-2. 이 개는 처음 보는 종이네요

비글호 탐험, 그리고 비둘기와 개 사육이 준 영감

비글호를 타고 3년간 남미를 돌아다닌 다윈은 그야말로 머리를 찍어누르는 듯한 충격의 연속이었을 것이다. 그 충격은 가히 글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었으리라. 20여 년간 영국을 한 번도 떠나본 적 없는 청년이 낯선 정글에서 본 동식물과 생태는 얼마나 상상 이상이었겠는가. 이곳이 아닌 다른 지역에는 또 얼마나 많은 생명체가 살고 있을까. 영국 사람들은 이 사실을 알기나 할까.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 종을 다 파악할 수 있을까. 그런데도 신이 이 모든 걸 창조했다고?


다윈은 절대 믿을 수 없었다. 특히 갈라파고스 제도에서는, 같은 종이어도 각 섬마다 특징이 다른 아종들이 서식했다. 각 지역의 모든 아종을 신이 창조했다고 설명하기보다는 변이와 적응으로 설명하는 것이 더 자연스러워 보였다. 가령 똑같은 거북이어도 섬마다 거북의 겉모습은 상당히 달랐다. 가장 대표적인 예는 핀치새다. 핀치새의 부리 모양이 지역마다 제각각이었던 것이다. 추론 결과 먹이에 따라 부리 모양이 달랐다. 호두처럼 단단한 먹이를 먹는 핀치새의 부리는 크고 둥글었고, 열매를 따먹는 핀치새의 부리는 길고 가늘었다.


사실 비글호를 같이 탄 다른 사람들과 달리 다윈이 그렇게 생각할 수 있었던 데에는 이미 영국에서 경험의 영향이 컸다. 당시 영국에서는 육종이 유행이었다. 지금 우리가 먹는 대부분의 음식은 200여 년 전부터 있던 것들이다. 쌀 밀 아몬드 돼지 소 살구 사과 오렌지 브로콜리 케일 양배추 등 대부분의 식재료는 원래부터 존재하던 것들이 아니다.


만약 우리가 고려시대에 먹던 쌀밥을 지금 먹는다면 전혀 다른 곡물을 섭취하는 느낌을 받을 것이다. 그 이유는 그동안 인간들이 식재료를 바꿔놓았기 때문이다. 품종 개량을 말하는 거다. 더 식감이 좋고 영양이 풍부하고 재배하기 쉬운 방향으로 조금씩 품종을 바꿔온 것은 우리 인간이다.


당시 특히나 유행했던 육종은 개와 비둘기에서 이루어졌다. 개만 하더라도 지금 우리가 즐겨 키우는 거의 모든 품종은 그 당시를 전후로 만들어졌다. 허스키 리트리버 시추 푸들 웰시코기 등등 모두 말이다. 이미 자연에 그러한 품종이 있었다고 생각한다면 큰 착각이다. 그것들은 인간의 부단한 노력을 통해 탄생했다.


당시에는 개뿐 아니라 비둘기를 키우는 것도 유행이었는데 그래서 귀족들 사이에서는 독특하고 화려한 비둘기를 키우는 것이 인기였다. 그래서 예쁜 색에 깃털이 화려한 비둘기들이 다양하게 개량되었다. 현재 한국의 도로를 점령한 닭둘기를 생각하면 오산이다. 당대의 애완용 비둘기들은 정말 아름다웠다.


이것이 왜 중요할까. 품종 개량이야말로 살아있는 진화의 사례이기 때문이다. 성경에는 분명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의 종을 신이 직접 만드셨다고 나와 있다. 그런데 현실은? 살구도 포도도 브로콜리도 리트리버도 파란색 비둘기도 모두 얼마 전에 인간에 의해 탄생했다. 불과 몇 년 길게는 몇 십 년이면 없던 품종이 마구 생기는 마당에 창조론이 웬말인가.


다윈은 인간보다 자연의 영향이 훨씬 거대하고 섬세하다고 생각했다. 인간은 자신의 감각기관으로 느낄 수 있는 형질만을 변화시키지만 자연은 눈에 띠지 않는 온갖 복집미묘한 형질을 오랜 세월에 걸쳐 변화시킨다고 말이다. 그 생각을 다윈은 남미에 가서 직접 눈으로 확인했던 것이다.


가령 인간이 품종을 개량하는 측면은 상당히 단순하다. 돼지를 예로 든다면, 인간은 돼지의 고기 맛이 우수한 방향으로 품종을 개량하려 할 것이다. 육즙이 많고 지방이 고루 분포하며 살이 두터운 돼지를 탄생시키려 할 것이다. 하지만 자연은 다르다. 인간이 전혀 예측도 못할 방향으로 각 형질과 특성을 변화시킬 것이다. 그것은 호흡법일 수도 있고, 장의 모양일 수도 있고, 날개나 다리의 구조나 형태일 수도 있다. 소화액의 종류가 바뀔 수도 있고 뇌의 형태가 변할 수도 있다.


이처럼 자연은 인간이 할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생각도 못할 변화를 실현시킨다. 다윈이 생각하기에 신이 맨 처음에 지금과 같은 생명체의 풀(pool)을 만들었고 그것이 태초부터 지금까지 변함없다는 건 억측이었다. 지금 이 순간도 생명의 종은 변하고 있다. 있던 종이 사라지고, 없던 종이 새로 생겨난다. 심지어 인간의 손에 의해서도 말이다. 물론 이런 생각이 온전히 다윈 스스로 해낸 건 아니다. 다윈이 평소 이런 추론을 한 데에는 기존 학자들의 영향이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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