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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이 Apr 21. 2018

1-3. 거인의 어깨 위에 서서

생물의 진화를 주장한 선구자들

찰스 다윈은 자신의 책 『종의 기원』의 서론부터 라마르크를 언급한다. 라마르크는 중학교 생물 책을 통해 전 국민이 배우는, 불명예스러운 생물학자로 알려져 있다. 우리가 배우는 라마르크의 주요 이론은 ‘획득성 유전’과 ‘용불용설’이다. 획득성 유전은 후천적으로 얻은 특징이 다음 세대에 유전된다는 이론이다. 예를 들어, 내가 열심히 운동해서 근육질이 된다면 나의 자식 또한 근육이 발달할 확률이 높다고 이해하면 된다. 용불용설도 비슷한 맥락인데, 자주 써서 발달한 기관은 진화하고, 쓰지 않아 무용지물이 된 기관은 퇴화한다는 내용이다.


현재 대다수의 사람들은 위의 사실이 틀렸음을 안다. 부모가 성형했는지 아닌지를 알고 싶다면 자식을 보라는 우스갯소리도 있지 않은가. 많은 사람들은 다윈이 라마르크의 의견에 반대되는 이론을 펼쳤다고 아는데 그것은 사실과 다르다. 다윈은 라마르크의 획득성 유전과 용불용설을 비판한 적 없다. 그렇다고 그것을 온전히 수용한 것은 아니다. 암묵적 수용이라고 해야 할까.


라마르크와 다윈의 시대는 유전에 대해 생소했다. 유전자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고 유전이라는 말도 거의 쓰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정확히 어떤 매커니즘을 통해 생명체가 생성되고 번식하는지 몰랐다. 다만 다윈은 이런 정도로 느슨하게 이해했다. 어떤 이유인지는 알 수 없으나 자식과 부모는 완전히 똑같지 않고 약간의 차이가 있다는 것. 그리고 자식들 간에도 차이가 존재한다고. 다양한 차이를 지닌 여러 개체 중에 환경에 조금 더 적합한 개체가 생존 확률이 높다고. 이것은 라마르크와 다윈의 공통된 생각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라마르크를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이유는 사실 20세기 미국의 영향 때문이다. 20세기 중반은 냉전의 시대다. 미국과 소련의 무기 없는 전쟁의 시절. 그들은 지독한 경쟁 관계였다. 오죽했으면 소련이 먼저 인공위성을 발사하자 분노한 미국이 사람을 달에 보내는 프로젝트를 계획·실행했겠는가.


그때 소련의 생물학자들은 후유전학에 열성이었다. 단연 그들이 추종하는 생물학의 아버지는 라마르크였고 말이다. 미국 입장에서 소련이 떠받드는 라마르크를 존경할 리 없었다. 미국 생물학계의 흐름은 정반대로 흘렀다. 후유전학은 틀렸으며 라마르크는 당대의 부족한 지식으로 인해 잘못된 이론을 펼친 사람이라는 평가가 메인이었다. 미국 학문을 수입한 한국은 말할 것도 없다. 다행히 21세기에 와서는 후유전학이 재조명되면서 라마르크를 재평가하는 분위기다.


찰스 다윈은 줄곧 자기 책에서 라마르크만 언급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인물이 있다. 바로 친할아버지 이래즈머스 다윈이다. 이래즈머스 다윈은 당대의 유명한 의사이자 생물학자였다. 린네에 이어 생물의 계통 구분과 명칭을 연구했으며 린네의 책을 영국으로 번역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이래즈머스 다윈은 라마르크보다 10여 년 앞선 인물로 라마르크보다 먼저 종의 변화를 주장했다.


이래즈머스 다윈은 결코 듣보잡이 아니다. 그는 루나 클럽이라는 독서토론모임에서 조지프 프리스틀리(화학자)와 제임스 와트 등과 교류하며 치열한 논쟁을 벌이기도 했고, 윌리엄 워즈워스와 새뮤얼 콜리지에게 영향을 주어 낭만주의 문학의 탄생을 이끈 인물이기도 하다. 비록 지금은 손자의 명성에 묻혀 잊혀 가지만 말이다.


이래즈머스 다윈이 종의 변화를 확신할 수 있었던 건 앞으로 그의 사돈이 될(즉, 찰스 다윈의 외할아버지가 될) 조사이어 웨지우드 덕분이다. 지금도 백화점 명품관에 자리 잡은 도자기 명가, 그 웨지우드 맞다. 조사이어 웨지우드 또한 루나 클럽 회원이었다. 그는 고대 이집트 유물에서 영감을 얻고 여러 과학자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기존 도자기 장인들이 만들지 못했던 새로운 스타일의 본차이나를 완성했다. 덕분에 주문량이 많아졌고 그는 운송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거대 운하를 건설하기에 이르렀다.


운하 건설을 위해 100미터가 넘는 높이의 지층을 깎아야 했는데 해당 작업에 이래즈머스 다윈도 관여했다. 그는 토지를 파헤칠 때마다 나오는 층층의 지층과 화석을 연구하며 당시에 존재하지 않는 멸종한 생물종을 발견하고 연구할 수 있었다. 말년에 그가 연구하고 싶은 주제가 ‘생물 집단의 기원’이었다고 하니, 결국 그 프로젝트는 본인이 완수하지 못하고 손자가 이어서 맡게 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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