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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이 Apr 24. 2018

1-4. 그 많던 자손은 다 어디로 갔나?

다윈이 맬서스에게 배운 것

다윈의 본업은 생물학이었지만 그는 여러 분야에 관심이 많아 다방면의 책을 읽었다. 그의 이론에 큰 영향을 준 타 분야의 두 이론가가 있었는데 한 명은 경제학자, 한 명은 지질학자다. 한 명씩 살펴보자. 우선 경제학자는 토머스 맬서스다. 다윈이 맬서스의 사상 전반에 영향은 받은 것은 아니고, 그가 쓴 한 권의 책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보는 게 적절한 표현일 것이다.


그 책은 『인구론』이다. 책의 내용은 단순하다. 조만간 미래에는 인구수가 너무 많아 기아에 허덕일 것이라는 예측이다. 논증은 아주 간단하다. 당시만 해도 결혼한 부부가 낳는 자식 수가 엄청나게 많았다. 찰스 다윈의 형제만 하더라도 10명이었으니 말 다했지. 2명의 부부가 10명의 자식을 낳으니 한 세대 만에 전체 인구수는 5배로 증가하는 셈이다. 적게 잡아 한 세대마다 3배씩 인구가 증가한다고 쳐도 100년이면 81배가 된다.


그에 반해 식량 생산량의 증가율은 형편없다. 식량은 자연에서 얻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식물 기반이든 동물 기반이든 한정된 토지에서 기르거나 채집해야 한다. 식물이라면 논밭이, 동물이라면 목장이 필요하다. 하지만 토지는 절대적으로 한정되어 있으며 이미 18-19세기에 웬만한 비옥한 땅은 모두 1차 산업에 쓰이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도 땅덩어리는 더 생기지 않는다. 다만 척박한 땅을 추가 농지로 일굴 뿐이다.


가령, 올해 식량 생산량을 100으로 잡는다면 대충 어림잡아 내년의 생산량은 120을 넘기기 힘들 것이다. 그 다음 해에 135가 되면 최상일 테고 말이다. 그런 식으로 시간이 지날수록 식량 생산량은 거의 최대치에 육박할 것이고 조만간 생산 증가율은 0으로 수렴하게 된다. 이것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인구 증가율은 기하급수적이고 식량 증가율은 산술급수적이다. 표현은 거창하지만 내용은 위와 같다. 지금 당장은 식량이 남아돌지 몰라도 몇 년만 지나면 인구가 식량을 웃돌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 간단한 예측이 왜 19세기가 다 되어서야 나왔을까. 그전까지만 해도 유럽에 인구수가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중세에는 십자군 전쟁이다, 흑사병이다 하며 총인구의 반토막, 반에 반토막이 나는 사태가 종종 발생했다. 르네상스 이후에도 여전히 각종 전염병과 크고 작은 전쟁 등으로 인구가 늘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산업혁명 후에야 사회가 조금씩 안정을 찾으면서 인구가 눈에 띠게 증가하기 시작했다. 맬서스는 그 시대의 고민에 수학적 논리로 응답한 셈이다.


허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인간 세계의 일이다. 이것이 생물의 진화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여기서 또 다윈의 번뜩이는 천재성을 느낄 수 있다. 개체의 증가와 식량 부족은 비단 인간 사회에만 국한되는 이야기일까.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게 다윈의 답이다. 번식의 효율을 따지면 인간이 가장 하수다. 인간은 한 번에 1명을 임신하며 임신 기간은 9개월 남짓이다. 1명의 여성이 평생 낳을 수 있는 자식 수는 굉장히 제한적이다.


같은 포유류인 개나 고양이 등은 어떤가. 그들은 한 번에 5마리 내외를 낳으며 임신 기간도 인간보다 짧다. 조류 파충류 어류로 갈수록 번식의 효율은 극대화된다. 어류의 경우 한 번에 수 천 개의 알을 낳는다. 비록 평균 부화율이 2% 내외라고 하지만 그렇다 쳐도 인간의 수십수백 배다.


그들에게 필요한 식량은 역시나 철저하게 제한적이다. 한 세대만 거치면 전체 개체수가 몇 십 배가 되는 그들을 모두 먹여 살릴 식량이 하늘에서 떨어질 리 있는가. 당연히 대부분의 개체들은 식량 부족으로 죽는다. 그것은 같은 종끼리의 경쟁이다. 누가 먼저 더 많은 식량을 확보하느냐의 문제다. 식량을 잘 확보하는 개체가 살아남는다.

경쟁은 같은 종 내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비슷한 식량을 먹어야 하는 타 종과의 경쟁도 있다. 게다가 천적으로부터의 생존도 불가피하다. 그리고 조금씩 변화하는 기후와 지리에도 적응해야 한다. 한 개체는 같은 종과, 유사한 다른 종, 천적, 환경 등과 경쟁을 벌여야 한다. 그리고 살아남아야 한다. 그래야 자식을 번식할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떤 개체가 살아남는가.


같은 종에 비해, 유사한 다른 종에 비해 더 식량을 잘 구하는 개체. 천적들로부터 잘 숨거나 피해 목숨을 끝까지 부지하는 개체. 변하는 환경에 잘 적응한 개체. 이 모든 걸 제대로 수행한 개체가 살아남는다. 그리고 그들이 낳은 자식은 그들의 뛰어난 형질을 물려받을 것이다. 다시 그 자식들이 낳은 자식들은? 이런 식으로 번식이 거듭될수록, 미묘하지만 조금씩 더 생존에 적합한 개체군으로 변화가 진행된다. 이것을 다윈은 맬서스의 책을 통해 도출해낼 수 있었다.


재밌는 건, 결과적으로 맬서스의 예측은 틀렸다는 점이다. 그는 인구 증가율이 미래에도 당대와 똑같을 거라 생각했고, 식량 생산은 토지의 면적에 비례한다고만 계산했다. 하지만 양보다 질이라고. 앞으로 일어날 엄청난 기술 발전에 대해선 아마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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