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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이 Jul 01. 2018

웹툰과 영화 사이의 건널 수 없는 강

영화 [여중생A]의 실패 이유


영화가 재미없으면 그에 대한 글쓰기도 재미없을 수밖에 없다. 미안하지만 영화 [여중생A]는 지독히도 재미없어 도중에 영화관을 박차고 나가고 싶었던 내 인생 최초의 영화였다. 그래서 아쉽지만 이 글도 그에 걸맞게 노잼일 수밖에 없음을 미리 양해 구한다.


영화가 재미없는 이유를 나는 영화의 실패에서 찾으려 한다. 그리고 영화적 실패의 이유는 매체의 차이를 무시한 결과라 보인다. 영화는 웹툰 [여중생A]가 원작이다. 여중생A 웹툰 작품은 그림체가 졸라맨체다. 인물을 비롯한 모든 대상은 선으로만 표현되고 채색이 없으며 배경도 생략됐다. 그림이 너무 간결해 나는 종종 이 인물이 누구인지 헷갈리곤 했다. 다른 만화에 비해 사건 전개가 상당히 속도감 있다. 음악으로 치면 업템포. 당연히 묘사나 표현이 세밀하지 않으며 생략이 과감하다.


그래서 독자가 적극적으로 개입해서 상상하고 해석해야 한다. 인물의 상세한 생김새뿐 아니라 주인공의 집이나 학교의 모습, 길이나 마을의 모습 등의 배경도 독자의 상상에 맡겨진다. 인물의 말이나 행동 또한 상당 부분 독자의 해석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부분이 많다. 따라서 독자에 따라 인물들에 대한 판단·평가가 달라지고 이야기의 결은 여러 방향으로 확장 가능해진다.


화는 위와 같은 웹툰의 특성을 살리려고 연출한 것처럼 보인다. 대사와 대사가 널뛰듯 이어지지 않았고, 컷과 컷, 숏과 숏의 비약도 크게 느껴졌다. 인물의 대사와 행동은 단조롭다 못해 발연기 수준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그것이 배우들의 연기 부족이라 생각되지 않고 연출의 일부라 느꼈다. 성글게 연기함으로써 웹툰의 단촐함과 해석의 복잡성을 의도한 게 아니었을까 싶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웹툰과 영화는 매체의 성질 자체가 다르다. 우선 영화는 가시적인 묘사의 생략이 거의 불가능하다. 영화는 어쨌거나 현실이라는 기반 위에 실제 배우가 연기하는 시공간이 필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주위 배경이나 소품은 이미 의도와 기획 아래 만들어지고 연출될 수밖에 없다. 인물의 의상부터 로케이션, 그것을 어떤 소품들로 꾸미고, 그것들이 어떻게 카메라에 구현될지 다 계산해야 한다. 그것을 모두 생략한 백지의 배경이란 건, 적어도 지금까지 영화에서는 불가능하다.


인물이 표현하는 것들도 마찬가지다. 웹툰은 최소한의 대사와 몇 컷의 장면을 통해 행동의 정밀함은 배제한 채 이야기를 진행할 수 있다. 영화에서는 그것을 구현하기 힘들다. 대사를 최소화할 수는 있겠지만, 행동을 생략할 수는 없다. 어쨌거나 말하는 동안, 혹은 말하지 않는 동안에도 배우는 어떠한 제스처를 취해야 한다. 아무런 제스처·행동을 하지 않는다는 선택지는 없다. 적어도 손을 어디에 둘지 몸을 어떻게 움직일지 표정이나 시선은 어떻게 처리할지 등 배우가 택해야 하는 요소는 굉장히 많다. 그것을 웹툰은 모두 백지로 둘 수 있지만 영화는 절대 불가능하다.


공백이 많아 널뛰는 대사, 역시 공백이 많은 배우들의 연기, 서사의 빈곤으로 온통 빈틈투성이 영화에 필연적으로 끼어든 요소가 2가지 있으니. 바로 선생님의 난초와 온라인 게임의 괴물이다. 선생님의 캐릭터, 미래가 선생님의 난초를 훔치고 깨뜨리는 사건, 그러다 미래가 옥상에서 떨어지는 장면, 떨어지는 미래를 구하는 괴물의 등장 등은 웹툰에는 없던 것들이다.


하지만 그러한 추가적인 요소들이 영화의 결핍을 채울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그건 마치 깍두기만으로 승부하려는 설렁탕집의 허술한 전략 같은 거랄까. 탕이 노맛인데 깍두기만으로 만족할 수 없다.


영화의 결핍은 결국 각 인물의 에피소드를 서로 교차시키지 못하고 평행선마냥 제 갈 길을 가게 만들어 버린다. 미래-백합-노란-태양과 재희-연준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 채 자기만의 세계 속에서 눈 가리고 아웅 식의 자위로 사건이 종결된다. 각 인물의 변화는 상대 인물과의 화학 작용에서 일어나는 게 아니라 자웅동체마냥 혼자만의 결사적 감성 안에서 이루어진다. 재희가 외국으로 떠난 후 미래의 눈물은 그래서 온라인 게임 속 판타지처럼 공허하고 어리둥절하다.


의도적으로 지나치게 축소된 영화의 각 요소들은 서로 만나지 못하고 의미를 띠지 못한 채 비약으로 남는다. 황새가 뱁새 따라가다 가랑이 찢어진다고. 영화가 웹툰을 따라가려다 빚어진 결말이다. 오히려 영화로서 할 수 있었던 새로운 이야기와 감각이 있었을 텐데. 원작에서 또 다른 새로움을 만드는 건 여전히 어려운 작업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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