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태이 Apr 11. 2018

빛이 있으라 해도 어둠뿐인 세상에서

[슬픔이 없는 십오 초] 내맘대로 읽기



그건 그렇고

내 인생이 왜 이렇게 됐을까, 라는 말에는

진실이 없네 진실은 원래 어디에도 없네

왜 사람은 사랑에 빠질까

아마도 진실이 없어 죽도록 불안한 탓이리라

- <나의 댄싱퀸>


기억 안 나세여, 왜 저 보고 사는 게, 납치할 아이 하나 없는 세상의 유괴범처럼 황량하게 외롭다고 그랬자나여, (...) 그렇지여, 첫 번째 생 다음은 다 후렴구이지여, 그렇지여, 신은 희로애락을 무한의 버전으로 믹싱하는 DJ지여, 그렇지여, 우리 인간은 그 리듬에 맞춰 춤이나 출 따름이지여,

- <여, 자로 끝나는 시>




우주의 본질을 묻는 것이 서양철학의 시작이었던가. 그 문화의 연장에 서서 우리들 또한 우리 삶의 본질을 묻는다 해도 진실은 잡히지 않고. 허망한 가슴은 사랑으로 채우려 해도. 채워지는가. 텅 빈 그 가슴이. 술을 마시고 노래나 부를 뿐이지. 진리도 사랑도 내 알 바 아니라는 듯.




착한 그대여

어직도 그쪽의 풍경은 환한가

별을 셀 때까지 기어이 환한가

천 만 억을 세어도 나의 폐허는 빛나지 않는데

- <식후에 이별하다>


비극적인 일이 다시 일어난다 해도

어디에도 구원은 없다 해도

나는 정확히 해석하고

마지막에는 반드시 큰 소리로 웃어야 한다

(...)

지저귐만으로 이루어진 유언들이얼마나 귀엽던지

(...)

지저귐, 새의 발랄한 언어가 없었다면

그것은 단지 그늘 속에서 맴도는 검은 얼룩이었지

(...)

가을의 햇빛 속에서

다친 새들과 나와의 기이한 인연에 대해 숙고할 때

세상은 말도 안 되게 고요해진다

(...)

햇빛 속에서든 그늘 속에서든

나는 웃는다, 웃어야 하기에

지금으로서는

내게 주어진 것들만이 전부이기에

지금으로서는

- <웃는다, 웃어야 하기에>


생각한다는 것, 그것이 나의 지병이었다

- <성장기>




온통 어둠뿐인 폐허 같은 세상에서 시인의 역할은 무엇인가. 이것은 시인의 발랄한 지저귐, 고백이다. 시인이 없었던들 세상은 모노톤이었을 테지. 세상에 색채를 입히는 것. 그것이 시인의 역할이라지. 그래서 시인은 생각하고 웃기를 반복한다지. 그런데 그걸로 세상은 밝아질까.




허나, 명심하라. 그대가 세상을 상상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그대를 상상한다네.

- <먼지 혹은 폐허>


생은 균형을 찾을 때까지 족히 수십 번은 흔들린다. 그러다가 쓰러진 이들은 정말 완벽하게 쓰러진 것이다. 다시 일어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혁명일까? 아버지, 여태 빈 링거꽂고 누워 계세요?

(...)

아버지, 이렇게 장성해서 거리를 활보하고 있는 내가 당신이 남긴 그 숱한 혼잣말의 잔뿌리들 중 하나일 줄이야!

- <대물림>


내 가슴으로 달 진다. 내 다리 사이에서 해가 뜬다. 나는 지상에 태어난 자가 아니라 지상을 태우고 남은 자다. 모든 것이 사라지고 남은 최후의 움푹한 것이다. 환한 양각이 아니라 검은 음각이란 말이다. 나의 전기를 쓰기 위해서는 세상의 모든 신화들을 읽은 후 비탄에 젖어 일생을 보내다가 죽은 후 다음 생에 최고의 전기작가로 태어나야 한다. 그러나 명심하라. 그 운명을 점지하는 자도 바로 나다.

- <아이의 신화>




세상은 본디 어둡고 무의미하다. 그 속에서 빛을 밝히고 의미를 부여하는 자가 시인이라면 그는 이 세계에 속하지 않는 외부의 존재일까. 안타깝게도 그럴 수 없다. 시인 또한 세상에 속한 존재. 그 또한 필연적으로 어둡고 무의미할 수밖에 없다. 운명을 벗어나려 점성술을 부리는 것 또한 운명에 속하듯 말이다.




장모님이 나를 꽤나 진지한 태도의 시인으로 오해하는 것이 사실은 부담스럽다

- <엘리베이터 안에서의 도덕적이고 미적인 명상>




그래서 시인은 이 세상의 것이 아닌 상상, 이 세상의 도덕과 미의 바깥을 사유하지만, 그것은 엘리베이터가 2층에서 1층으로 내려가는 정도, 길어야 15초도 안 되는 순간일 뿐이다.




실직을 며칠 앞두고 나는 사랑하는 그녀와 테니스를 치다 나와 결혼해줘 외치네 그녀는 멋진 백핸드 발리를 날리고 네트를 훌쩍 뛰어넘어 내게 다가와 속삭이네 조만간 모든 것이 끝이 날 거야 모르겠니 매치 포인트라고

- <그녀와의 마지막 테니스>


온 세상을 슬픔에 물들게 하려고

우는 아내가 식탁 모서리를 오래오래 쓰다듬고 있다

처음 보는 신기한 마술이다

- <아내의 마술>




최후의 발악은 역시 사랑인가. 하지만 이미 알고 있다. 사랑은 찰나의 신기루라고. 세상의 끝에 서서 사랑만이 이 우주를 구원할 수 있다고 외치는 건 따분한 멜로영화의 엔딩에나 어울린다.




역겨워, 지겨워, 왜

영원하다는 것들은 다 그 모양이야

십장생 중에 아홉 마릴 잡아 죽였어

남은 한 마리가 뭔지 생각 안 나

옛 애인이던가, 전처던가

그미들 옆에 쪼르르 난 내 발자국이던가

가장 먼저 사라지데

가장 사랑하던 것들

추억을 뒤집으니 그냥 시커멓데

- <나는 발자국을 짓밟으며 미래로 간다>




자신의 존재도, 사랑도 모두 무채색의 공허였다는 걸 깨달은 시인의 다음 행동은 이미 정해진 것일까. 그렇다면 이 모든 것은 정해진 수순대로 가는 운명인가.




나는 갈수록 추해진다

나쁜 냄새가 난다

발자국을 짓밟으며 나는 미래로 간다

강변 살자, 부르튼 발들아

- <나는 발자국을 짓밟으며 미래로 간다>




이미 시인은 말했다. 미래란 현재의 지독한 오독이라고. 무의미를 의미로, 슬픔을 기쁨으로, 추를 미로 전환시키는 마지막 남은 방법은 역시 현재를 오독하는 것이다. 모든 공부는 텍스트를 오독하는 것에서 시작한댔는데. 우리 모두의 삶이 각자 다른 것도 실은 이 우주를 서로 다르게 독해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그것이 우리 삶의 본질일지도.




당신은 첫 페이지부터 파본인 가여운 책 한 권 같군요, 나는 수치심에 젖어 눈을 감는다, 그리고 묻는다, 여기 모든 것에 대한 거짓말과 아무것도 아닌 것에 대한 진실이 있다, 둘 중 어느 것이 덜 슬프겠는가,

- <확률적인, 너무나 확률적인>




어둠뿐인 세상을 정독할 것인지, 그것을 다채로운 색으로 오독할 것인지 묻는 시인의 질문은 얼마나 헛된지. 어차피 우리 인간이란 신의 주사위에 놀아나는 우주라는 게임판의 말일 뿐인데. 그렇기에 그 질문은 역설적으로 인간적이다. 내 맘대로 안 되는 세상에서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건 질문을 던지는 것이므로. 그래서 위 시의 원래 제목은 니체가 쓴 바와 같아야 한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작가의 이전글 제주는 그런 곳이 아니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