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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이 Jan 10. 2019

3-04. 인간의 이기심은 본성이 아니다

자유주의와 공리주의 비판

다시 처음의 문제제기로 돌아가자. 소유권=사적재산권이라는 개념은 자유주의의 토대가 된다. 지금의 우리가 대체로 생각하는 자유란 타인의 방해를 받지 않고 나의 행복을 위해 활동할 수 있는 권한을 말한다. 그리고 그 권한의 기저에는 물질을 소유할 수 있는 자유=권리가 존재한다.


그런데 여기에 딴지를 건 사람이 있으니 바로 제러미 벤담이다. 인간의 사적재산권을 뒷받침하는 근거가 무엇이냐고. 물론 그에 대해 존 로크는 이미 근사하게 답변해 놓았다. 소유권의 근거는 인간의 노동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벤담은 그 대답을 마뜩지 않게 여겼다. 내가 자연에 노동을 하면 그 자연이 내 것이 된다고?


예를 들어 사과씨를 사과나무로 만들고 사과를 맺게 하는 본원적인 과정은 내가 한 일이 아니다. 나는 단지 그 과정에 아주 약간의 수고를 더해 땅에 떨어져 썩을 사과를 내 손으로 옮긴 것뿐이다. 땅도 마찬가지다. 나는 지구는커녕 지표면도 토양도 만들지 않았으며,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존재했던 땅덩어리에 약간의 수고를 더해 울타리를 꽂았을 뿐인데. 왜 그것만으로 그게 나의 소유물이 된다고 단정지을 수 있는가.


벤담은 자유주의의 근원에 기독교 사상이 도사리고 있다고 판단했다. 기독교에서 이렇게 말하기 때문이다. 우주의 모든 자연물은 하나님이 인간을 위해 준비한 것이라고 말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자연을 관리하는 동시에 그것으로부터 이익을 취할 수 있는 권리를 처음부터 부여받았다고.


기독교를 싫어했던 벤담에게 그런 생각이 씨알도 먹히지 않은 건 어쩌면 당연하다. 사적재산권의 토대를 인정할 수 없었던 벤담에게, 모든 인간이 자유(=사적재산권을 행사할 자유)를 누려야 한다는 자유주의는 허구적인 사상이었다.


단순하게 생각하자.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모든 인간의 직접적이고 영속적인 행복이다. 벤담은, 인간이란 본능적으로 행복을 원하고 고통을 싫어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이 가장 행복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봤다. 그것이 공리주의의 탄생 배경이다.


하지만 마르크스는 자유주의와 공리주의를 모두 비판한다. 그 둘 모두 당대 사회의 특수한 경제 구조에 입각한 사유물이라는 것이다. 잠깐 여기서 두 가지만 짚고 넘어가자. 우선 마르크스는 오직 논리적·개념적 사유를 통해 도출한 사상을 거부했다. 그는 모든 사회 현상이 역사적 맥락 속에 존재한다고 생각했지, 이성적 관념 속에 있다고 보지 않았다. 또 하나는, 그렇기 때문에 특정 사유 체계는 해당 역사·사회적 맥락을 벗어나면 유효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예를 들어 보자. 중세 유럽의 농노에게 1차적으로 중요한 것은 자신의 소유물을 가질 권리가 아니었다. 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에게 일할 수 있는 토지를 지급하고, 성 안에서 목숨의 위협을 걱정하지 않고 안전하고 평안하게 살 수 있는 생존의 토대를 마련한 영주에 대한 충성심이다, 농노가 아무리 많은 자산을 가진다 한들 영주의 눈에 벗어나 성 밖으로 쫓겨나는 순간, 그가 가진 재산 따위는 무용지물이 되고, 그는 오늘 죽을지 내일 죽을지 알 수 없는 불안한 삶을 견뎌야 한다. 성 밖에서 홀로 살아가는 농노에게 자유가 무슨 소용 있겠는가. 그에게 자유란 오직 영주의 성 안에서 그에게 충성을 다하는 맥락 속에서나 유효할 뿐이다.


그러므로 마르크스는 자유주의와 공리주의 모두, 인간이 본능적으로 욕망을 가진다고 전제한다는 점에서, 시작부터 잘못된 논의라고 일축한다. 인간이 물질적 욕망을 추구하는 것은 중세를 벗어나 근대 사회에 접어들어서 생긴, 근대 사회의 특수한 경제 구조가 낳은 사회적 산물이지, 결코 본능적 요인이 아니다. 그것을 마르크스는 과거 사회를 통해 예증한다.


그러므로 마르크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이것이다. 지금 우리의 욕망과 사고방식을 규정하는 경제 구조가 무엇이냐고 말이다. 경제에서 1차적으로 중요한 활동은 생산 활동이며 따라서 마르크스가 가장 먼저 주목한 것은 각 사회의 생산 양식이었다. 생산에 필요한 자본을 누가 가지고 있으며, 그 자본을 어떠한 형태로 운영하고, 그렇게 탄생한 생산물을 누가 소유하고 어떻게 처분하는지 등의 전반적인 구조에 마르크스는 관심을 쏟았다. 이에 대한 상세한 논의는 잠깐 뒤로 미루고 이어서 마르크스가 사회의 변화를 보는 관점부터 알아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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