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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이 Jan 15. 2019

3-05. 세계를 바꾸는 것

헤겔의 변증법과 절대정신

흔히 변증법 하면 헤겔을 떠올리지만, 사실 변증법의 창시자는 고대 그리스의 엘레아학파, 그중 완성자는 제논으로 알려져 있다. 그 방법론을 소크라테스와 그의 제자 플라톤이 이어받았다. 그들의 변증법은 헤겔의 변증법과는 달랐는데, 문답법을 통해 상대의 모순을 드러내는 것을 일컬었다. 상대 논리의 모순을 밝혀 진정한 이성적 사유를 전수하는 교육법이 고대 그리스의 변증법이다.


2000년 가까이 잊혔던 변증법을 다시 수면 위로 끌어올린 사람은 칸트였다. 칸트의 변증법도 고대 그리스와 비슷했다. 그것은 상대 논리의 모순을 드러낼 수 있는 가상의 논리를 제시하는 것을 의미한다. 상대의 비논리성·비이성적인 부분을 깨치게 하고 다시 올바른 논리·이성적 사유의 길로 이끈다는 점에서 둘은 공통적이다.


하지만 헤겔에 와서 변증법의 의미는 사뭇 달라진다. 그것은 올바른 사유를 위한 방법론이 아니라 우주의 현상적 변화 과정을 의미하는 것으로 전환한다. 이걸 말하기 전에 우선 헤겔의 ‘절대정신’ 혹은 ‘이성의 간지’를 먼저 말해야겠다. 헤겔은 세계 변화의 근본 원인을 절대정신의 변화로 보았다. 우리가 보는 물질의 세계는 절대정신의 표면일 뿐 본모습이 아니라는 것이다.


절대정신은 저차원에서 고차원으로 변해 가는데 그 방법이 스스로의 모순을 발견하고 그 모순을 봉합 및 극복하는 과정을 통해서 가능하다는 것이다. 흔히 이 과정을 정-반-합이라 부른다. 정은 절대성신이 자기 모순을 알아채지 못한 상태, 반은 절대정신이 모순을 알아채고 그것을 표출하는 단계, 합은 그 모순을 통합적으로 극복하는 단계다. 물론 이 과정은 지속적으로 반복된다.


세상을 움직이는 실질적인 요인은 절대정신이며 역사의 전개 과정도, 개개인의 선택과 행동도, 그 이면에 실은 절대정신이 깃들어 있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인간을 움직이는 동력과 주체성은 우리 자신에게 나오지 않고 절대정신으로부터 나온다는 말이다. 절대정신이란 이성의 끝판왕 정도로 생각하면 된다. 나쁘게 말하면 인간도 인간사회도 이성의 꼭두각시가 되는 셈이다.


예를 들어 보자. 상식적으로 1 더하기 1이 무엇이냐 물으면 사람들은 2라고 말할 것이다. 이때 2라는 답을 도출하는 것은 개인의 주체적 선택인가, 보편적 이성 법칙에 따른 것인가? 당연히 후자다. 모든 선택이 그와 같다는 말이다. 주어진 상황에서 인간은 가장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결과를 도출할 것이며, 그것은 개인의 고유한 특성이 아니라 인류의 보편적 특성에 입각한다. 그러므로 세계를 변화시키는 근본 동력은 개인이 아니라 이성이다. 그 이성의 총합을 헤겔은 ‘절대정신’이라 명명했다.


그런데 사람들은 아직 완벽하게 논리적이지 못하다. 왜냐하면 그들의 정신이 불완전하기 때문이다. 정신이 불완전하다는 것은 외부세계를 이해하지 못하고 그렇기 때문에 컨트롤하지 못하는 상태를 말한다. 또 다른 예를 들어 보자, 아이들은 자신의 욕구와 상황과 선택은 이해하고 조절할 수 있지만, 상대방에 대해서는 잘 헤아리지 못한다(사실 어른들도 마찬가지다). 성장하면서 타인의 입장과 그의 감정을 이해하고 존중하게 된다.


과거에는, 나의 외부에 존재하기 때문에 나와 무관하며 따라서 내 판단으로 어찌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점차 자신의 영역 내부로 들어오면서 이해되기 시작한다. 과거에는 의문투성이던 타자의 행동이, 지금은 잘 이해된다. 아하, 그래서 그 사람이 그렇게 행동했구나. 그 사태는 그 사람/대상의 독특하고 고유한 판단이 아니라, 당시 상황에 입각한 합리적 선택이었음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그런 식으로 내 육체뿐 아니라 신체 외부의 것들도 이성에 의해 파악할 수 있으며, 궁극적으로 우주 전체가 내가 공유한 이성=절대정신의 표현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헤겔에게 중요한 것은 물질절 발전이 아니라 정신적 발전이다. 물질은 종속 변수지만 정신은 독립 변수다. 그러므로 헤겔의 관심사는 사람들의 정신, 즉 인식의 변화다. 사회를 변화시키는 것은 사람들의 생각의 변화 때문이지 그 반대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의 의식은 절대정신의 변증법적 발전 때문에 항상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간다고 헤겔은 믿었다. 바꿔 말하면 현재 사람들의 의식은 완벽하지 않고 불완전하다고도 볼 수 있다. 그 의식이 불완전성, 쉽게 말해 모순과 갈등이 뒤섞인 상태에서 그것을 차츰 극복하여 완전한 의식으로 나아가는 것이 헤겔의 변증법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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